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동. 기아차를 만날 때마다 어쩔 수 없이 떠오르는 이름이다. 큰 집 아이를 넘어서서는 안 돼는 작은 집 아이의 처지, 홍길동은 어쩌면 기아차의 운명일지 모른다. 스토닉을 만나면서 또 다시 홍길동을 만난다.
가솔린 엔진, 사륜구동. 코나에는 있고 스토닉엔 없는 것들이다. 같은 디젤 엔진을 사용했지만 코나는 136마력이고 스토닉은 110마력이다. 헤드업 디스플레이, 스마트폰 무선충전 등도 코나의 전유물이다. 무엇보다 상징적인 장면. 코나는 해외 언론까지 초청해 정의선 부회장이 직접 프레젠테이션을 하며 소개했다. 그에 비하면 스토닉의 데뷔는 조촐했다. 호형호제를 못하는 홍길동의 설움 저리 가라할 정도다.
그렇다고 코나가 좋고 스토닉이 나쁜 건 아니다. 약한 힘은 100KG 이상 가벼운 몸무게로 보완했고 가진 게 부족한 만큼 가격은 더 낮게 책정할 수 있었다. 소형 SUV에서 저렴한 가격은 가장 강력한 무기일 수 있다. 차별이 서럽지만 그로 인해 가격이 낮아져 싸워볼만한 무기가 생긴 셈이다. 반전이다.
디자인은 또 하나의 무기다. 소형 SUV로서 드물게 완성도 높은 비례로 단정하게 마무리했다. 개인적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는 게 디자인이다. 안정감이 돋보이는 스토닉은 소형 SUV에 걸맞는 화려한 컬러까지 겸비했다. 지갑을 만지작거리는 소비자들을 유혹할 충분한 매력을 가졌다.
뒷좌석은 차급에 비해 넓다. 무릎 앞 공간, 머리 윗공간 모두 여유가 있다. 센터터널은 손가락 두 마디 정도로, 무시해도 좋을 만큼이고 뒷좌석 가운데 좌석도 불편하지 않다. 여유 있는 공간 말고는 뒷좌석을 위해 마련된 장비가 없다. 딱 하나 USB 단자가 센터콘솔 뒤로 배치돼 있다. 홍길동의 괴나리 봇짐만큼 단출한 뒷좌석이다.
손에 쏙 들어오는 스티어링 휠은 2.5회전한다. 타이트한 조향비에 토크벡터링이 더해져 매끄러운 코너링이 가능했다. 핸들을 살짝 살짝 흔들 때마다 차체는 짜릿하게 반응했고 교차로의 커브 길을 왈츠를 추듯 부드럽게 돌아나갔다.
속도와 차의 무게에 무너지지 않고 정확하게 작동하는 브레이크도 인상적이었다. 고속에서도, 저속에서도 일관된 반응이었다. 브레이크에서 발을 뗄 때 나타나는 회복반응도 빨랐다. 조향과 브레이크 반응은 스토닉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었다.
110마력이라는 조금 부족해 보이는 출력은 30.6kgm의 굵은 토크가 보완했다. 힘차게 치고 나가는 힘은 아니지만 꾸준히 밀어붙이며 속도를 올려 고속주행까지 매끄럽게 마무리했다. 극한적으로 속도를 올리면 미세한 떨림이 커지는 부분이 드러났지만 앞바퀴굴림인 소형 SUV로선 당연한 반응이다. 그 속도까지 끌어올렸다는 게 의미가 크다.
공기저항 계수 0.34로 바람을 가르는 소리를 효과적으로 잡았고, 엔진 소리도 속도에 비해 크지 않다. 100km/h 전후의 일상적인 속도에서는 편안한 실내를 만끽할 수 있다.
최저지상고 183mm로 일반적인 SUV들 수준을 확보하고 있지만 실내에서 느끼는 차의 높이는 세단과 비슷한 수준이다. 나란히 달리는 세단들과 비슷한 눈높이를 가진 것. 시트 포지션이 낮아서 SUV 느낌이 들지 않는다. 차 높이로만 본다면 프라이드를 타는 느낌이다.
1.6 디젤 엔진의 힘을 조율하는 건 7단 DCT다. 빠른 변속반응으로 가속을 이어가고, 또한 힘을 아끼는 효과도 크다. 연비와 성능에 모두 효과를 내는 변속기다. 시프트 다운은 기대만큼 확실하게 반응하지 않았다.
시속 100km에서 rpm은 1600~1700 정도를 마크한다. 낮은 배기량이지만 큰 힘을 쓰지 않고도 이 속도를 유지하는 것. 변속레버를 이용해 수동변속을 해보면 4~7단에서 100km/h를 커버한다. 효율에 조금 더 무게를 둔 세팅이다.
차선이탈 경보장치, 전방충돌방지 보조, 하이빔 보조, 운전자 주의 보조 등으로 구성되는 드라이브 와이즈는 전 트림에서 선택할 수 있다. 85만원을 더 줘야 하지만, 필요하다면 모든 트림에서 이를 선택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레이더와 카메라로 작동하는 차선이탈 경보장치는 매 순간 차선을 밟을 때마다 충직하게 경보음을 낸다. 조향에 직접 개입하는 것은 아니다. 크루즈 컨트롤 역시 정속주행만 수행한다. 어댑티브나, 스마트 크루즈컨트롤이 아니다. B 세그먼트 SUV에 딱 맞는 수준의 장비다. 더 욕심을 낼 수도 있겠지만 가격 상승까지 감안해야 한다.
스토닉에는 직진제동쏠림 방지장치가 있다. 좌우 제동력 차이를 보정해주는 기능이다. 브레이크 편제동을 막아주고 직진주행안정성을 높여준다.
205/55R17 사이즈의 넥센타이어를 신었다. 디럭스에는 15인치 타이어, 트렌디와 프레스티지 트림에 17인치 타이어를 사용한다. 17인치 타이어를 사용할 경우 연비는 16.7km/L. 1등급이다. 16.2km/L인 코나와 비슷한 수준이지만 조금 더 낫다.
86km를 시승한 뒤 실제 주행 연비는 15.1km를 기록했다. 가속, 가감속, 고속주행, 제동 등을 수시로 이어가는 주행패턴이어서 연비에는 가혹한 조건임에도 이 정도를 기록한 것. 평범한 주행을 한다면 공인 연비 이상을 충분히 기대해도 좋겠다.
판매가격은 1,895만원부터 2,265만원이다. 코나 디젤엔진은 2,090만원부터 2,620만원까지다. 엔트리급 기준으로해도 100만 원 이상 스토닉이 싸다. B 세그먼트에서 이 정도 가격 차이라면 무시할 수 없는 수준.
스토닉으로선 작은 집의 설움을 딛고 반전을 꿈꿔볼만하겠다. 홍길동, 스토닉의 반전은 가능할까. 시장을 지켜볼 차례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크루즈컨트롤을 작동시키면 정해진 속도가 표시되지 않는다. 계기판을 보며 속도를 알 수는 있지만, 그래도 정확한 속도를 표시해줘야 하는 게 맞다.
트렁크 아래 스페어타이어가 있어야할 곳은 텅 비어 있다. 스페어타이어도, 응급조치를 할 수 있는 키트도 없다. 둘 중 하나는 있어야 한다. 둘 다 없는 건 문제다. 기아차 관계자는 응급키트가 있는데 시승차에서는 잡소리 발생 우려가 있어 치웠다고 설명했다. 이 또한 문제다. 시승차는 어떤 추가 조치도 없이 있는 그대로 제공되어야 한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