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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스피라에 투자 한다는 것이)“이성적으로는 힘들었다.” 스피라를 만든 어울림그룹 박동혁 대표의 말이다.


“어울림을 만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생각하면 아찔하다” 스피라를 만든 어울림모터스 김한철 사장의 말이다.


김한철과 박동혁. 두 사람이 없었다면 스피라의 오늘은 없었다. 김사장에겐 돈이 부족했고 박사장에겐 기술이 없었다. 스피라는 이 두 사내가 만들어낸 아들과 같은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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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한철
평생을 스피라 개발에 매달려온 ‘스피라의 아버지’다. 8년간의 이탈리아 유학을 마친 뒤 쌍용자동차와 아시아자동차 디자이너를 거쳐 90년대 초 독립한 김 사장은 ‘2인승 미드십 스포츠카’를 만드는 데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스피라는 이미 20년 전에 잉태되었던 셈이다.


잘나가던 해외 유학파 자동차 디자이너가 난데없이 회사를 박차고 나와 스스로 차를 만든다고 나선 것은 예나 지금이나 이상한 일이다. 많은 이들이 가지 않는 길, 하지만 분명한 꿈과 의지, 열정을 가진 사람만이 선택하는 길이다. 김한철 사장은 일찌감치 그 길을 택했고 한번도 곁눈질하지 않았다. 오로지 내가 꿈꾸는 자동차를 만들기 위해 매진했다.


자동차 외장 용품, 디자인 외주 제작 등의 사업을 하며 벌어들인 돈은 모두 스피라 개발에 투자됐다. 자동차 업계에서 그가 운영했던프로토모터스는 꽤 유능한 집단으로 인정받았다. 자동차 용품에서부터 리무진 모델에 이르기까지 김한철 대표의 손을 거친 제품들은 뭐가 달라도 달랐다.

야무진 솜씨와 기술이 입소문을 타면서 국내 메이커는 물론 멀리 중국에서도 일감이 이어졌다. 벌어들인 돈은 스피라 개발에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2002년 그는드디어 러닝 프로토 타입 ‘PS-Ⅱ’를 만들어 낸다. 스피라의 전단계로 도로 위를 달리는 미드십 스포츠카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 하지만 거기까지 였다. 말라버린 자금 때문에 PS-2의 양산은 좌절되고 만다.


돈은 늘 부족했고 회사는 투자자들과의 다툼으로 위기상황이 계속됐다. 김한철 대표는 차를 만드는 것보다 기업사냥꾼들과 실랑이를 벌이는데 더 많은 시간을 빼앗겨야 했다. 사기꾼으로 몰려 경찰과 검찰을 들락거리기도 했다. 스피라에 대한 꿈과 열정이 없었다면 도저히 넘을 수 없었던 고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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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혁
박동혁 대표는 입지전적인 벤처 사업가다. 5백만원으로 인터컴소프트웨어란 회사를 창업, 2002년에 100억원대 매출을 달성한다. 2003년 12월, 코스닥 등록기업 넷시큐어테크놀러지를 인수함으로 당시 25세 나이로 최연소 코스닥 CEO가 된다. 넷시큐어테크놀러지, 어울림정보기술, 어울림네트웍스(구. 전신전자) 등 10여개사를 거느리고 있다.


“이성적으로 판단하면 도저히 할 수 없는 결정이었다”
박동혁 사장은 생면부지의 김한철 사장에게 투자를 결정한다. 2007년이었다. “감동했기 때문”이라고 박사장은 말했다. 도저히 불가능해 보였던 사업이었다. 그만큼 절망적이었다. 하지만 박동혁 사장은 김한철 사장의 열정과 순수함에 ‘감동’해 스피라 만들기에 동참을 결정한다. 이성적이지 않았지만 감동적인 의기투합이었다.
이후 스피라 개발은 속도를 낼 수 있었다. 크고 작은 어려움은 끊임없이 이어졌지만 ‘국산 수퍼카’ 개발을 향한 두 사내의 의지를 꺾을 만큼은 아니었다.


“정주영 회장 만큼의 회사를 일구고 싶은 성공에 대한 욕심도 있었다. 스피라 사업은 모험이 필요한 매력적인 아이템이었다”고 박 사장은 말했다. 이어서 그는 “판단이 틀리지 않아서 행복하다”라며 활짝 웃었다. 3월 29일, 스피라 발표회에서였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