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산 자동차 한국 재공략. PHEV SUV 등 신차 6종 공개’
2018년 5월, 중국차 수입업체인 신원CK모터스가 중국 둥펑차의 신차 6종을 국내에 발매하던 당시의 언론 기사다. 그동안 한국 시장에서 낮은 품질수준 등에 가로막혀 부진했던 중국산 자동차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 SUV등 신차를 앞세워 한국시장 재공략에 나선다는 내용이다. 과연 그 결과는 어땠는지.
그 당시 소비자들의 중국차에 대한 평가가 어땠는지 한번 들어보자.
“중국차요? 싸고 신기하기는 하죠. 하지만 찜찜해요. 짝퉁 이미지도 있고 혹시 고장이라도 나면 제대로 AS가 될지 모르겠어요.”
“중국차도 많이 발전했다고 들었어요. 하지만 태생적인 한계는 있다고 봐요. 소재와 부품력의 차이는 쉽게 따라잡기 어렵거든요.”
지금도 중국차의 수준은 아직도 그 상태일까? 태생적인 한계에서 못 벗어났을까?
아니다. 그동안 우리가 보고 들어왔던 내연기관 차라면 몰라도 최소한 신에너지 차량(NEV)에 있어서는 우리의 고정관념을 바꿔야 한다.
** 신에너지차(New Energy Vehicle, NEV)는 하이브리드(HEV), 플러그인 하이브리드(HPEV), 전기차(BEV)를 말한다. 때로는 저속전기차인 NEV(Neighborhood Electric Vehicle)가 포함되기도 한다. (NEV안에 NEV라…) **
얼마 전 중국의 전기차 기업 BYD가 국내에 전기 세단 ‘실(SEAL)’, 해치백 ‘돌핀(DOLPHIN)’등 6차종에 대한 상표권을 출원했다고 한다. 상표권 출원은 자동차 회사가 해외시장에 진입하기 이전에 가장 먼저 하는 일이다. 출시 시기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지만 판매 준비를 위한 인력을 채용하고 딜러를 모집 중이라고하니 조만간 출시할 듯 하다.
업계에서는 사실 BYD가 국내에 진출한다면 2020년 출시해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전기차 ‘HAN(漢)’이 들어올 것이라 예상했다. 토요타 캠리, 혼다 어코드급의 중형세단인 HAN은 2009년이후 적자에 허덕이며 정부 보조금과 세제혜택에 의존해 오던 BYD를 미운오리에서 백조로 변신시켰다고 할 정도로 뛰어난 상품성을 가진 전기차이기 때문에 당연한 예상이었다.
아마 중국 내수 공급만도 벅차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BYD는 내년 1월, 실, 돌핀, 아토등 3가지 차종으로 일본 시장에도 진출한다고 한다. 수입차가(특히 중국차) 자리를 잡기 어렵다는 한국, 일본에 동시에 도전하는 셈이다.
그동안 중국 차에 무슨 변화가 있었는지 한번 알아보자.
지난 2018년, 블룸버그는 ‘2018년 뉴 에너지 파이낸스(BNEF)’보고서에서 세계 전기차 시장이 2025년에는 연간 1,100만대로 급팽창 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런 블룸버그가 올해 6월 내놓은 ‘2022년 전기차 장기 전망 보고서’를 통해 전 세계의 전기차 판매량이 2025년에는 2,100만대에 이를 것으로 전망치를 수정했다.
아무리 전기차 수요가 폭발적으로 급증하는 추세라고 하지만 4~5년 사이에 세계적으로 공신력 있다는 블룸버그가 전망치를 두 배로 수정하는 게 말이 되나?
블룸버그의 2018년 전망에 따르면 2025년 전 세계 전기차 시장에서 중국은 비중은 약 절반, 2030년에는 39%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2022년 대폭 수정된 전망치가 나오게 된 이유도 전기차 성장을 주도하는 중국이 예상 이상으로 약진했기 때문이 아니었겠는가. 앞에서 언급한 BYD의 HAN같은 차가 월 12,000대 이상 판매되고 있으니 말이다. (전기차다! 캠리나 어코드같은 내연기관 차가 아니다.)
올해 1~5월 중국내 NEV 판매량은 200만 대를 넘어서며 지난해보다 110% 증가했다.
올해 중국의 NEV 부문에서 판매량 10위안에 든 유일한 수입차는 테슬라뿐이었다.
테슬라가 인기 전기차일 것 같지만 점유율은 6.6%로 그 비중은 생각만큼 크지 않다.
나머지 9개의 브랜드는 BYD, 우링, 샤오펑 등 모두 중국 브랜드였다.
중국전기차 산업의 폭발적인 성장은 BYD같은 업체들의 노력도 있었겠지만 중국정부 차원의 장기적인 계획과 지원이 가장 큰 밑바탕이었다.
