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디 R8 등장은 아우디의 수퍼카 시대 개막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부지런히 라인업을 늘려온 아우디가 드디어 수퍼카의 세계로 영역을 확장한 것이다. 아우디의 부지런한 발걸음은 멈추지 않아 R8의 컨버터블 버전인 ‘R8 스파이더’까지 만들어 냈다. 그 차가 한국에 왔다. 영하의 날씨에 지붕이 열리는 그 차를 타고 달렸다.

500마력 이상의 힘을 내고 제로백을 5초 이내로 끊어야 수퍼카라 할 수 있다. 아우디 R8 스파이더의 5.2리터 V10 엔진은 525마력의 힘을 낸다. 메이커가 밝힌 제로백 타임은 4.1초. 수퍼카의 기준을 능가하는 성능이다.

R8 스파이더는 길다. 4,434mm인 R8보다 훨씬 길다. 차체의 길이가 무려 5,137mm에 달한다. 앞모습은 우람하다. 어깨가 넓다. 독수리의 눈을 닮은 헤드램프와 대형 그릴, 그리고 그 주변부가 강하고 단단한 이미지를 만든다. 천으로 덮은 지붕은 컨버터블이라는 이 차의 정체성을 확실하게 말하고 있다. 하드탑이 대세인 요즘, 아랑곳하지 않고 소프트탑을 얹었다. 말이 소프트탑이지 하드탑과 다르지 않다. 헐렁거리는 천을 생각하면 착오다. 단단하게 차체의 형상을 유지시키는 하드탑과 크게 다르지 않은 소프트탑이다. 시속 50km 미만의 속도에서는 차가 움직이는 상태에서도 지붕을 여닫을 수 있다. 지붕을 개폐하는 시간은 19초.

R8의 옆을 멋있게 장식하던 띠는 스파이더에서 사라졌다. 그래서 ㄷ 자로 날렵하게 패인 옆선이 살아난다. 19인치 타이어는 휠 하우스를 빈틈없이 꽉 채웠다. 옆에서 보면 시트가 한 가운데 배치됐다. 가장 안정된 자세를 확보할 수 있는 위치. 시트 바로 뒤로 V10 엔진이 자리했다. 미드십이다. 차의 중심이 딱 잡혀 있음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뒷모습은 여느 차들과 다르다. 엔진 후드 윗부분의 볼륨감, 날카롭게 자리한 스포일러, 엔진, 두 개의 머플러 등이 어우러져 앞모습 못지않은 당당함을 빚어낸다. 리어램프 만으로 뒷모습 캐릭터를 만드는 다른 차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R8 스파이더의 정체를 모르는 이들도 뭔가 다른 차임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시동을 걸었다. 두둥 거리는 엔진 소리와 함께 감동이 밀려온다. 엔도르핀을 불러오는 소리다. 피가 뜨거워지고 가슴이 벌렁댄다. 살며시 가속페달에 발을 갖다 댔다. 가벼운 엔진 소리를 토해내며 차가 미끄러져 나간다.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멋진 상대를 만날 때 나타나는 반사작용이다.

운동성능에 관한 한 이 차는 필요한 모든 것을 갖췄다. 미드십 엔진에 콰트로 시스템. 명쾌하게 두 단어로 설명할 수 있다. 이에 힘입어 놀라운 주행안정성을 보이는 것을 체험했다. 슬라럼과 고속주행에서 안정감을 체험할 수 있다. 슬라럼 할 때에는 똑딱 거리는 시계추처럼 한 치도 오차 없이 정확한 핸들링 반응을 보였다. 고속주행에서는 차가 안정되지 않으면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속도까지 경험할 수 있었다. 미드십 엔진이 아니었다면, 그리고 콰트로가 아니었다면 이런 안정감을 맛보기는 불가능한 일이다. 한 가지 더. 시트다. 흰색 계열의 가죽시트는 실내를 밝고 환하게 연출하는 것은 물론 운전자의 몸을 잘 받쳐준다. 허벅지와 엉덩이, 허리를 잘 잡아줘 안정감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저속으로 일반 국도를 살살 움직였다. 도로 위의 모래들이 튕기는 소리가 실내로 유입된다. 조용함은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조용하고 편한 차가 아닌 때문이다. 방음보다는 다이내믹한 운동성능, 고성능에 포커싱한 차다. 속도를 높일수록 실내로 유입하는 소리는 점차 순수한 엔진소리로 바뀐다. 기분 좋게 귀와 심장을 자극하는 소리는 들을수록 매력이 넘친다. 그 소리 때문에 자꾸 속도를 높이게 된다. 저속보다 고속으로 달리는 게 오히려 편하다.

