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배터리의 주원료인 리튬, 니켈 등의 가격이 폭등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국제문제로 최근 1년간 리튬, 코발트, 니켈 등 배터리 양극재의 가격이 150% 급등했다는 소식이다.
일론 머스크의 말처럼 전기차 회사에서 직접 리튬 광산도 운영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배터리가 없으면 전기차는 못 만드는 것 아닌가?
전기차가 늘어나면서 예상치 못한 문제들도 하나둘 늘고 있다.
전기차 구입자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전기차를 타면서 가장 불편한 것이 ‘겨울철 주행거리 감소’라고 답했다고 한다. 충전 시간이 너무 길다는 불만이 2위였다.
겨울철 주행거리가 감소한다고 해서 추운 겨울에 요즘 소형차에도 들어가는 열선 시트 히터도 사용하지 못하고 배터리를 고이 모시고(?) 다닐 수는 없지 않은가. 배터리 용량이 큰 차를 사면 되겠지만 올라가는 차값을 감당해야 한다.
충전 시간이 길다는 것은, 물론 충전소가 부족해서 먼저 충전하고 있는 차를 기다리면서 짜증이 나서도 그렇겠지만 거의 한 세기 동안 몸에 배어온 주유소에서 몇 분 안에 주유하던 습관 때문이기도 하겠다.
전기차 충전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기사를 보고 전기차 보급률이 가장 높다는 유럽의 노르웨이가 떠올랐다. 전기차 공급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공공충전소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겠지만 노르웨이는 공공충전소 사용 비중은 매우 적다. 주로 집에서 충전하고 직장에서 충전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노르웨이의 단독주택 비율은 99%에 이른다.
우리나라의 자동차 등록 대수는 이미 2,500만 대를 넘었고 연간 판매되는 신차의 수도 170여만 대 수준이다. 2021년은 전기차가 6%, 10만 대를 넘겼다.
노르웨이 자동차 등록 대수는 우리의 10% 수준인 280만 대, 연간 신차 판매 대수는 15만 대 미만으로 우리의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15만 대 중 전기차가 무려 8만여 대로 50%를 넘는다. 전기차 판매 비율만 놓고 보면 그야말로 후덜덜한 세계 1위다.
우리나라로 고개를 돌리면 머리부터 아파온다. 전국의 땅을 뒤집어 아파트를 짓느라 바쁘고 아파트 거주 비율이 지난 2006년 40%에서 최근 50%를 이미 넘었으며 65%가 아파트에 살고 싶어 한다.
2,000가구 가까이 사는 곳에 충전 공간이 10곳도 안 되는 아파트 단지에서는 충전이 끝난 전기차를 빨리 빼달라는 민원이 관리사무소에 빗발친다고 한다. 공용시설에서 일반 콘센트로 공짜(!)로 도둑 충전하는 차들도 많다고 하고. 몇 곳 안 되는 전기차 충전 공간에 주차까지 시켜 가뜩이나 열받은 사람들의 분노를 부채질하기도 하고.
노후 아파트의 문제는 더하다. 전기 설계용량이 부족한 아파트에 전기차 충전 공간을 마련하려면 변압기를 용량이 큰 것으로 바꾸어야 하는데 이것도 쉽지 않다. 변압기 교체 비용의 80%를 한전에서 부담하고 주민들은 20%를 부담한다고 하니 부담이 그리 크지 않은 것으로 여길지 모르나 전기차가 없는 대다수 주민까지 비용을 나눠서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보다 더 큰 장애물은 변압기를 바꾸게 되면 재건축을 기대하고 있는 아파트 입장에서는 재건축 승인에서 감점 요인이 된다고 해 오죽하면 충전기 업체에서 무료로 충전기를 설치해준다고 하는데도 주민들이 집값 떨어진다고 반대해 무산되는 경우도 있었다.
전체주택의 25%쯤 되는 단독주택은 노르웨이처럼 아무 문제가 없는가. 주차 문제는 단독주택이 더 심각한 실정이다. 주차할 공간도 없어 집 밖 골목에 무단주차를 하는 처지에 완속이든 급속이든 무슨 충전기를 설치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런 실정에도 전기차 구입자들은 구매 전에는 어디선가 충전하면 되겠지 하고 막연히 생각했다가 구매 후에는 집에서 충전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한다. 결국 집 밖에서도 충전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말이다.
노르웨이의 경우는 집에서 야간에 (느긋하게) 충전하므로 80% 이상이 완속 충전기란다. 반면에 우리는 집 밖에서 수많은 경쟁을 뚫고 신속히 충전해야 하므로 설치된 충전기의 40% 이상이 급속충전기로 이루어져 있다.
노르웨이에서도 모든 주요 도로에는 50km마다 급속충전기를 설치해야 한다. 장거리 주행을 고려한 조치다. 급속충전은 집에서 하는 완속 충전에 비해 전기요금이 3배 이상 높지만, 항상 하는 것이 아니므로 노르웨이 소비자의 불만이 크지는 않을 것 같다.
결국 제작사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주행거리를 늘리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만 결국 가격 인상과 연결되는 것이니 쉽게 해결될 일은 아닌듯하다. 그와 아울러 충분한 공공 충전 인프라를 확충하기 위해서 정부와 기업들의 지속적이고 적극적인 투자가 이루어져야 하겠다.
며칠 전 현대자동차 그룹이 롯데그룹, KEB 자산운용 등과 힘을 모아 2025년까지 초고속 충전기 5,000기 설치에 나선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현재 전기차의 평균 급속충전 시간은 47분, 하지만 소비자들은 30분 이내에 급속충전이 되기를 원한다고 한다. 물론 그보다 짧으면 더 좋을 것이고.
800V로 충전이 가능한 아이오닉 5는 배터리 잔량 10%에서 80%까지 18분이면 충전이 가능하다. 물론 800V 충전시설이 있어야 하고 차도 800V 충전이 가능한 차여야 하겠지만. 결국 충전 시간 단축을 위해 차를 바꾸라는 이야기인가.
차를 바꿔야 한다면 이전에는 효용성이 떨어진다고 업계에서 찬밥 취급하던 배터리 교체방식도 다시 한번 고려해볼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중국에서는 배터리 제조사 CATL이 중국 내 10개 도시에서 교체 서비스 사업을 시작했고 지리자동차는 교체식 배터리 개발을 위한 합작사를 차렸다.
공공충전소 확충과 아울러 초고속 충전이던 배터리 교체던 충전 시간 단축에 목매는 소비자를 만족시키기 위해 기업들이 연구개발에 속도를 내는 것이 전기차 보급 속도를 높이는 길이다.
없는 것을 만들어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있는 것을 알뜰하게 사용하는 것도 중요하다. 주차 자리가 없다고 동네 주민센터 전기차 충전소 앞에 떡하니 차를 세워놓고 장 보러 가면 동네 전기차는 뭐 먹고 살라는 말인가. 우리도 곧 전기차 주인이 될 사람들이다.
없는 인프라를 당장 내놓으라고 하지 말고 눈앞에는 있는 충전소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유재형 <자동차 칼럼니스트>
필자 유재형은 1985년 현대자동차에 입사, 중대형 승용차 상품기획을 맡았으며 현대모비스 전신인 현대정공에서 갤로퍼, 싼타모 등의 개발에 참여했다. 이후 현대자동차로 옮겨 싼타페, 투싼 등 SUV 상품개발과 마케팅을 거쳐 현대자동차 국내상품팀장을 끝으로 퇴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