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브리드가 고속 충전한다. 한 시간이면 80km 가까이 EV 주행이 가능한 전력을 충전할 수 있다. 레인지로버 P550e가 그렇다.

레인지로버는 디자인부터 고급지다. 하나의 덩어리로 만들어진 오브제처럼 보인다. 가만히 살펴보면, 튀지 않는 디테일이 은은하게 스며있음을 비로소 알게 된다.

A, B, C, D 필러는 검은색으로 만들었다. 차체의 상하를 정확하게 구분하는 장치다. 지면에 단단하게 디딘 타이어는 22인치 타이어다.

레인지로버의 최신 모델 올 뉴 레인지로버 스탠더드 휠베이스(SWB) P550e 오토바이오그래피를 시승했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탑재한 모델이다.

큰 덩어리로 보이는 덩치가 상당하다. 1,870×5,052×2,003mm로 휠베이스는 2,997mm다. 실내에서는 공간이 주는 여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디자인은 실내로도 이어진다. 대시보드에는 모든 버튼을 없애고 대형 모니터를 통해 대부분 기능을 활용하게 된다.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에는 티맵 모빌리티를 담아놓았다. 컵 홀더를 살짝 밀면 그 아래 숨은 공간이 있다. 센터 콘솔은 두 단계로 조절할 수 있는 냉장 기능이 있어 시원한 음료를 넣어두고 이용하면 딱 좋다.

운전석 도어를 열어 B 필러 안쪽을 보면 이렇게 쓰여있다. “메이드인 유나이티드 킹덤.” 물론 그 뒤에는 인도 타타자동차가 있다. 주인은 인도 자본이지만, 영국에서 만든다는 자부심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뒷좌석은 고급스러움을 넘어 호화롭다. 호화로움의 상징은 전용 모니터다. 좌우로 1개씩, 중앙 팔걸이에 또 하나가 있어 필요한 기능과 정보를 제때 이용할 수 있게 해준다. 60w 용량의 C타입 USB가 2개, 모니터와 연결할 수 있는 HDMI 단자도 2개가 준비되어 있다.

가장 큰 특징은 급속충전이 가능한 PHEV라는 사실이다. 이 차의 등장으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는 완속 충전만 가능하다는 공식이 깨졌다. 급속충전기를 이용하면 최대 50kW급으로 빠르게 충전할 수 있다. 또 하나의 진일보한 기술을 레인지로버가 선보였다. 메르세데스 벤츠가 급속충전이 가능한 PHEV를 선보였지만, 아직 국내 출시 전이다.

어쨌든 빠르게 충전할 수 있는 길이 열렸으니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를 더 편하게 탈 수 있게 됐다. 엔진은 쉬게 하고 전기로만 움직일 수 있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자동차는 구조적으로 가장 복잡한 자동차다. 엔진, 변속기, 모터, 고전압 배터리, 12V 배터리, 충전 시스템 등을 모두 가졌다. 하나라도 없으면 참지 못하는 욕심꾸러기 닮았다.

38.2kWh 대용량 리튬 이온 배터리를 사용한다. 배터리 용량이 크다. 순수 전기차의 절반쯤 하는 용량이다. 배터리만으로 80km를 움직일 수 있다고 국내 인증을 받았다. 전기차로 사용하기에 충분한 성능이다. 배터리를 급속충전 할 수도 있으니 주유소 갈 일은 거의 없지 않을까 싶다. 급속충전기를 연결하고 한 시간쯤 밥 먹고 오면 완충된다.

실제로 급속충전기에 연결하니 충전 속도는 39.6~46kW로 나온다. 배터리 4%인 상태에서 주행가능거리는 2km, 나머지 96%를 충전하는 데에는 1시간 10분이 걸린다는 안내가 떴다. 처음에 충전기에서 에러 메시지가 떴고, 그 옆 다른 충전기에서 충전했다는 사실도 밝혀둔다. 7.2kW 완속 충전을 하면 5시간쯤 걸린다.

