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한국 자동차 시장에 뒤늦은 하이브리드카 시대가 열렸다. 현대기아차가 쏘나타와 K5 하이브리드가동시에 한국에서의 하이브리드 시대를 활짝 열었다.
애매한 건 사실이다. 수입 하이브리드카도 있고, 이미 LPi 하이브리드가 있었기 때문이다. LPi 하이브리드를 본격 하이브리드라고 하긴 무리가 있고 판매량도 많지 않았다. 국내 메이커가 만든 가솔린 하이브리드를 한국 하이브리드카 시대의 기점으로 삼아도 큰 무리는 없다. 하지만 너무 늦은 감이 있다. 렉서스가 미국에서 하이브리드카를 판매하기 시작한 게 97년이니 벌써 15년 전이다. 뒤늦게 후발주자로 뛰어든 현대차가 만든 하이브리드카는 과연 어느 수준일까. 강원도 양양에서 쏘나타 하이브리드를 만났다. 모두 알듯이 쏘나타 하이브리드와 K5 하이브리드는 같은 파워트레인에 디자인만 다른 쌍둥이 차다.
쏘나타의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풀 하이브리드 방식으로 현대차가 독자 개발했다. 선발 업체들이 촘촘하게 짜놓은 특허의 그물망을 피해 후발업체의 존재감을 과시했다.2.0 누우 엔진과 6단 자동변속기, 그리고 30kw짜리 전기모터, 리튬 폴리머 배터리가 현대의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구성하는 요소들이다. 현대차는 엔진동력과 배터리와 모터를 이용한 전기의 힘을 각각 이용하는 병렬형을 택했다. 엔진 클러치까지 적용한 병렬형 TMED 방식으로 폭스바겐 투아렉, 아우디 Q7, 포르쉐 카이엔, 닛산 푸가 등이 같은 형식을 취하고 있다. 저출력 모터와 적은 용량의 배터리로도 하이브리드 기능을 충분히 낼 수 있다고 현대 측은 설명했다. 리튬 폴리머 배터리는 270V, 5.2Ah, 72셀의 제원을 갖췄다.
병렬형 하이브리드 방식은 엔진 출력에 모터 출력을 더하면 총 시스템 출력이 된다. 엔진 힘으로 발전기와 모터를 지원해야하는 직렬형이나 동력분기형과는 다르다. 2.0 엔진에서 나오는 150마력과 30kw짜리 모터에서 나오는 약 41마력의 힘을 더하면 이 차의 총 출력 191마력이 된다.
쏘나타 하이브리드는 쏘나타와 디자인이 다르다. 번쩍이는 그릴로 강한 인상을 남기는 쏘나타 대신 쏘나타 하이브리드는 날렵한 V형 크롬 라인 아래 헥사고날 그릴을 배치했다. 훨씬 부담없는 디자인이다. 화려하고 튀는 쏘나타는 보기에도 부담이 큰 디자인이다. 이에 비해 쏘나타 하이브리드는 훨씬 안정감 있고 보기에도 부담이 없다. 투명창과 LED를 적용한 리어콤비 램프는 깔끔하다. 도어 하단부 크롬몰딩, 각을 준 리어 범퍼 등이 외관상의 특징을 이룬다. 여기에 측면의 블루드라이브, 후면의 하이브리드 표기가 이 차이 정체성, 하이브리드임을 말해주는 표시들이다.
하이브리드 전용 클러스터가 적용된 계기판은 선명한 화면으로 주행정보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경제운전에 따라 에코 스코어를 보여주는 기능도 갖췄다. 내비게이션 모니터로도 주행 중 에너지 흐름, 연비정보 등을 알려준다. 연비정보가 실시간으로 표시되는 것을 보면 가속페달을 쉽게 밟을 수 없다. 가속페달을 밟다가도 연비 정보를 보게 되면 슬며시 발을 떼게 된다. 보는 것만으로도 연료를 아끼는 효과를 내는 것이다. K5에는 rpm 게이지가 조그맣게 라도 있었는데 쏘나타 하이브리드에서는 생략됐다. 핸들과 가죽 시트에는 파란 실로 기운 블루 스티치를 넣어 하이브리드임을 강조했다.
가상 엔진 사운드 시스템이 있다. 엔진 소리가 나지 않는 전기모터로 주행할 때 보행자의 안전을 위해 일부러 엔진 소리를 만들어 내보내는 것이다. 시속 20km 미만에서 작동한다.
인테리어는 야무지다. 선명한 계기판에 날렵한 대시보드, 고급스러운 재질들이 수준급이다. 현대차의 차 만들기가 이제 세계적인 수준에 올라섰다고 봐도 좋을 정도. 지붕 끝 부분의 마무리나 인테리어의 질감 등이 나무랄 데 없다. 뒷좌석 바닥은 평평하다. 센터터널이 솟아오르지 않아 제한된 공간을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 좋다.
동해안엔 해무가 잔뜩 끼어 있었다. 운전을 방해하지는 않고 분위기 있는 풍경을 연출하는 안개였다. 안개 낀 길을 달리며 JBL 스피커를 통해 듣는 음악은 감미로웠다. 양양에서 강릉까지 왕복 110km 정도를 연비 위주로 운전하며 쏘나타 하이브리드와의 데이트를 즐겼다.
조용했다. 시동을 켜도 엔진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계기판에 ‘ready’라는 초록색 표시가 시동이 걸렸다는 증거. 시속 80km 까지는 귀를 자극하는 소리를 듣기 힘들다. 실내는 조용했고 노면 잡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엔진도 거칠지 않아 부드럽게 차체를 끌고 나간다.
