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란한 굉음을 내며, 서있는 전기차를 들이받는다. 크레인에 매달린 전기차 배터리를 내던진다. 배터리는 중력의 법칙으로 요란한 소리와 함께 빈대떡 반죽같이 일그러진다. 자동차 안전 연구원의 일상이다. 안전한 자동차를 만들기 위한 자동차의 지옥이 바로 이곳이다.
한국 자동차 기자협회 기자단 대상 테크 투어에 참여해 23일 자동차 안전 연구원을 찾았다. 자동차 안전 연구원은 1987년 자동차 성능 시험 연구소로 설립돼, 그해 9월 국토교통부 자동차 성능 시험기관으로 지정됐다. 7개의 자동차 시험동과 12개의 주행 시험로가 있다. 또한, 자율주행 시대를 대비해, 9곳의 레벨 3와 레벨 4 주행 테스트 환경이 설치됐다. 또한, 레벨4+에 대응할 수 있는 환경도 곧 갖춰질 예정이다.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충돌 시험장. 하얀색 아우디 이트론이 세워졌다. 아우디가 제출한 서류대로 안전 기준이 적합한지 자기인증 적합조사 충돌 테스트가 진행됐다. 시속 48km의 속도로 아우디 이트론의 후면을 충돌하는 실험이다. 아우디코리아의 엔지니어도 충돌 테스트에 참관했다. 안전연구처 장형진 연구원은 “제조사들의 이의제기를 방지하기 위해, 충돌 실험에는 각 회사의 기술자들이 동반 참관한다”고 전했다.
어두컴컴하던 충돌 테스트 장에 LED 조명이 들어왔다. 요란한 굉음과 함께 성난 멧돼지처럼 달려온 테스트 차량은 이트론의 후미를 세게 들이받는다. “퍽”하는 충돌음과 함께 이트론은 관성의 법칙으로 밀려나다 간신히 멈춰선다.
시험 요원들은 차량의 상태를 분주하게 살핀다. 리어 부분의 범퍼는 완전히 밀려 들어가며, 충격을 받은 뒷부분에 약간의 이그러짐이 있다. 객실에 탑승한 더미는 보기에 약간의 자세 흐트러짐은 있었지만 정자세를 유지한채 잘 앉아있다. 물론 탑승 상해정도는 차량과 더미에 부착된 손상 데이터를 봐야 알 것이다.
실험동을 이동하는 길 목, 충돌 테스트를 마치고 종잇장처럼 구겨진 차가 줄을 맞춰 가지런히 지나가는 사람들을 맞이했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구겨진 차는 페인트가 벗겨진 체로 방치돼, 녹슨 부분이 눈에 쉽게 띄었다.
장 연구원은 “실험 결과 후에도 제조사의 이의제기가 들어오는 경우가 많아 실험을 마친 차는 1년 동안 보관한다”고 설명했다. 그 이후, 차는 주저없이 폐차장으로 보내진다.
다음 장소는 전자파 실험동으로 갔다. 전자파 실험동은 하얀색 타일로 된 거대한 공간이다. 그 안에 코나 전기차가 서있다. 전자파 실험은 차에 카메라를 설치해, 차량 작동 중 나오는 전자파가 정부기준에 적합한지 실험한다. 또한, 전파법에 따라 인체 기준에 적합한지 관찰한다. 대부분의 차량의 전자파 시험은 통과하지만, 차량의 개발단계에서 정부 기준에 적격하지 못한 경우도 10%나 나온다고 한다.
배터리 낙하 시험동으로 갔다. 땅바닥으로 전기차 배터리를 내동댕이쳐서 폭발의 위험성이 없는지 시험하는 곳이다. 전기차 충돌로 인한 화재 때문에 배터리 문제가 대두되자 생긴 테스트다. 거대한 전기차 배터리는 크레인에 의해 4.8미터 상공에 매달려 땅으로 낙하할 준비만을 하고 있다.