직렬 6기통 3.0리터 인제니움 가솔린 엔진, 8단 변속기와 통합된 160kW 전기 모터로 파워트레인을 구성한다. 최고 출력은 550마력이다. 힘을 쓸 때 중요한 또 하나의 변수는 무게다. 가벼우면 더 큰 힘을 쓸 수 있고, 무거우면 반대다. 보통의 SUV는 2톤 전후, 무거워도 2.5톤 정도다. 이 차는 3톤이 넘는다. 공차중량이 3,025kg이다. 1마력이 감당하는 무게는 5.5kg에 불과하다. 메이커에서 밝히는 시속 100km 주파 시간은 5.0초다. 무겁지만 빠른 몸이다.

주행의 질감이 그랬다. 가속할 때 전해지는 무게감이 있고, 또 빠르게 움직이는 반응은 스포츠카에 버금갔다. 속도를 높일수록 사륜구동이 주는 안정감이 살아난다. 하지만 차체가 높은 데서 오는 흔들림을 완전히 없애지는 못한다.

대체로 조용했다. 100km/h까지는 이렇다 할 소음을 느끼기 힘들다. 속도가 빨라지면 바람 소리가 조금씩 살아난다. 엔진 소리는 바람 소리에 덮여버린다. 그래도 대체로 조용한 실내를 유지할 수 있는 건 액티브 노이즈 캔슬링 시스템 등 수준 높은 소음 대책이 있어서다.

전기모드로 시속 140km까지 커버한다. 배터리만 허락하면 모든 주행 환경에서 전기차로 이용할 수 있을 정도다. 엔진을 잠재우고, 시속 90km 전후로 조용히 달리는 느낌은 전기차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주행 상황, 환경에 따라 전자식 에어서스펜션을 사용해 차 높이가 달라진다. 온로드 즉, 포장도로를 달릴 때 표준 지상고는 219mm다. 오프로드에서는 그 높이가 283mm까지 올라간다. 물 깊이 0.9m까지는 건널 수 있다. 엔진은 부드럽다. 가속해도 소리가 크지 않다. 고속에선 바람 소리가 엔진소리를 덮는다.

시승차를 전달받을 때 휘발유는 가득 찼고, 배터리 잔량은 0%였다. 계기판이 알려주는 주행가능거리는 540km. 배터리로 80%를 간다고 하면 600km는 거뜬히 움직일 수 있겠다.

주행 보조 시스템은 안정감 있게 작동했다. 차간 거리를 유지하며 정해진 속도 안에서 차선도 정확하게 유지했다. 차선 변경 지원은 안 된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의 연비는 딱 떨어지지 않는다. 모터 따로 엔진 따로, 사용하는 연료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공인복합 연비는 엔진 연비와 모터 연비를 따로 표기했다. 엔진은 8.7km/L, 모터는 2.4km/L다. 계기판은 엔진 연비만 표시한다. 배터리 잔량 39%인 상태에서 파주-서울 간 55km를 최대한의 경제운전으로 운행한 최종 엔진 연비는 55km/L로 표시됐다. 55km를 달리는데 배터리의 39%(약 15kWh)와 휘발유 약 1리터를 사용한 셈이다. 비용으로 환산해 보면 배터리 충전에 7,500원(kWh당 500원) 가솔린 1리터 1,700원으로 9,200원가량이다.

이 차의 판매가격은 2억 3,470만 원이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모니터는 노출되어 있다. 모서리의 각도 드러나 있어 인체와 부딪힐 위험이 있어 보인다. 노출보다는 매립하는 게 안전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자동차에서 안전에 앞서는 가치는 없다.
레인지로버의 역설이 있다. 오프로드의 제왕으로 불리지만 거친 오프로드에 들어서기에는 너무 비싼 차다. 진흙길 넘고, 바윗길 타고, 물길을 건너며 통쾌한 주행을 할 수 있지만, 그 뒤에 지출해야 할 비용을 생각하면 엄두 내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