변속기는 R 트로닉 변속기로 시퀀셜 기어타입으로 작고 가볍다. 수동기어박스를 자동변속기처럼 변하게 조작할 수 있다. 패들시프트와 기어레버로 조작한다. 여기에 더블클러치가 더해져 반응이 빠르다. 일반 자동기어에 비해 연비가 좋음은 물론이다. 시프트 업, 다운을 하면 엔진 소리와 차체 반응이 지체 없이 반응한다. 변속순간을 몸이 느낀다. 자동변속기의 편안함에 길들여진 이들은 불편하고 거칠다는 느낌을 받는다. 변속충격이 걸러지지 않고 몸에 전달된다. 이게 바로 스포츠카의 맛이다. 매력인 셈. 변속 신호는 ‘시프트 바이 와이어’ 즉 전자신호로 전달된다.

6단 변속기이지만 오버드라이브는 없다. 6단에서도 1.035의 기어비를 유지한다. 강한 가속력과 고성능을 얻기 위한 조치다. 스스로의 존재이유를 잘 알고 있음을 기어비가 말하고 있다. 수동변속기를 기반으로 하고 있어 클리핑 주행은 안 된다. M모드에 세팅하고 브레이크를 밟지 않아도 차는 움직이지 않는다. 가속페달을 밟아야 움직인다. 좁은 주차장에서 차를 조금씩 움직여야할 때에는 매우 조심해야 한다. 변속레버에 P레인지는 없다. 중립에 넣고 그냥 사이드 브레이크를 채워야 한다.

엔진은 뜻밖에 롱스트로크 엔진이다. 보어x스트로크가 84.5×92.8mm로 스트로크가 길다. 고성능 엔진에서는 쇼트 스트로크가 일반적인데 이 차는 그렇지 않다. 스티어링도 그렇다. 핸들은 세바퀴를 넘어 3.3회전 한다. 스포츠카라면 3회전이 안되는 게 어울리는데 이 차는 여유 있는 조향비를 가졌다. 조금 더 타이트해도 좋지 않을까 한다.

영하의 날씨지만 지붕을 열었다. R8 스파이더를 타는데 오픈 드라이빙을 생략할 순 없지 않은가. 옆에서 달리는 다른 차들이 웃으며 바라보면 더 빨리 달려버리면 된다. 바람이 머리를 흩날리지만 머릿속은 오히려 상쾌해진다. 더 크게 뒤에서 들리는 엔진 배기음이 마음에 든다. 몰아지는 바람도 재미다. 한겨울이라도 오픈 드라이빙은 재미있다. 하지만 오래는 무리다. 잠깐 지붕을 열고 달린 뒤, 다시 닫았다. 지붕을 닫고 뒤창만을 열수도 있다. 오픈 드라이빙을 할 때 뒷바람을 잡아주는 윈드 리플렉터인데 지붕을 닫은 상태에서도 여닫을 수 있다. 선루프 대신 활용해도 좋겠다.

R8 스파이더는 아우디 스페이스 프레임(ASF)을 적용했다. 알루미늄 스페이스 프레임으로 이해해도 상관없다. 철판대신 알루미늄을 사용한 보디 프레임이다. 측면, 후드커버, 일부 내장재에는 탄소섬유 강화 플라스틱이 적용됐다. 무게와 진동을 줄이고 연비를 높이는 데 효과적이다.

가속을 이어가면 시속 70, 120, 180, 230km에서 각각 시프트업이 일어난다. rpm은 레드존에 진입하는 8,500 에 이르러서 변속이 일어난다. 230km/h 이후에서도 힘찬 가속이 이어질 만큼 출력은 넘친다. 안정감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대단한 성능이다. 일반 운전자가 고속주행을 편하게 시도할 수 있는 것은 차의 안정감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엔진출력이 허락해도 차의 거동이 안정되지 않으면 더 이상 달릴 엄두가 나지 않는 법이다. R8 스파이더는 525마력의 힘에 미드십 콰트로의 안정감이 더해져 경이로운 고속주행이 가능했다.

가속과 감속을 이어가며 수차례 고속주행을 시도했지만 차는 시종일관 여유 있다. 힘들고 지친 기색은 찾아볼 수 없다. 냉각수도 엔진 오일도 정상이다. 고성능 차들 중에서는 가끔 고속 주행을 이어가면 오일이 뜨거워지거나 타이어에서 연기가 나는 등 피로함을 호소하는 경우가 있는 데 R8은 아니다.

