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나메라 4를 만났다. 파나메라 3세대다.
911의 포르쉐가 SUV 카이엔을 거쳐 파나메라를 만든다고 했을 때 믿기 힘들었다. 설마…. 2009년 5월 상하이에서 첫선을 보였으니 15년이 됐다. 그해 3월 독일 바이삭, 포르쉐 R&D센터에서 처음 만난 파나메라를 보면서 앤젤리나 졸리를 떠올렸다. 늘씬한, 키가 큰, 아름다운 그녀. 파나메라였다.
작년, 한국에서 파나메라는 1818대가 팔렸다. 글로벌 넘버 3다.
911의 편안한 버전이다. 포르쉐를 타고 싶지만 911은 딱딱해서 힘들고, 조금은 편하게 타고 싶을 때 선택하는 게 파나메라와 카이엔이다. SUV가 싫으면 파나메라고, 세단이 싫으면 카이엔인데 어쨌든 포르쉐, 즉 스포츠카여야 하는 소비자들의 선택이다. 3세대 파나메라는 더 광범위한 디지털 기능과 인상적인 디자인, 역동적인 성능과 주행 편의성이 특징이다.
실내에 들어서면 네 개의 모니터가 반긴다. 12.6인치 커브드 디지털 클러스터, 10.9인치 내비게이션 모니터, 10.9인치 조수석 모니터, 그리고 헤드업 디스플레이. 운전석에서 조수석 디스플레이는 볼 수 없다. 운전석에서 고개를 옆으로 잔뜩 숙여야 조수석 모니터가 보일 듯 말 듯 하다. 안전을 위한 조치다.
단단한데 딱딱하지는 않다. 편한데 잘 달리고 날카로운 조향이 어떤 코너에서도 살아 나간다. 포르쉐 액티브 서스펜션 매니지먼트(PASM)가 어떤 상황에서도 차체를 ‘기똥차게’ 받아준다. 듀얼 챔버 2밸브 에어서스펜션을 기본 적용한 결과다. 댐퍼를 리바운드와 컴프레션, 즉 수축 이완으로 분리해서 조절한다.
브레이크를 콱 밟아도, 가속페달을 꾹 밟아도 수평을 유지하는 차체가 신기할 정도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포르쉐 액티브 라이드 서스펜션 시스템이 있어서 가능한 반응이다. 부드럽게, 날카롭게, 흔들림 없이 움직인다. 감탄사와 함께 나오는 말 “아! 포르쉐”다.
차체 크기 5,052×1,937×1,423mm에 휠베이스 2,950mm다. 공간 그 자체에서 전해오는 여유로움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는 크기다. 게다가 뒷좌석이 2인승으로 구성돼 최대 네 명이 타면 된다. 센터 터널이 아주 높게 솟아 있어도 공간의 제약은 없다. 4인승이니까. 트렁크는 494리터인데 뒷좌석을 접으면 1,328리터까지 확장된다. 실내도 트렁크도 넓디넓다.
공기저항 계수는 0.28로 일상 주행 영역에서는 바람 소리 들을 일이 거의 없다. 과속 딱지를 받을 정도의 속도에서 살짝 바람 소리가 들릴 정도다. 부메스터 오디오가 그 바람 소리를 눌러버린다. 고속도로 100~110km/h 구간에서 편안하게 움직인다. 이보다 더 편한 차가 없다.
깜짝할 사이에 변신한다. 달리기 시작하면 “뭐 이런 놈이 있어?” 할 정도로 빠르게 움직인다. 꼭지점을 향해 빨려 들어가듯 몽롱하게 달려간다. 2.9 리터 V6 터보 가솔린 엔진의 360마력이 전력 질주하는 반응이다. 8단 PDK는 변속이 일어날 때마다 박력 있게 변속한다. 딱딱 끊어지는 변속충격이 정확하게 전달되는 것.
시속 100km 가속 시간은 정확하게 5.0초라고 제원표는 말하고 있다. 공차중량 1,920kg으로 마력당 무게가 5.3kg인데 GPS 계측기로 가속 시간을 측정했더니 공인기록보다 더 빠른 4.75초가 나온다. 공인기록보다 더 빠른 기록을 만나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심지어 9차례의 평균 기록도 4.99초로 공인기록을 뛰어넘는다. 대단한 가속이다. 주행 모드 스포츠 플러스에 더해 20초간 힘을 몰아주는 부스트 기능이 제대로 작동한 결과다.
앞에 6 피스톤 알루미늄 모노블럭, 뒤에 4 피스톤 알루미늄 모노블럭 브레이크다. 고성능을 제대로 뒷받침해 주는 제동장치다. 툭, 툭 브레이크를 잡는데 수평을 유지한 채로 제동반응이 일어난다. 꾹 꾹 가속페달을 급하게 밟는데 여전히 차체는 수평이다. 차체 흔들림이 생각보다 크지 않아 체감속도와 실제 속도 차이가 크다. AWD, 사륜구동 시스템이 있어서 고속주행 안정감이 더 크게 다가온다.
주행보조 시스템은 완성도가 매우 높다. 차간거리를 네 단계로 설정할 수 있고, 차선을 벗어나지 않게 조절해주고, 뒤에서 따라오는 차가 있으면 차선 변경할 때 경고를 날려준다. 운전자가 아차 하고 놓치는 부분을 주행보조 시스템이 정확하게 확인하고 필요할 때 경고해 준다.
고속주행을 할 때 눈을 들어 정면을 보면 시선이 걸리는 곳에 헤드업 디스플레이가 펼쳐진다. 앞 차창에 넓고 선명하게 주행 정보들을 펼쳐서 보여준다. 다른 곳을 볼 필요가 없을 정도로 필요한 정보면 정확하게, 선명하게 띄워준다.
군산을 지나 선유도까지 달렸다. 왕복 500km 정도다. 군산에서 서울까지 220km를 달린 연비는 10.6km/L였다. 공인복합 연비 8.0km/L보다 훨씬 더 좋은 연비를 보인 것.
판매가격은 1억7,670만원부터다. 포르쉐의 사악한 가격은 옵션 하나하나 더 선택해야 하고 그럴 때마다 가격은 올라간다. 필요한 이런저런 옵션들 추가한 시승차의 출고 가격은 2억 1,890만원이다. 누구나 쉽게 다가설 수 없는 가격이라 진입장벽이 높긴 한데, 그렇다고 아주 불가능한 벽은 아니어서, 목표로 삼을 만한 가격대라고 할 수는 있겠다. 그래서 ‘접근 가능한 상한선에 있는 차’라고 할 수 있겠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내비게이션은 좀 더 섬세하게 진로 안내를 해주면 좋겠다. 갈림길에서 확대화면이 뜰 때도 있고 안 뜰 때도 있어서 확대화면이 안 뜨면 당황스럽다.
연비 8.0km/L는 부담스럽다. 게다가 주행모드에 에코 모드도 없다. 스포츠 세단이라고는 하지만 늘 스포츠 모드도 다이내믹하게 달릴 수는 없는 법이다. 스포츠카에도 에코모드는 있어야 한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에코모드가 없어서 아쉽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