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기다림 끝에 벨로스터 N을 만났다. 한국형 고성능을 맛볼 수 있는 차다.
WRC 등 모터스포츠에서 다진 기술을 이제 본격적으로 양산차에 풀어놓기 시작했다. N 브랜드를 통해서다. 유럽에서 i30N을 선보였고 이제 한국에서 벨로스터 N이 출시됐다. 현대차의 고성능 브랜드 N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벤츠의 AMG, BMW의 M처럼 현대차에선 N이 고성능의 대표주자로 나서게 된다. 좌우 비대칭의 보디에 2.0 터보 가솔린 엔진, 그리고 6단 수동변속기로 무장한 벨로스터 N을 타고 자유로를 달렸다.
벨로스터 N은 단일 트림에 몇 개의 패키지 옵션을 택할 수 있게 했다. 퍼포먼스 패키지는 꼭 선택해야 하는 옵션이다. 250마력인 엔진 출력을 275마력으로 올려주기 때문이다. 여기에 19인치 피렐리 타이어, e-LSD, 능동 가변 배기 시스템, 고성능 브레이크와 브레이크 캘리퍼 등이 함께 제공된다. 고성능 모델을 선택하면서 제대로 된 고성능을 피하는 건 말이 안 된다. 벨로스터 N 기본 가격 2911만 원, 퍼포먼스 패키지는 196만 원이다. 이런저런 패키지 옵션을 다 넣어 풀옵션으로 구성하면 3,358만 원 정도가 된다. 시승차가 그랬다.
디자인부터 눈길을 확 잡아끈다. 빨간 라인으로 포인트를 주고, 큼직한 2단 리어스포일러, 듀얼 머플러와 디퓨저 등이 남다른 모습을 완성하고 있다. 실내로 들어서면 수동 변속레버와 3개의 페달이 먼저 눈에 띈다. 수동변속기. 반가운 마음에 서둘러 시동을 거는데 안 걸린다. 클러치를 밟지 않아서다. 오래 잠자던 수동변속기의 감각을 소환하는 데에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스티어링 휠은 2.1회전 한다. 무척 예민한 조향 반응을 기대할 수 있겠다. 핸들을 조금만 돌려도 차체가 많이 움직이는 구조다. 보통 3회전하고, 예민한 조향이라 해도 2.5회전 정도다.
벨로스터를 기본 뼈대로 하고 차의 각 부분을 잘 달리기 위해 다시 만든 차다. 엔진과 조향, 서스펜션 등의 주요 부품들의 반응 정도를 운전자가 선택할 수 있고, 출력, 토크, 터보 작동, G 포스 등을 모니터를 통해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게 했다. 0-100km/h의 발진가속, 서킷에서의 랩타임도 센터페시아의 모티너를 통해 직접 잴 수 있다.
운전하는 즐거움을 만끽하는데 최적화됐다. 엔진과 변속기, 서스펜션, 타이어가 서로를 조율하며 제공하는 기계적인 반응뿐 아니라 모니터를 통해 전달되는 다양한 주행 정보를 실시간으로 파악하며 달리는 즐거움까지 운전자가 누릴 수 있는 최고 수준의 ‘펀 투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다.
조용하지 않다. 그래도 좋은 게, 들리는 소리의 거의 전부가 엔진 사운드다. 박력 있고, 엑셀 오프할 때 가끔 터지는 특유의 엔진 사운드는 시종일관 실내를 꽉 채운다. 엔진 소리에 눌려 다른 소리는 기를 펴지 못한다. 심지어 바람소리조차 거의 들리지 않다가 아주 빠른 속도에 진입하면서 엔진 소리와 섞여 들릴 정도다. 소리로 소리를 덮어버린다. 소리에 관한 한 이이제이다.
235/35R 19 사이즈의 피렐리 P-ZERO 타이어는 보기만 해도 듬직하다. 좁은 주차장을 빠져나올 땐 두두둑 관절 꺾이는 거친 반응이 드러난다. 스티어링휠을 한쪽으로 완전히 돌린 상태라 타이어의 넓은 접지면에 큰 힘이 가해지며 좌우 회전 차이까지 더해지며 생기는 현상이다.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런 현상은 사라진다. 코너에선 오히려 부드럽다. e-LSD가 좌우의 회전 차이를 조율하며 부드러운 코너링을 도모한다.
