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 7 시리즈는 벤츠 S 클래스와 더불어 최고의 세단으로 평가받는다. 7시리즈는 론칭할 당시 클로즈드 룸 이벤트로 화제를 모았다. 최고의 차를 탈만한 오피니언 리더들을 한 사람 한 사람 씩 초대해 일인용 신차발표를 진행한 것이다. BMW 코리아 김효준 사장이 직접 손으로 쓴 초청장을 보냈고 리셉션에서부터 프리젠테이션까지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한 신차발표회가 진행됐다. 최고급 럭셔리 세단은 파는 방법도 달라야 함을 보여준 모범 사례다. 벤츠 S 클래스를 타는 고객들이 이 소식을 듣고 입맛을 다셨다는 후문도 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가장 고급스러운 차중 하나 760Li를 시승했다. 760Li는 7 시리즈 중에서도 최고로 인정받는 모델이다. 배기량 6.0 리터, 12기통. 보통 사람들의 입을 떡 벌어지게 만드는 숫자들이다. 최고출력 544마력, 최대토크 76.5kgm. 8단 변속기 등등 사람을 압도하는 숫자의 행진은 계속된다. 최고의 럭셔리 세단임을 말해주는 숫자들이다.
BMW의 DNA는 여전하다. 키드니 그릴과 엔젤 아이, 그리고 호프마이스터 커브까지 BMW 유전자를 잘 드러내고 있다. 7시리즈 중에서도 휠베이스가 긴 L 버전이다. 7시리즈 일반 모델보다 휠베이스가 무려 14cm 길어 차 길이가 5,212mm에 이른다. 하지만 실제 길이보다 눈에 보이는 크기는 작다. 벤츠 S 600L과 비교하면 760이 길이는 짧지만 휠베이스는 길다.
엔젤 아이가 자리한 헤드램프는 얌전했고 옆면의 선들도 앞뒤로 쏠리지 않고 수평을 유지하고 있다. 다이내믹함보다는 안정적인 이미지를 따른 디자인이다.
시야는 충분하다. 우측 사이드 미러가 작은 듯 하지만 그렇다고 시야가 좁아지는 건 아니다. 거울이 커야 후방 시야가 좋아지는 건 아니다.
뒷좌석에 몸을 파묻고 눈을 지긋이 감으면 더없이 편할 수 없다. 아늑한 승차감은 최고 수준이다. 운전석 보다는 뒷좌석이 이 차의 핵심이다. 운전 기사가 차를 모는 ‘쇼퍼 드리븐 카’로 기능성과 편안함, 쾌적임이 모두 뒷좌석에 포커싱을 두고 있다. 부족함 없이 널직한 뒷공간에는 좌우측 좌석마다 별도의 모니터가 마련됐다. 쨍한 고해상도의 화면이 집중도를 높인다. 4인승 세단으로 뒷좌석 가운데 자리는 생략했다. 높이 솟은 센터 터널이 지나는 공간에 시트를 생략해 4인승으로 만든 것이다. 당연한 결정이다.
엔진룸을 열면 V12 엔진의 초콜렛 복근이 보인다. 세로로 배치된 V12엔진은잘 단련된 근육질을 연상케하는 커버로 덮여 있다. 보는 것 만으로도 엔진의 성능을 짐작할 수 있겠다.
시트에 몸을 기대면 포근한 느낌이 든다. 아늑한 동굴에 들어온 느낌. 그런 편안함이 몰려온다. 숄더 라인이 높다. 창을 비교적 좁게 만들어 실내의 아늑함을 더했다. 여기에 뒷바퀴굴림 방식이어서 차가 뒤에서 밀면서 달리는 편한 승차감이 더해진다.
검정과 짙은 갈색으로 모노톤 같은 투톤으로 꾸민 인테리어가 눈길을 끈다. 단색이 주는 지루함을 덜면서도 산만하지 않게 컬러를 선택하는 센스가 돋보인다. 감각 있다. 고급감이 물씬 묻어난다.
