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다 파일럿이 블랙 에디션을 내놨다. 안팎을 온통 검은색으로 마감한 스페셜 에디션인데, 놀라운 반전이 숨어 있다. 그 반전은 뒤에서 살펴보기로 하고.

혼다니까 일본 차라는 말은 맞는 말일까 틀린 말일까. 옆구리에 메이드인 USA라고 쓰여 있다. 원산지 기준으로 한다면 미국 차다. 일본 회사 혼다가 미국에서 만들어서 한국으로 수입해서 판매하는 차다. 차의 크기나 파워트레인 등을 보면 영락없는 미국 차다.

8인승 대형 SUV다. 차체 길이가 5m를 넘고 폭이 2m에 달한다. 당당한 크기는 도로 위에서 바로 느껴진다. 좁은 공간, 이를테면 주차장이나 골목길에서 움직임이 조심스럽고, 한 개 차로가 꽉 차는 느낌을 받는다.

V6 3.5 직분사 엔진을 썼다. 다운사이징의 시대가 한참 전에 지났고, 이제 전동화 시대로 넘어가는 이 시대에 3.5리터 대배기량 엔진을 고집하고 있다. 289마력. 배기량에 비해 센 힘은 아니다. 중요한 건 무게다. 그 힘이 업고 달리는 무게가 어느 정도냐. 공차 중량이 2,130kg이니 1마력이 감당하는 무게는 7.37kg 정도가 된다.

그 힘을 조율하는 건 10단 자동변속기다. 10단은 상징적이다. 승용차에 사용하는 가장 높은 단수의 변속기다. 인간계를 넘어서는 다단변속기라 할 수 있겠다. 시속 100km에서 1,600rpm을 마크하는데, 10단이 아닌 9단이 걸린다. 같은 속도를 유지하면 4단으로 내리면 엔진 회전수는 4,500rpm에 걸린다.

타이어 크기는 255/50R20이다. 50 시리즈를 택했다는 것, 성능과 효율의 균형을 고려한 타이어 선택으로 보인다. 사륜구동 시스템은 힘을 쓸 때 앞으로 좀 더 많은 구동력을 보낸다. 고속주행 안정감, 코너에서 안정된 자세와 더 높은 한계속도, 그리고 오프로드에서 탁월한 구동력 확보 등이 사륜구동에서 기대할 수 있는 효과다.

시승 코스 마지막에 만난 오프로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피할 수도 있지만 사륜구동 시스템이 있어서 굳이 피할 이유도 없었다. 아주 험한 길은 아니어서 아주 편하고 나이스하게 오프로드를 통과할 수 있었다. 세단이 움직이기는 힘들고, 이륜구동 SUV라면 가끔 헛바퀴를 돌며, 조금 힘들지만 그래도 움직일 수 있는 길이었다.

공짜는 없다는 말, 자동차 세계에서는 진리다. 고속에서 안정적이고, 코너에서 한계속도 높고, 오프로드에서 탁월한 구동력을 보이는 사륜구동은 무게, 연비, 가격에서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시승차의 연비는 8.3km/L다. 배기량, 무게, 차체 사이즈 등을 감안하면 뭐 그럴 수 있겠다 싶지만, 그래도 리터당 10리터가 안 되는 연비는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다. 다행스러운 건, 영흥도-서울 간 90km 구간을 에코 모드, 경제운전으로 달린 평균 연비는 10.7km/L로 두 자릿수를 기록했다는 사실이다. 적극적으로 연비 운전을 하면 이 정도 수준을 기록한다는 정도로 참고삼아 밝혀둔다.

블랙 에디션이니까 인테리어도 당연히 블랙이다. 지루함을 덜고 포인트를 준다는 의미로 빨간 스티치를 적용하고, 시트에도 빨간 바탕을 두고 블랙을 썼다.

혼다는 이 8인승 공간을 아주 영리하게 구성하고 있다. 2, 3열에 3인승 시트를 배치했는데, 2열 가운데 시트로 변화구를 구사하고 있다. 접어서 테이블로 쓸 수 있고, 떼어내서 공간을 비워둘 수 있게 한 것. 떼어내면, 좌우 시트는 서로 분리된, 이른바 캡틴 시트가 된다. 떼어낸 시트는 트렁크 아래에 준비된 공간에 수납할 수 있다.

‘혼다 센싱’으로 불리는 주행 보조시스템은 조금 더 완성도를 높였다. 좌우 차로까지 3개 차로를 모니터하면서 차로 중앙을 유지하면서 도로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했다.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저속 추종 시스템, 차선이탈방지장치, 트래픽 잼 보조, 도로이탈경감 시스템, 추돌경감 제동 시스템, 오토 하이빔, 저속브레이크 컨트롤 등으로 혼다센싱을 구성하고 있다.

블랙, 즉 검은색은 폭이 넓다. 무난하기도, 특별하기도 한 색이다. 누구나 검은색 셔츠나 바지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 보편적이지만, 법관의 법복처럼 권위적이기도 하다. 70, 80년대 도로 위를 달리는 자가용은 대부분 검은색으로 부와 권위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블랙 에디션’은 자동차 업계에서는 단골 메뉴다. 메이커와 브랜드를 막론하고 ‘블랙’은 잘 먹히는 아이템인 셈.

검은색이 작아 보인다고는 하지만, 혼다 파일럿 블랙 에디션은 압도적인 존재감을 드러낸다. 워낙 덩치가 크기 때문이겠다. 압도적인 존재감을 뿜어내는 블랙 카리스마인데 놀라운 반전이 있다.

파일럿 블랙 에디션 국내 출시를 알리는 혼다의 보도자료 마지막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파일럿 블랙 에디션의 가격은 7,090만 원(VAT포함)이며, 컬러는 블랙, 화이트 2가지로 판매된다.” 블랙 에디션에 보디 컬러가 화이트인 모델도 있다고? 화이트야말로 블랙의 반전이겠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내장 내비게이션이 없다. 스마트폰에 의지해야 한다. 애플 카플레이는 블루투스로 무선 연결이 되는데, 안드로이드 오토는 USB로 유선 연결해야 한다. 아쉽다.음성인식 기능은 제한적이다. 정해진 명령에는 잘 대응하는데, 이를 벗어나면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는다. 3열 시트는 앞뒤로 여유가 있지만 셋이 앉으면 옆으로 좁겠다. 8인승이나 7인승이나 큰 차이 없으니 3열 시트는 둘이 앉게 만들면 좋겠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