고속주행안정성은 단연 압권이다. 시속 200km를 넘겨도 차의 거동이 불안하지 한다. 소리만 커질 뿐 불안한 느낌은 없다. 미드십에 콰트로로 무장한 시스템이 칭찬받을 만하다.

시속 100km에서 3000전후의 rpm을 보인다. 배기량이 넉넉한 편이어서 낮은 rpm을 사용할 것이란 짐작은 틀렸다. 강한 힘을 과시하려는 듯 rpm을 높게 사용한다. 배기량을 감안하면 100km/h에서 1600rpm 전후면 어울릴 텐데 두 배에 가까운 rpm을 쓴다. 시속 100km가 안 되는 저속으로 달리면 불편하고 억눌린 느낌이다. 잡소리도 들리고 딱딱한 하체가 피곤하게 느껴진다. 어느 정도 속도를 내줘야 편해진다.

수퍼카라고는 하지만 많이 소프트한 편이다. 서스펜션의 하드함도 돌덩이 같은 게 아니라 일반인 탑승을 고려해 편해진 수퍼카다. 시트가 낮지만 승하차도 불편하지 않았다. 편리함을 더한 수퍼카인 셈이다.

R8 스파이더 운전석에 처음 올랐을 땐 거북하고 조심스러웠다. 2억을 훌쩍 넘는 가격도 그렇고 엄청난 성능을 제대로 다루기 위해선 얼마만큼의 탐색전이 필요했다. 그 시간이 지나고 나면 적응이 되고 비로소 차가 편해진다. 가속페달을 밟고 엔진 배기음을 귀로 들으며 몸이 시트에 파묻히는 느낌을 즐기는 맛에 흠뻑 빠져 달렸다. 내리고 싶지 않을 만큼 B8 스파이더는 짜릿한 만족감을 줬다. 기대이상의 짜릿함이다. 건강한 몸매, 무한질주를 보여주는 힘과 다리, 그리고 절제를 아는 제동성능. R8 스파이더는 남자의 본능을 제대로 만족시킨다. 늘씬하고 잘생겼지만 콧대 세고 잔소리 많은 여자보다 훨씬 멋있고 섹시하다.

오종훈의 단도직입차가 낮고 넓다. 거기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크다. 울퉁불퉁한 도로를 지날 때, 규정을 무시하는 험한 과속방지턱을 만날 때, 하체가 닿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늘 머릿속을 맴돈다. 1904mm의 넓은 폭에 더해 투 도어다. 좁은데서 주차할 때에는 난감할 때가 있다. 좁은 곳에 차를 세우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문을 열고 나오지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 결함이라기보다 태생적인 특징에서 오는 불편함이다. 감수할 수밖에 없는 어쩔 수 없는 불편함이다.

Auto Lab잘 달리는 것은 잘 설 수 있음을 전제로 한다. 제대로 서지 못하는 차는 아무리 잘 달려도 의미가 없다. 시속 100km에서 있는 힘껏 브레이크를 밟았다. 수차례 시도하고 데이터를 측정했다. 가장 좋은 정지시간과 거리는 3.26초, 41.7m. 편차도 크지 않았다. 브레이크를 급하게 밟으면 비상등이 자동으로 점멸하고 안전띠가 몸을 조인다.

계측기를 이용해 실제로 측정한 이 차의 제로백 타임은 4.15초. 메이커가 밝히는 공식 기록인 4.1초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운전자를 가리지 않고 비교적 정직한 성능을 보인다. 가속 거리는 61.34m. 시속 200km 까지는 12.38초, 419.60m가 걸린다. 준중형 세단이 시속 100km로 가속할 때 이 차는 이미 200km/h를 넘는 셈이다.

길이×너비×높이(mm) : 4,434×1,904×1,244엔진 형식 : V6 TDI : V10 가솔린 직분사배기량(cc): 5,204최고출력(마력/rpm): 525/8,000최대토크(kg?m/rpm): 54.1/6,500트랜스미션: 6단 R트로닉구동방식: 상시사륜구동서스펜션(전): 더블 위시본서스펜션(후): 더블 위시본타이어: 앞 235/35ZR19 뒤:295/30ZR190→ 100km/h(초): 4.1연비(km/l): 6.2CO2 배출량(g/km): 380승차정원(명): 2가격: 2억3,460만원

사진 이승용 www.cameraeyes.co.kr/ 박인범 (LIZ 스튜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