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 이라 했다. 왕이 되고 싶었을까. 이름엔 소망이 담기는 법. 아마도 그럴 것이다.
렉스턴 스포츠 칸. 쌍용차가 만드는 픽업트럭의 이름. 무쏘 스포츠, 액티언 스포츠, 코란도 스포츠를 거쳐 이제 렉스턴 스포츠를 지나 렉스턴 스포츠 칸에 이르렀다. 변하지 않는 건 ‘스포츠’. 그 앞뒤를 많은 이름이 거쳐 갔다. 앞뒤로 렉스턴과 칸을 거느린 이름으로만 봐도 가장 정점에 선 ‘스포츠’ 모델이다.
스포츠 유틸리티 트럭 (SUT)에서 스포츠를 가져왔겠지만, 픽업에 ‘스포츠’라는 이름은 왠지 어울리지 않는다. 처음 시작할 땐 무쏘 픽업이었다. 스포츠라는 이름이 승용차로 오해할 수 있다며 정부가 지적해서였다. 이후 무쏘 SUT를 거쳐 무쏘 스포츠로 이름을 바꿨고, 스포츠라는 이름은 쌍용차의 픽업을 대표하는 이름으로 자리 잡게 된다.
화물칸의 크기는 픽업이 처음 등장할 때부터 논란이 있던 부분이다. 5인승 픽업으로 만들다 보니 바닥 면적이 좁아 시빗거리가 되기도 했다. 역사가 오랜 차에는 이처럼 스토리가 녹아 있어 좋다.
이제 와 돌아보면 모두 옛날얘기다. 그 우여곡절을 지내며 렉스턴 스포츠 칸까지 이어져 왔다. 픽업 화물칸에 쌍용차를 싣고 달렸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제일 큰 특징은 310mm가 길어진 데크다. 오토바이를 타는 이들이 가장 반긴다. 바이크를 제대로 실을 수 있게 됐다는 얘기다. 좁은 화물칸이 감질났던 이들에겐 가장 반가운 소식이다.
또 하나 심상치 않은 특징은 리어 서스펜션을 트림별로 달리했다는 것. 5링크 서스펜션을 적용한 프로페셔널 트림과 리프 스프링을 적용한 파이어니어 S 트림이 있다.
시승차는 리프 스프링을 적용한 모델로 골랐다. 궁금했다. 좀처럼 접하기 힘든 리프 스프링의 거친 맛이 어느 정도일지. 굳이 나누자면, 5링크는 승용형에 가깝고, 리프 서스펜션은 화물용에 가깝다. 많은 짐을 싣고 달려야 하는 상황을 감안해야 하는 리프 스프링은 승용형의 섬세한 반응보다는 아무래도 거칠 수밖에 없다. 리프 스프링이어서 차고가 조금 더 높아졌다.
리프 스프링은 마차 시대서부터 사용된 방식이다. 기술 발전에 따라 승용차에는 거의 쓰고 있지 않다. 강한 하중에 견딜 수 있어 화물차에 주로 사용된다. 거칠어서 노면 충격을 정교하게 거르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승용으로 사용할 일이 많다면 리어 서스펜션을 5링크로 택하는 게 좋은 이유다.
2.2 디젤엔진이 만들어내는 힘은 181마력, 42.8kgm다. 특히 최대토크가 1,400rpm 부터 터져나온다. 움직이기 시작하면 최대토크 구간에 접어드는 셈. 중저속 구간에서도 강한 힘을 만나게 된다.
국내 유일의 5인승 픽업트럭이다. 5인승이어서 승용차 역할을 할 뿐 아니라, 데크를 길게 해 화물차의 역할을 보강했다. 차체 길이가 310mm가 늘었고 휠베이스도 110mm를 길어졌다. 적재적량은 700kg.
실내는 블랙톤으로 마무리해 깔끔하고 진중한 분위기다. 스티치 흔적을 냈고, 금속 재질로 포인트도 줬다. 렉스턴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고급스러움을 만들었다.
변속레버에는 별도의 엠블럼을 사용했다. 고급을 강조하려는 의도지만, 안쓰럽다. 널리 알려진 쌍용차 앰블럼을 굳이 숨기는 것처럼 보인다. 고급스러움을 강조하는 건 좋은데 자기부정이어서는 안된다. 브랜드의 일관성도 흔들린다.
스티어링휠은 락투락 3회전 한다. 저항감이 있다. 힘들 정도는 아니나 은근 힘을 줘야 돌아간다. 유압식 핸들이어서 조향 개입은 안 된다. 그래서 차선이탈 경고까지만 가능하다. 차선을 유지하려면 조향에 개입할 수 있어야 하는데, 전동식이 아니어서 그게 안 된다. 차체는 프레임 방식이다. 클래식한 메커니즘이 오히려 정겹다. 향수를 부르는 시스템.