레브매칭과 론치 콘트롤은 벨로스터 N에서 만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기능이다. 레브매칭은 수동변속기의 거친 변속을 부드럽게 이어주는 기능이다. 높은 rpm을 유지하며 힘을 떨어트리지 않고 변속하기 위해서는 힐앤토, 더블 클러치 등의 제법 어려운 드라이빙 테크닉을 구사해야 한다. 레브 매칭은 그런 현란한 테크닉을 구사하지 않아도 부드럽고 빠른 변속을 할 수 있게 돕는다.
론치콘트롤은 정지 상태에서 가장 빠르게 출발하기 위한 시스템이다. N 모드를 활성화 시킨 뒤 클러치를 밟고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으면 rpm이 3,800에 맞춰지는데 이때 부드럽게 클러치를 연결하며 출발하면 된다.
론치콘트롤을 이용해 0-100km/h 가속시간을 측정했다. 모니터의 제로백 타임 기능을 통해 시간을 잴 수도 있다. 영국 레이스로직사의 비디오 V박스로 수차례 계측한 결과 7.6~7.9초가 나왔다. 기대보다 느렸다. 수동변속기인만큼 운전자에 따라 기록 편차가 클 수밖에 없다. 이론적으로 본다면 마력당 무게비가 5.1kg이니 5초 초반, 늦어도 6초대의 기록이 나와줘야 한다. 0-100km/h 거속시간이 늦게 나온 건, 차보다는 운전자 탓이 크다.
기록의 빠르고 늦음을 떠나 언제든 제로백, 랩 타임을 잴 수 있다는 게 즐겁다. 차와 드라이버가 호흡을 맞추며 조금씩 기록을 앞당기는 소소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275마력의 힘으로 밀어붙이는 고속주행은 대단했다.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고속구간에서도 거침없이 속도를 올렸다. 앙팡 테리블, 겁 없는 아이다. 길이 4,265mm의 작은 크기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야무지게 달린다.
하지만 작은 크기를 완전히 속일 수는 없었다. 속도가 높아지면서 차의 흔들림이 전해진다. 작은 차의 한계다. 그나마 스포일러가 있어 어느 정도 흔들림을 잡아주기는 했지만, 덩치 큰 차에서 만나게 되는 착 가라앉는 고속에서의 안정감을 벨로스터 N에서는 느끼지 못했다.
음성명령으로 내비게이션 목적지를 설정하는 소소한 재미도 있다. 수동변속기여서 음성명령의 효용성은 더 크다. 변속레버와 핸들을 바삐 오가느라 오른손은 늘 바쁘다.
고성능 브레이크 시스템은 파워트레인을 제대로 장악하고 있다. 어떤 속도에서도 가속페달에서 브레이크 페달로 옮겨 밟으면 정확한 제동이 이뤄진다. 과감한 제동도 흔들림 없이 소화해낸다. 성능을 뛰어넘는 브레이크다.
벨로스터 N의 연비는 10.5km/L. 파주-서울 간 54km를 달리며 직접 측정한 연비는 14.5km/L였다. 에코모드와 경제 운전을 통해 공인복합연비를 훌쩍 뛰어넘는 연비를 만날 수 있는 것. 고성능 차에서 연비 좋게 한다고 에코모드로 움직이는 게 넌센스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기름을 아끼기로 마음먹으면 이 정도로 훌륭한 연비를 만들어낼 줄도 안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지붕 틈새에 손가락을 집어넣으니 쑥 들어간다. 무심코 더듬다가 놀랄 정도다. 재질의 단면도 손끝에 그대로 느껴진다. 현대차가 이러지 않았는데. 다른데 신경 쓰느라 놓쳤다고 보기엔, 너무 기본적인 부분이다. 차의 성능, 높은 완성도에 비해 너무 허술한 마무리다.
두터운 C 필러는 시야를 가린다. 측후방 시야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돌리면 C 필러가 벽처럼 보인다. 기둥이 아니라 넓은 면으로 자리하고 있어 시야를 가로막는 것. 지붕이 뒤로 갈수록 낮아지는 것도 한몫하고 있다. 차의 구조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만 그래서 불편한 것도 사실이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