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조가 508을 출시했다. SW와eHDi가 먼저 출시했고 GT 버전이 준비중이다.508은 607의 계보를 이으며 푸조의 플래그십으로 자리할 차다. 608이 아니라 508인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쉽게 풀자면 6과 4를 5로 합쳤다고 할 수 있다. 푸조는 이처럼 종종 일관성을 벗어나는 모델 라인업과 네이밍을 시도하곤 한다.
오늘 시승할 모델은 eHDi로 마이크로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적용한 차다. 푸조의 자랑인 고효율 디젤엔진인 HDi에 마이크로 하이브리드 시스템, 그리고 푸조만의 변속기 MCP가 더해진 모델. 차의 구성만으로도 이 차의 효율이 놀라운 수준일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놀라운 연비를 보여준 HDi와 MCP의 조합은 푸조의 다른 모델들에서 익히 경험한 바 있고, 여기에 마이크로 하이브리드가 더했으니 기대가 크다. 우려도 있다. 중형 세단으로 차가 크고 무거운 만큼 연비 향상의 한계도 있지 않을까하는 쓸데없는 걱정도 앞선다.
결론부터 보고 가자. 이 차의 연비 22.6km/L다. 중형세단의 크기를 가진 차로서 믿기 힘든 연비를 구현해내고 있다. 비결은 앞서 말한 세 가지 요소다. 디젤엔진, MCP, 그리고 마이크로 하이브리드 시스템. 이 셋이 어우러져 환상의 연비를 만들어 냈다.
마이크로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e 부스터가 핵심이다. e 부스터가 엔진동력에 힘을 보태는 방식. 여기에 배터리를 통한 충전과 브레이크 회생제동, 아이들 스톱 등의 기능을 더해 효율의 극대화를 노렸다. 배터리의 힘만으로 차가 구동하지는 않는다.
복스러운 디자인이다. 비쩍 마른 미인이 아니라 적당히 살이 붙은 모습이다. 보기도 편하다. 볼륨감 있게 만들어진 디자인은 지금까지 봐왔던 푸조의 이미지와 거리가 있다. 정통 세단의 비례를 충실하게 따르면서도 새로운 맛을 제대로 표현했다. 뒷모습은 LED 램프로 멋을 냈다. 푸조의 상징인 사자의 발톱 자국을 표현했다는 램프다. 밤에 리어램프를 보면 유니크한 분위기를 맛볼 수 있다.
운전석에 앉으면 단단한 느낌을 받는다. 계기판은 다소 복잡하고 나머지 부분은 단순화했다. 계기판에는 속도계와 rpm 게이지를 중심으로 오일, 냉각수, 연료게이지, 크루즈 컨트롤, 변속기 단수 표시, 연료잔량 주행거리, 평균연비, 에코 표시등이 빽빽하기 자리했다. 에코 등은 주행하는 동안 엔진이 꺼진 시간을 표시해준다.
전체적으로 많은 정보를 계기판을 통해 얻을 수 있다. 정보량이 많은 대신 한 눈에 정확하게 알기는 쉽지 않다. 많은 정보가 나열된 탓이다. 적응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헤드업 디스플레이도 있다. 주행속도, 크루즈컨트롤 세팅 속도가 표시된다. 내비게이션과는 연동되지 않는 단순한 형태의 헤드업 디스플레이다. 프리미엄 럭셔리 세단에서도 흔치않은 장비지만 푸조는 508은 물론 308 등 비교적 아랫급 차종에도 장착하고 있다.
계기판은 복잡하지만 센터페시아는 단순함 그 자체다. 뭔가 허전하고 빠진 듯 한 느낌이다. 윗 부분에 공조 스위치가 자리했고 그 아래 가운데 부분에 내비게이션 모니터가 자리했다. 그게 전부다. 오디오 컨트롤 스위지는 생략됐다. 오디오는 핸들에 달린 스위치를 이용하거나 내비게이션 모니터를 통해 터치스크린으로 조절한다.
뒷좌석은 넉넉한 공간을 확보했다. 센터콘솔 뒤로는 뒷공간을 위한 송풍구가 마련됐다. 넓고 쾌적한 뒷공간이라 뒷좌석 승객들이 좋아하겠다.
508 악티브 eHDi는 상반된 두 개의 얼굴을 가졌다. 푸조의 플래그십 차종인 508의 외형을 가졌지만 엔진은 고작 1.6리터 급이다. 큰 차체에 작은 엔진. 한국에선 나쁘지 않은 조합이다. 엔진 배기량과 상관없이 큰 차체를 좋아하는 소비자들이 한국엔 많다. 1.8리터급 중형차가 많이 팔렸던 것이 이를 말해준다.
1.6리터의 디젤엔진이 내는 최고출력은 112마력. 연약해 보이는 숫자다. 제대로 움직일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바로 이 대목에서 푸조의 과감한 결단을 본다. 도저히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큰 차체에 작은 엔진의 조합을 완성시킨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더구나 고출력과 다이내믹함이 미덕인 유럽시장에서라면 더더욱 어려운 결정이다. 하지만 푸조는 그렇게 차를 만들었다.
왜 그랬을까. 궁극적으로 최고의 연비를 만들어내겠다는 의지였다고 본다. 중형 세단에서 최고의 연비를 만들어내기 위해 동원 가능한 모든 자원을 끌어 모은 것이다. 그렇게 해서 이 차의 연비는 22.6km/L를 기록한다.부족한 듯 한 출력은 토크가 보완한다. 최대토크 27.5kgm은 1750rpm부터 발휘된다. 차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바로 최대토크가 나온다고 보면 된다. 일상주행영역에서 최대토크를 만들어내는 것. 최고출력이 낮아 고속주행에서는 불리하지만 부족함 없는 최대토크 덕에 일상주행 영역에서는 불편함 없이 달릴 수 있다.