중국 정부는 2009년에 10개의 시범도시에서 매년 신에너지 차(NEV) 1,000대씩을 생산하는 ‘10개 도시, 차량 1,000대(十城千辆)’ 정책을 발표하면서 NEV 산업을 본격적으로 육성하기 시작했으며 후속 정책들을 수립해 지속적으로 추진해왔다.
생각해보자. 그 당시 년 1,000대씩 만든 전기차가 제대로 된 전기차였겠는가? 그 당시 BYD가 만든 초기 전기차는 한번 충전에 700km를 달리는데 배터리 무게만 1톤이었다고 하지 않았나. 혹시 일반 배터리를 산처럼 쌓아서 만든 차였나? 그래도 목표를 달성하면 보조금을 받고 지속적인 국가지원을 받았을 것이다. (그야말로 국가 주도로 전기차 산업의 씨앗를 뿌리고 가꿨다고 할 수 있다!)
2012년에는 전략 신흥산업 육성과 에너지 절약정책의 하나로 NEV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에너지절감 및 NEV 산업 발전계획(2012~2020년)’을 제정하여 추진해왔다.
이 계획을 들여다보면, 2015년까지 순수전기차(BEV)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의 누적 생산·판매량 50만 대 달성, 2020년까지 BEV와 PHEV의 연간 생산능력 200만 대 달성 및 누적 판매량 500만 대 달성. 등이 있다.
앞에서 올해 1~5월 중국 전기차 판매가 200만 대라고 했다. 1년이면 4백만 대를 넘으니 언급한 발전계획을 이미 초과 달성해 왔다는 이야기이고, 그러니 블룸버그가 2025년 전망치를 두 배로 수정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중국 정부는 2020년 말 ‘신에너지 자동차(NEV) 산업발전계획(2021~2035년)’을 확정해 발표했다. 2012~2020년의 계획이 1차였다면 이번 계획은 2차라고 볼 수 있겠다.
2차 계획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1차 계획이 양적성장을 위한 단계였다면 2차 계획은 전기차 시장의 급성장에 대응하는 질적 성장, 인프라 확대 등에 목표를 두었다.
구체적인 내용으로 2025년까지 중국 신차판매량 가운데 NEV의 비중을 20% 달성하고 충전/교환 인프라 확대, 전기차 2,000만 대 이상 충전수요 충족, NEV 보조금 2023년에 폐지 등이 있다.
발표내용 중 업계에서 주목하는 것은 기존의 NEV 비중 목표치를 하향 조정했다는 것이다. 중국이 2차 계획을 수립할 당시 초기 안은 NEV 비중 목표치가 25%였다,그 초기 안을 20%로 5% 포인트 낮춰 잡았다. 그동안 양적성장에 초점을 맞춰왔다면 이젠 질적 성장과 디테일에 집중하겠다는 이야기란다.
2025년 중국의 전체 신차판매량은 약 3,200만대로 전망되어 만약 20%를 달성한다면 BEV를 640만 대 판매해야 한다. 블룸버그의 새로운 2025년 전기차 판매 전망이 맞는다면 중국 내수판매만으로도 2025년 전 세계 전기차 시장의 30%를 점유하게 된다. (640만 대/2,100만 대)
요즘 식당에 가면 음식 서빙 로봇이 테이블 사이를 누비면서 음식을 나르느라 분주한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중국 전기차 때문에 난리라면서 웬 서빙 로봇으로 빠지냐고? 이렇게 돌아다니는 로봇의 70% 이상이 중국산이란다.
로봇이 스스로 움직이려면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한 자율주행 기술이 필요하다.
자율주행기술은 미래의 자동차와도 뗄 수 없는 기술 아닌가? 이렇게 중국 정부는 전기차뿐만 아니라 로봇산업 육성에도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중국의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는 지방거점에 로봇 산업단지를 조성하고 업체들에 엄청난 보조금을 퍼붓고 있어 중국의 푸두로보틱스, 키논로보틱스등 로봇 브랜드들은 한국/미국제품보다 25% 이상 싼 가격으로 로봇을 판매할 수 있다고 한다.
BYD의 전기차를 타고 식당에 가서 중국산 서빙 로봇의 도움을 받을 날이 머지않을지도 모르겠다. 서빙 로봇과 인사라도 한마디 하려면 중국어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해야겠다.
유재형 <자동차 칼럼니스트]
필자 유재형은 1985년 현대자동차에 입사, 중대형 승용차 상품기획을 맡았으며 현대모비스 전신인 현대정공에서 갤로퍼, 싼타모 등의 개발에 참여했다. 이후 현대자동차로 옮겨 싼타페, 투싼 등 SUV 상품개발과 마케팅을 거쳐 현대자동차 국내상품팀장을 끝으로 퇴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