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형의 하이빔 44] 법인용 번호판 무엇이 문제인가.
2022년, 대통령 선거 공약 중 법인 차를 개인용도로 타고 다니는 것을 막기 위해서 별도의 법인용 번호판을 부착하는 방안이 있었다. 결국 검토 기간을 통해 올해부터 연두색 번호판을 단 법인 차가 도로에서 보이기 시작했다.
무슨 기준으로 연두색 번호판을 부착할까?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신차 가격 기준 8천만 원을 기준으로 그 이상일 경우 연두색 번호판을 도입한다는 것으로, 보험상 고급 차의 할증 기준을 대상으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얼마 전 읽었던 언론 기사 중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법인차량 10대 중 4대는 운행일지 작성 안 해’
‘2017~2021년’ 지난 5년간 업무용 승용차로 신고된 법인차량은 총 419만 대인데 그중 116만 대가 차량 운행일지를 작성하지 않았다는 내용이다. 이 기사를 보고 갑자기 업무용 차 운행일지를 쓰던 기억이 떠오른다.
2016년 상반기였나보다. 동네 현대자동차 지점장을 하고 있을 때였다. 본사에서 공문이 왔는데 무슨 말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지점장의 업무용 차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앞으로는 지점장이 회사에서 지원하는 업무용 차를 사용하면서 매주 운행일지를 쓰라는 것이었다. 그냥 쓰라는 것이 아니라 안 쓰면 본인의 불이익뿐만 아니라 회사도 불이익이 있으므로 철저히 단속할 것임을 강조하는 내용이었다.
어떤 지점장이 업무용 차를 타고 무슨 불미스러운 사고를 쳤나 하고 궁금해하던 중 퇴근 후 TV 뉴스를 보고 알게 되었다. 고가의 자동차를 회사 명의로 사거나 리스해 자녀나 부인의 자가용으로 사용하는 등 지극히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하면서 차량의 모든 비용을 회사의 비용으로 처리해 세금을 탈루하는 일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서란다.
막상 연두색 번호판을 달게 된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할는지도 모르겠다. 다른 회사 사장 아들들도(사장 본인도 젊었을 때) 다 그렇게 스포츠카를 타고 다니고 있고 그동안 아무 문제도 없었는데 이놈의 정부 들어서는 왜 이 난리인 줄 모르겠다고. 이 멋진 스포츠카에 연두색 번호판이라니 도대체 무슨 짓이냐고 말이다.
8,000만 원이 넘는 차, 아니 어차피 슈퍼카는 8,000만 원이 넘겠지만 슈퍼카가 도대체 법인 차로 왜 필요할까? 외국에서 사업차 오는 클라이언트가 슈퍼카를 좋아해서 한국에 체류하는 동안 사용하시라고? 그놈의 법인은 무슨 슈퍼카 좋아하는 클라이언트가 일년내내 온다는 말인가? 필요하면 렌트해주면 되지.
솔직히 나는 이놈의 연두색 번호판이 무슨 강제 기능이 있으며 무슨 개선 기능이 있을는지 모르겠다. 직원들 임금체불한다고 매일 언론에 오르내리고 일년내내 회사 앞에 시위대가 진을 치고 있어도 우아하게 잘 살아가고 있는 탄탄한 양반들이 연두색 번호판 차를 탄다고 움츠러들겠는가?
오히려 고급 차 차주들은 정부에 감사할 것 같다. 정부에서 법인 차를 개인용도로 타고 다니는 것을 규제한다고 했을 때 혹시 외국 어떤 나라처럼 고가차는 아예 세제 혜택 자체를 없애는 것 아닌가 하고 생각했을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결론은 달라진 것이 없다.
단지 구매 가격이 8,000만 원이 넘으면 번호판 색상이 연두색이란다. 400마력이 넘는 페라리에 연두색 번호판을 달면 성능이 떨어지나? 충돌 시 안전에 문제가 있나? 아들놈이 쪽팔린다고 안 탄다고 하려나? 옆에 앉은 여자 친구가 창피해서 못 타겠다고 해서?