수km를 달리자 평균연비가 21~23km를 보였다. 공인연비 21km/l를 웃도는 수준. 놀랄 일은 아니다. 에어컨 끄고 크루즈컨트롤을 이용해 60km 전후의 정속주행으로 얻은 연비다. 일반적인 주행조건과는 다르게 극도의 연비위주 운전을 한 결과. 국도를 50km 정도 달려 얻은 최종연비는 23.3km/l 였다. 가감속은 최대한 피했지만 오르막과 내리막을 피할 수는 없었다.
돌아오는 길은 고속도로를 이용해 26km/l를 넘는 연비를 얻었다. 계기판의 실시간 연비를 보며 운전하면 저절로 연비 위주의 운전을 하게 된다. 무조건 낮은 속도를 낸다고 연비가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60~80 전후의 속도에서 정속주행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상황이 허락한다면 크루즈 컨트롤을 이용하는 게 좋다. 얼마 전 K5를 시승할 때보다 연비가 좋게 나왔다. K5는 비교적 평평한 길이 이어지는 자유로에서 탔다. 쏘나타 하이브리드는 오르막이 간간이 있고 굴곡도 심한 국도를 달렸는데 K5 수준의 연비가 나왔고, 고속도로에서는 조금 더 좋은 연비였다. 같은 파워트레인의 차인데 연비 차이를 보이는 것은 디자인 때문으로 보인다. 쏘나타의 디자인이 공기저항을 조금 덜 받는 게 아닌가하는 짐작을 해본다.
배터리 충전상태가 좋을 때에는 EV 주행을 할 수 있었다. 엔진 소리가 끊기고 바람을 가르는 소리만 들으며 달리는 느낌은 색다르다. 하이브리드카를 탈 때마다 느끼는 기분이지만 늘 새롭다. 소리 없이 바람을 가르며 달리면 마치 유령이 된 느낌이다.
연비 측정을 마친 뒤 거칠게 차를 다룰 수 있었다. 191마력의 힘을 느껴보고 싶었다. 하지만 만족스럽지는 않다. 가속 페달을 밟아도 차는 한 박자 늦게 반응하고 그나마 힘 있게 따라오는 게 아니라 어딘지 비어있는 느낌으로 가속이 일어난다. 소리가 먼저 달리고 차체는 뒤따라 반응했다. 힘이 꽉 찬 느낌이 아니다. 힘을 써도 제대로 힘을 내지 못하는 그런 느낌이다.
차의 느낌은 가볍다. 무게감 있는 가속감이 아니다. 성능보다는 연비 위주로 차를 세팅한 느낌이 강했다. 가속페달의 킥다운 버튼은 생략됐다. 가속페달을 밟으면 중간에 걸리는 부분이 없다. 그냥 저항 없이 바닥까지 밟히는 페달이다.
속도를 높이면 노면 소음이 제법 들린다. 엔진이나 바람소리가 작아서 상대적으로 잡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것. 타이어는 최대 17인치가 적용된다. 에너지 효율을 위해 18인치 타이어는 하이브리드 모델엔 쓰지 않는다. 215 55R17 사이즈의 금호 솔루스 타이어가 장착됐다. 타이어 역시 공격적인 운전에는 약한 모습을 보인다. 슬라럼을 심하게 하면 뒤가 살짝 살짝 밀렸다. 브레이크는 만족할 수준이다. 운전자의 의도에 벗어나지 않게 잘 반응했다. 급제동도 거뜬히 소화했다.
싱겁다. 소금이니 고춧가루 싹 빼고 심심하게 만든 건강식을 먹는 그런 기분이다. 연비가 중요한 하이브리드이니만큼 살살 달리며 기름값 지출을 줄이는 재미가 쏠쏠한 차를 만드느라 달리는 즐거움을 많이 희생시킨 차다. 그렇게 작정하고 만든 차이니 당연한 일이다.
연비 위주의 하이브리드 차를 타면서 퍼포먼스에 갈증을 호소하는 건, 적어도 한국차에서는 모순이다. 퍼포먼스와 연비를 함께 잡는 수준까지를 기대하는 건 무리인 듯하다. 숙제가 있다는 건 발전할 희망이 있다는 말이다.
판매가격은 프리미어가 2,975만원, 로얄이 3,295만원이다. 쏘나타보다 ‘쏘나타 하이브리드’의 차량 가격은 개별소비세와 교육세를 각각 최대 100만원과 30만원을 감면 받아, ▲프리미어(PREMIER) 모델이 2,975만원 ▲로얄(ROYAL) 모델이 3,295만원이다. 쏘나타보다 428만원이 비싸지만 등록과정에서 세제혜택을 보면 280만 원 정도 더 부담하는 선에서 구매할 수 있다. 2-3년 차를 타면 기름값을 그만큼 아낄 수 있다고 보면 된다.
오종훈의 단도직입트렁크 마무리는 아쉽다. 트렁크 천장에 철판과 스피커가 그대로 노출돼 있다. 3,000만 원짜리 차인데 트렁크의 맨 철판을 드러내는 건 문제가 있어 보인다. 바닥재를 조금 더 써서 천장을 마무리하면 커버가 될 텐데, 큰 돈 드는 것도 아닌데 굳이 그런 부분까지 아껴야 하는지 의문이다. 트렁크 바닥 안쪽에는 스페어 타이어가 있다. 스페어 타이어가 굳이 필요한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왕 연비를 최고의 미덕으로 차를 만들었다면 과감히 스페어 타이어를 생략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