운전석이 높아서 시야가 좋다. 시원하게 내다볼 수 있다. 승차감은 조금 거친 편이지만 온로드에서 불편할 정도는 아니다. 비포장도로에서는 오히려 리프 스프링이 유리한 면이 있다.
시속 90km 속도에서 잔잔한 바람소리 정도가 들린다. 그 이내의 속도에선 편안하게 움직인다. 파워모드에선 제법 힘찬 가속 느낌도 즐길 수 있다.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아 킥다운 하면 서서히 탄력을 높인다. 바람소리도 생각보다는 조용한 편이다. 빨리 달리면 데크로 넘어간 바람이 흩어지며 휘몰아칠 구조인데 의외로 뒷바람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때로는 이 차 픽업이 맞나 싶을 정도로 안정적이고 조용한 반응을 보인다. 빠른 속도에서 바람소리는 오히려 조용한 편이다. 차체의 무게감이 느껴지는 묵직한 조향이 인상적이다.
rpm은 무척 안정적이다. 시속 100km에서 1,500rpm을 마크한다. 같은 속도에서 4,5,6단이 커버하고 3단으로는 안내려간다. 6단 자동변속기는 일본 아이신이 공급한다. 직결감이 있는 변속감이 재미있다.
급한 코너를 빠르게 돌아가면 기울어지는 차체가 살짝 불안감을 키운다. 높은 차체, 70시리즈 타이어가 코너에서는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지만 심리적 불안감을 극복하면 좀 더 재미있는 코너링을 즐길 수 있다.
70시리즈 타이어는 오프로드에선 유리한 면이 있다. 거친 노면 충격을 완충해주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어서다.
운전자가 구동 방식을 직접 전환해야 하는 파트타임 4WD 시스템이다. 평소에는 후륜 구동, 노면이 안 좋은 곳에서는 4H, 아주 험한 길에선 4L까지 가능하다. 4L을 갖춘 차라면 정통 4WD라고 할 수 있다. 4L에서는 아주 끈끈한 힘을 느끼게 된다. 속도는 죽고 힘은 살아나는 것. 4L이 없는 차에선 느끼기 힘든 맛이다. 오프로드에서 반짝반짝 빛을 발하는 차다.
후륜 구동으로 스포티한 주행도 즐길 수 있다. 픽업트럭이지만 재미있게 차를 다룰 수 있는 아주 다양한 요소를 갖춘 셈이다.
오디오 시스템은 깜짝 놀랄만한 ‘와우 포인트’다. 화물차답지 않게 섬세하고 현장감 있는 소리를 들려준다. 무심코 음악을 틀었다가 볼륨을 높이고 한참을 들었다. 감동을 느낄만한 소리였다.
계측기를 이용해 측정해본 결과 11.38초만에 시속 100km를 넘어선다. 초기에 힘을 모으느라 시간이 걸리고, 탄력을 받으면 힘차게 속도를 높여 나간다.
4WD 모델의 공인 복합 연비는 9.7km/L다. 2WD는 10.0km/L. 파주에서 서울까지 약 55km를 달리며 측정해본 연비는 12.6km/L. 연비는 운전자 하기 나름이다.
조심해야 할 건 차선이다. 3차로 이상 도로에선 1차로를 달리면 안 된다. 2차로 미만으로만 달려야 한다. 승용이 아닌 화물차여서다. 아무 생각 없이 달리다 아차 할 때가 많았다.
승용차를 탔던 사람이라면 이 차를 구입하고 나서 보험 승계가 안 된다. 승용차를 탈 때 받았던 보험료 할인을 못 받는다. 매년 자동차 검사를 받아야 하는 것도 감수해야 한다.
그래도 매력이 크다. 자동차세는 연 2만8,500원만 내면 된다. 구입할 때엔 부가세를 환급받을 수 있다. 구매비용이 낮고 유지비용도 싸다. 가격도 2,838만 원부터다. 매력 있는 가격이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잘 달릴 수 있는데, 3차로 이상의 도로에서 1차로에 들어설 수 없는 건 아쉽다. 차의 문제가 아닌 제도의 문제. 운전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들어간다. 무척 조심해야 한다. 차의 단점이라기보다 제도와 사람의 문제다. 어쩔 수 없다.
차선이탈 경고장치는 조향에 개입하지 않는다. 크루즈컨트롤도 차간 거리 조절이 안 된다. 가장 단순한 기본형으로 탑재했다. 요즘 소비자의 눈높이에는 맞지 않는다. 화물차니까 감수해야 할 부분이지만, 그래도 렉스턴 이름을 달았다면 시대의 평균은 맞춰야지 않을까.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