엔진 배기량으로 차를 구분하던 시대가 있었다. 부자들이 타는 3,000cc 이상의 대형 세단, 중산층을 위한 2,000cc 중형 세단, 1,600cc 미만의 소형, 그리고 1,000cc 미만의 경형까지. 차량 가격도 대체로 이 기준에 따라 정해졌고 자동차 세금도 배기량 기준으로 부과됐다. 부자들은 대배기량을 선택하기 마련이어서 자동차 세금에 대한 저항도 크지 않았다.
지금은 다르다. 다운 사이징 엔진 및 전동화 모델들에게 엔진 배기량의 숫자는 무의미하다. 1.3리터 중형세단이 1.6리터 준중형세단보다 더 비싸게 팔린다. 그러나 자동차세는 아직도 배기량 기준으로 부과된다.
1,000cc미만 경차는 cc당 80원의 세금이 부과되며, 1,600cc미만 준중형은 cc당 140원의 세금이 부과된다. 1,600cc 이상 중형차는 cc당 200원의 세금이 부과된다. 여기에 지방교육세 30%가 추가로 부과된다.
2,000만 원 대 1.6리터 아반떼의 연간 자동차세는 29만 원이다. 아반떼보다 크지만 엔진 배기량이 작은 1.3리터 말리부의 자동차세는 연간 24만 원으로 5만원이 더 싸다. 차 가격이 비싼 말리부가 세금은 덜 내는 것.
9,000만 원이 넘는 벤츠 E350의 경우 2리터 터보엔진이 장착돼, 연간 52만 원의 세금을 납부한다. 2.5 리터 엔진을 얹은 그랜저는 그 절반 가격이지만 13만 원 더 많은 연간 65만 원을 자동차세로 부담해야 한다. 단지 엔진의 사이즈가 크다는 이유만으로 벤츠 E350보다 그랜저 2.5가 더 많은 세금을 내는 역차별을 받고 있다.
자동차 세금 문제는 전기차에서도 발생한다. 르노 트위지나 포르쉐 타이칸의 세금은 모두 연간 13만 원이다. 500만 원 전후의 트위지와 2억 원 대의 타이칸의 세금이 똑같은 것. 정상이라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지금같은 구조에서는 대중차 고객들이 상대적으로 더 많은 세금을 낸다고 할 수 있다. 차량 가격을 기준으로 자동차 세금을 부과해야 하는 이유다.
이상진 daedusj@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