시동버튼은핸들왼쪽에 있다. 시동키가 왼쪽에 있는 포르쉐가 떠오른다. 전혀 상반된 성격의 차가 왼쪽에 시동장치가 있다. 포르쉐는 일초라도 빨리 차를 움직이기 위해 시동키를 왼쪽에 배치했는데, 508은 왜 왼쪽에 시동버튼을 뒀을까. 궁금한 대목이다.
시내주행 중에는 수시로 시동이 꺼진다. 차가 정지하면 바로 엔진도 따라 멈춘다. 아이들 스톱 기능이다. 푸조는 이 기술에 i스타트 기능이라고 이름 붙였다. 브레이크 페달에서 발을 떼는 순간 다시 시동이 걸린다. 소요시간은 0.4초. 버튼을 눌러 시동을 거는 것 보다 빠르다고 푸조는 설명한다.
i 스타트 기능은 3세대로 발전했다. 시동을 껐다가 조금 움직인 뒤 다시 멈추면 시동이 또 꺼진다. 기존 시스템의 경우 한번 꺼졌다가 시작된 엔진이 곧바로 다시 꺼지는 경우는 드물다. 그만큼 세심하고 정교해졌다.
정지 상태에서 가속페달을 밟으면 조심스럽게 출발한다. 생각이 많은 아이 같다. 시키는 일을 빨리 하지 않고 멈칫 거리며 가야하나 말아야하나, 다른 길은 없나 이런 저런 생각으로 동작이 꿈뜬 아이를 닮았다. 타이어 슬립이 일어날 수가 없다. 가속 페달을 깊게 밟으면 뒤에서 잡아끄는 것처럼 멈칫 거린다. 이후 서서히 탄력을 받고 나간다. 은근과 끈기로 가속을 이어나가는 타입.
움직이기 시작한 뒤에 서두르지도 않는다. 여유 있는 발걸음으로 차근 차근 속도를 높인다. 가속성능 그래프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변속할 때에는 MCP 특유의 멈칫거림도 여전하다. 스포츠 모드를 택하면 멈칫거림이 조금 개선된다.
시속 140km를 넘기면서 A 필러 바람소리가 커진다. 타이어의 구름저항 소리도 약하게 들린다. 연비 향상을 위해 미쉐린 에너지 세이버 타이어가 적용됐다. 엔진 소리는 바람에 묻혀 거의 들리지 않는다. 시속 190km를 넘기기 쉽지 않고 고속주행중에는 가속을 이어가기도 쉽지 않다.
속도를 낮추면 다시 가속을 하기가 쉽지 않다. 상당 시간이 필요한 것. 심리적으로 여유를 가지고 차를 다뤄야 한다. 가속페달을 깊게 밟고 빨리 가기를 재촉하면 차도 운전자도 스트레스를 받는다.
6단 변속기인데 4, 5, 6단이 오버드라이브가 된다. 4단부터 가속이 쉽지 않다는 말이다. 성능보다는 엔진의 효율을 극대화하는 변속기어비다. 차의 모든 부분이 이처럼 효율을 높이기 위해 세팅됐다. 성격이 매우 분명한 차다. 정지 상태에서 가속을 이어가면 시속 40, 70, 95, 130, 160km에서 각각 변속이 일어난다. 스티어링 휠은 아랫부분이 살짝 직선인 이른바 D컷 핸들이다. D자를 좌로 90도 회전시킨 형태다. 핸들을 쥔 채 변속할 수 있는 패들시프트가 달려있어 편하다.
푸조 508 악티브 eHDI는 엔진의 힘을 극대화하기 위해 다른 부분은 많이 억제한 게 돋보인다. 오로지 연비, 분명한 성격을 드러내는 차다. 나름대로 재미있다. 엔진 시동이 꺼지고 다시 켜지는 부분은 가장 세련된 반응을 보인다.
극도의 효율이 빚은 프랑스판 짠돌이다. 작은 엔진을 큰 차에 올린, 쉽지 않았을 ‘발상의 전환’에 박수를 보낸다.
가속성능메이커가 발표한 이 차의 0-100km/h 가속 시간은 11.9초. 하지만 계측기를 달고 실제 측정한 기록 중 최고기록 12.89초, 480.04m였다. 수차례 테스트를 했는데 14초대 기록이 가장 많았다.
제동성능시속 100km에서 급제동을 한 뒤 완전 정지할 때까지의 시간과 거리를 구했다. 제동시간은 2.73초. 제동거리는 38.21m 로 측정됐다. 다른 차들에 비해 비교적 제동거리가 짧은 편이다. 급제동을 하면 비상등이 자동으로 깜빡인다.
오종훈의 단도직입내비게이션 모니터는 센터 페시아 아랫부분에 위치했다. 내려다보기가 부담스럽다. 각도를 조절할 수 는 있지만 그래도 시선을 밑으로 내려다 봐야 한다. 전방 시선을 놓치지 말아야 하는 운전자에겐 아래로 내려다 봐야 하는 게 부담이다. 내비게이션 모니터를 센터페시아 위로 올리고 공조스위치를 아래로 내리는 게 좋겠다.
시승 / 오종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