배터리 낙하시 파편이 튈 위험이 있어 고글을 썼다. 또한, ‘수백 kg의 쇳덩어리가 땅 바닥에 떨어질 때, 엄청난 소음을 유발한다“는 연구원의 말에 두 손가락으로 귓구멍을 막았다.
신호와 함께 흰노끈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던 배터리는 중력의 법칙에 의해, 폭발음과 같은 거대한 소음과 함께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다. 배터리는 던져진 밀가루 반죽처럼 땅바닥에 찰싹 달라 붙어있었다. 배터리 내부의 어떠한 화학물질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낙하시험은 국내에만 있는 엄격한 실험으로 2013년 중국에서 국내 실험을 벤치마킹하기도 했다.
배터리 낙하 시험은 배터리 충격으로 전해액이 누출돼 폭발의 위험이 있는지 알아보는 것. 배터리 내구성 시험은 국내 판매되는 전기차에 배터리만을 제거해, 낙하시험 및 침수시험 등 총 12가지 강도 높은 실험을 진행한다. 문보현 책임 연구원은 ”바닷물에 배터리 침수하는 시험은 염분에 의해 폭발하는지 알아보는 것이다. 대부도에서 EV6가 갯벌에 빠지는 일이 있었는데 멀쩡했다. 안심하고 타고 다녀도 된다“고 전했다.
다음에는 버스를 타고 기상 환경 재현 시설로 갔다. 기상 환경 재현 시설은 자율주행 레벨 4 테스트 환경 안에 있는 시설이다. 300미터 길이의 터널로 터널 안에서는 주행의 시야가 방해되는 강우 및 안개, 야간 실험 등을 진행한다. 버스로 300미터의 터널을 왕복하며, 안개와 강우 실험을 번갈아 진행했다. 안개로 뒤덮인 터널은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K-CITY 김민성 연구원은 “안개의 강도를 더 세게해 안 보이게 만들 수도 있다”고 기상 환경 재현 시설의 우수함을 강조했다. 실제로 터널의 안개 시현 코스에 온 관광버스가 터널에서 추돌하는 일도 발생했다고.
마지막으로 버스 긴급제동을 관찰했다. 더미 앞에 45인승 버스가 제대로 정차하는지 관찰하는 것. 더미로부터 600미터 뒤에 떨어진 버스는 시속 80km의 전속력으로 달려오다 더미 앞에서 흐트러짐 없이 한 번에 정차했다.
자율주행 연구처 이명수 연구원은 ”장애물이 있어도 운전자가 의식 없으면, 1차적으로 제동이 가해지며, 최종 경고 단계에서도 운전자의 제동 개입 의지가 없을 시 제동을 거는 힘이 가해져 차량을 멈춘다“고 전했다. 또한, 이 연구원은 ”버스 앞의 라이다와 센서가 전방 90미터 앞의 장애물을 인식해, 사고에 대처한다“고 말했다.
이와 같은 고군분투 활동에 자동차 안전 연구원은 2019년 기준 200만대였던 리콜 대상차를 2022년 324만 대까지 늘렸다. 안정정책 김성섭 처장은 “자동차의 기술이 내연기관에서 전동화로 넘어가는 과도기 시점, 검토해야 하는 항목이 더 늘었다”며 “리콜 발생이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봐야 할 것은 많지만 예산과 인력이 부족하다. 제작 결함을 조사할 수 있는 예산은 한 해 72억 원으로 그 중 40억 원이 차량 구매에 쓰인다. 한 해 쏟아지는 신모델만 수백종에 이르는데 이 모델을 다 테스트할 수는 없는 것. 결국 1년에 6,000건 정도 올라오는 소비자들의 신고로 적극적 대응에 나선다. 기아의 쏘렌토 하이브리드 엔진오일 역류 사건을 잡아내 리콜로 이끌어 것이 좋은 사례다.
자동차 안전 연구원은 ”인력이 부족해 많은 모든 차량을 실험할 수 없지만 소비자들의 신고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자동차 안전 연구원은 ”제조사, 소비자 간 적극 협의해 무상수리 및 리콜을 이끌어내 국가적 노력에 도움이 되고자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