어떤 인터넷 매체에 실렸던 글을 옮겨보면 이렇다.
“오빠 차는 번호판이 왜 그래?” 아빠 찬스 쓰던 부잣집 도련님, 여친 물음에 땀 ‘삐질’…. 과연 삐질 할 일인가? 그럼, 그 여친은 그동안 백수 오빠가 우물에서 돈이 솟아 나와서 4억짜리 페라리를 몰고 다니는 줄 알았다는 말인가? 물론 은행에 몇십억 원을 넣어두고 매달 이자만 받아도 충분히 페라리를 탈만 한 젊은 부자도 있겠지만….
생각할수록 화가 난다. 지금도 전국의 현대, 아니 현대/기아자동차 합해 700여 개의 직영지점 지점장들은 매주 운행일지를 쓰느라 시간을 낭비하고 있을 텐데 과연 누구를 위해서, 누구의 알량한 아이디어 하나로 여전히 그 짓을 하고 있다는 말인가. 그래 전국의 직영 지점장들이 열심히 운행일지를 쓰고 있다고 치자. 과연 무엇이 달라졌는가.
회사 차로 슈퍼카를 타던 사람이 슈퍼카를 타지 않고 있나? 규제가 심해서 국내 슈퍼카 판매가 줄었나? 오히려 슈퍼카의 판매는 폭발적으로 늘고 있고 그 대부분의 차는 법인 차로 등록되고 있는 게 사실 아닌가?
기껏해야 번호판 색상이나 달라지고 근본적으로는 달라질 게 없다면 지점장 업무용 차 때문에 운행일지를 쓰고 있는 후배 지점장들의 노고라도 줄여 주는 게 낫지 않을까? 꼭 현대자동차의 문제만이 아니고 말이다.
해외의 경우 어떻게 업무용 차량 과세 문제를 다루고 있냐고? 미국의 경우 회사 업무용 차의 사적인 사용분에 대해 급여로 처리해 소득세를 매기고 있으며 업무용 주행거리와 사적 주행거리를 구분해 작성하도록 하는 것을 의무화하고 있단다. 대단히 치밀하게 관리하는 것 같지만 이것도 황당한 이야기다.
업무용차에 국세청에서 CCTV를 달아 놓는 것도 아닌데 사적 사용분은 어디까지고 사적인 주행거리는 차 타이어에 쓰여 있다는 말인가.
차라리 캐나다처럼 차량 가액이나 비용의 한도를 설정하는 게 정답이다.
감가상각비 계산 시 차량 가액을 최대 3만 CAD(약 3,000만 원) 까지만 인정하며 리스료는 월 800 CAD(약 80만 원)까지 인정하고 있단다.
우리 차로 치면 쏘나타, 그랜저 정도나 될는지? 4억짜리 람보르기니의 비용 인정? 꿈도 못 꿀 일이다.
요즘 현대자동차 임직원 중 최대 30%까지 근속연수 할인을 받아서 차량을 구입하는 것에 대해도 정부에서 말이 나오는 것 같은데 5,000만 원짜리 차를 30% 할인받아서 3,500만 원에 사면 이차도 번호판 색을 달리하자는 것은 아닐까? 일반 국민은 받을 수 없는 혜택을 받고 차량을 구입했으니 괘씸한 차로 알아보게 말이다.
아들이 이렇게 물을지도 모르겠다. “아빠! 우리 차는 번호판 색이 왜 그래요?”
유재형 <자동차 칼럼니스트>
필자 유재형은 1985년 현대자동차에 입사, 중대형 승용차 상품기획을 맡았으며 현대모비스 전신인 현대정공에서 갤로퍼, 싼타모 등의 개발에 참여했다. 이후 현대자동차로 옮겨 싼타페, 투싼 등 SUV 상품개발과 마케팅을 거쳐 현대자동차 국내 상품팀장을 끝으로 퇴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