76.5kgm의 최대토크는 그 자체로 만만치 않은 힘이지만 1500rpm에서 발휘된다는 데 더 큰 의미가 있다. 가속페달을 살짝 밟으면 그 때부터 최대토크가 나오는 셈이다. 거의 모든 주행 영역에서 최대토크가 작동한다고 보면 된다. 엔진은 또한 시속 100km일 때 rpm이 겨우 1500에 불과할 만큼 효율적이다. 낮은 엔진 회전수로도 충분히 필요한 힘을 뽑아낼 수 있는 효율적인 엔진이다. 가속페달을 밟아 속도를 올려도 차의 야성은 드러나지 않는다. 폐활량 큰 마라토너처럼 고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달린다. 숨이 거칠어지지도, 가쁜 숨을 몰아쉬지도, 시끄럽지도 않다. 시속 160km 전후에서도 엔진소리는 겨우 들리는 정도다.
아무 때나 속도를 올릴 수 있다. 시속 200km까지 속도를 올리는 데 필요한 시간은 겨우 17.63초, 거리는 591.08m다. BMW가 공식 발표한 정지에서 시속 100km 가속시간은 4.6초. 계측기를 연결해 직접 테스트해 얻은 수치는 6.23초로 차이가 크다. 드라이버의 기량 차이로 본다면 일반인들이 느끼는 제로백 타임도 6초 전후가 되지 않을까 싶다.
시속 100km에서 급제동을 하면 안전띠가 몸을 강하제 조이면서 차는 3.8초간 45.61m를 더 달려 완전히 정지한다. 제동 시간 그래프를 보면 속도가 거의 줄어들어 완전히 정지되기 직전 약 0.6초 동안 감속이 이뤄지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차의 안정적인 제동을 위한 조치로 보인다.
고속주행은 원할 때 언제나 경험할 수 있지만 짜릿한 느낌은 덜하다. 심심하다고 할까. 짜릿한 느낌을 주는 차의 흔들림, 속도감, 소리 등이 밋밋하다. 차는 흔들리지도 않고 소리도 잘 들리지 않는다. 그러니 속도감이 날리 없고 운전자는 물론 승객들도 고속주행에 거부감이 없다. 스포츠카 다운 고성능의 면모와 최상의 승차감을 양립시킨 차로 손색이 없다. 최고의 럭셔리 세단이라는 말이 결코 허명이 아님을 차는 말하고 있다.
가속페달 밟자마자 차는 힘 있게 치고 나간다. 순식간에 시속 200km를 넘보는 수준까지 속도를 올린다. 그 상태에서도 가속페달에는 여유가 많았고 마음만 먹으면 최고속도인 시속 250km를 맛볼 수도 있다. 바람소리도 잘들리지 않을 만큼 잔잔한데 계기판 속도가 빠르게 높아진다. 묘한 기분이 든다. 부드러운 가속감의 진수다. 경험하기 힘든 가속감이다.
이 차가 부드러울 수 있는 건 힘이 있어서다. 힘이 부족하면 용을 쓰느라 부드럽지 않게된다. 7 시리즈의 부드러움은 강자의 여유인 셈이다.
차의 구석구석에는 초호화 옵션들이 자리하고 있다. 헤드업 디스플레이는 운전자의 시선을 분산시키지 않고도 주요 주행정보를 알려준다. 내비게이션과 연동해 길안내도 헤드업 디스플레이로 받을 수 있다. 방향 지시등을 켜지 않고 차선을 옮기면 차선이탈 경보장치가 작동해 핸들이 부르르 떨린다. 운전 똑바로 하라는 경고다. 나이트 비전도 있다. 어스름 저녁이나 심야에 어두운 길을 달릴 때 나이트 비전은 눈이 미처 보지 못한 사물을 모니터에 보여줘 안전운전을 돕는다.
아이드라이브는 진화를 거듭해 굳이 설명을 듣지 않아도 몇차례 조작하다보면 금방 기능을 알 수 있다. 조그셔틀을 적용한 아이드라이브를 처음 시도한 게 바로 BMW 7시리즈였다. 처음에는 조작방법이 어색하고 몇 차례나 조작해야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직관적으로 조작할 수 있을만큼 쉽고, 한두 차례 조작으로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해졌다.
BMW가 강조하는 부분이 다이내믹 에피션트다. BMW의 상징인 다이내믹함을 해치지 않으면서 효율 연비 배기가스 등을 최적화 시키는 기술이다. 평소 그대로의 다이내믹한 느낌을 유지하면서 효율을 극대화한다는 것. 원리는 간단하다. 필요한데 필요한 만큼의 에너지를 보낸다는 것. 완충된 배터리를 충전시키기 위해 발전기를 돌릴 필요가 없고, 원하는 만큼의 온도가 됐으면 에어컨을 가동할 필요가 없다. 제동할 때 브레이크에서 생기는 마찰열은 다시 전기 에너지로 바꿔 저장하고 파워스티어링을 돌리는 데 엔진 힘을 쓰는대신 모터를 이용하는 식이다. 필요 없는 부분으로 가는 에너지들을 최대한 줄이는 원리다.
무조건 에너지 사용을 줄이는 게 아니라 차의 역동성을 해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BMW의 기술이 평가를 받는다. 다이내믹 에피션트는 최근의 BMW 기술을 이해하는 데 아주 중요한 컨셉이다.
7 시리즈에는 다이내믹 드라이빙 컨트롤 기능도 있다. 운전자 취향에 맞춰 주행상태를 세팅할 수 있다. 스포츠, 스포츠 플러스, 노멀, 컴포트 중에서 택할 수 있다. 시간에 쫓기며 어딘가로 빠르게 이동해야 하거나, 달리는 맛을 느끼려면 스포츠나 스포츠 플러스를 택하면 된다. 업무에 지친 오너를 뒤에 태우고 이동할 때라면 컴포트 모드를 택해 편하게 휴식을 취하면서 이동하면 제격이다. 스포츠 플러스나 컴포트 등 세팅을 바꾸면 예민한 운전자는 차가 예민해진다거나, 소프트해지는 등 차의 상태 변화를 알아챌 수 있다.
시속 100km에서 컴포트 모드에서는 1500rpm, 스포츠 플러스에서는 2000rpm을 가르킨다. 그만큼 차의 상태가 달라졌다는 말이다.
544마력의 힘은 8단 변속기로 컨트롤된다. 최고 수준의 변속기다. 부드럽고 힘있게 힘을 쓴다. 6단 변속비가 1대 1. 7, 8단이 오버드라이브 상태가 된다. 8단은 기능적인 부분도 있지만 상징성이 훨씬 더 크다. 8단 변속기를 가진 메이커는 몇 안된다. 앞서 있다는 이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변속기다.
조향성능은 매우 인상이 깊다. 스티어링 휠은 최대 2회전이다. 3회전 안팎의 다른 차들과 비교할 때 확연히 다르다. 그만큼 예민하다. 저속이나 정지상태에서는 핸들을 조금만 움직여도 차가 크게 반응한다. 유턴을 할 때에도 중형차급의 공간만 있으면 충분히 돌아나간다. 편도 2차로 도로에서도 한번에 유턴한다. 경차도 아닌 5m 넘는 대형 세단인데 대단하다.
코너링도 훌륭했다. 단단한 서스펜션은 미끄러운 노면을 훌륭하게 공략했다. 빗길이었지만 안정적인 자세를 잃지 않았다. 5m가 넘는 큰 차는 코너를 돌아나갈 때 뒤가 항상 불안하다. 쉽게 미끌어질 수 있어서다. BMW 760Li는 뒤가 부담이 없이 잘 따라왔다.
오종훈의 단도직입연비의 압박이 만만치 않다. 공식 연비는 7.8km/L지만 계기판이 알려주는 실제 주행연비는 3km/L 수준이다. 얌전하게 운전해도 왕성한 식욕을 감당하려면 지갑이 두툼해야 한다. 거저 줘도 제대로 타기 힘든 차다. 스마트 키지만 차문이 알아서 열리지는 않는다. 기능 보완이 필요하다. 차의 양옆을 비춰주는 사이드 뷰 모니터는 정작 중요한 앞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눈으로 보이지 않는 범퍼 바로 앞부분까지 보여주면 훨씬 유용하겠다. 비오는 날, 대시보드가 옆창에 반사되면서 사이드 미러의 영상이 분명하게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반사를 없앨 수는 없을까.고민 좀 해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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