팰리세이드. 캘리포니아 남부 해안가 절벽에 자리한 동네 이름. 부자들이 모여 사는 곳으로 서울로 치면 청담동이나 평창동쯤 되겠는데, 사진을 보니 바닷가 절벽을 끼고 있는 지역이라 풍광은 훨씬 더 멋진 동네다. 그래도 낯선 이름, 설명을 해야 그 의미를 알게 된다. 코나, 투싼, 싼타페, 그리고 팰리세이드까지, SUV 이름을 미국의 지명을 따서 이름 짓고 있다. 미국 시장을 지향하고 있다고 해석해본다.
크다. 풀사이즈 SUV의 당당함을 가졌다. 4,980×1,976×1,750mm의 크기다. 이제 싼타페나 쏘렌토를 보고 크다고 하면 안 되겠다.
크다기보다 거대한 라디에이터 그릴은 보는 이를 압도한다. 좌우로 배치된 램프들은 세로축을 이루고 있다. 주간주행등과 헤드램프를 세로로 배치했다. 정돈된 느낌보다는 흩어지는 느낌의 앞모습이다. 세로로 배치된 램프는 뒤에서도 마찬가지다. 리어램프가 세로로 배치됐고 뒷면 한가운데를 PALISADE 레터링이 자리했다.
익스테리어가 세로라면, 인테리어는 가로다. 대시보드의 견고한 선이 가로로 버티고 있다. 가죽과 나무, 그리고 금속은 고급 인테리어를 구성하는 필수 재료들이다. 버튼을 조작할 때의 느낌이 좋다.
8단 변속기는 시프트 바이 와이어 방식으로 버튼을 눌러 조작한다. 스티어링 휠 아래 배치된 패들시프트를 사용하면 수동변속이 가능하다. 패들은 짧다. 손이 작은 사람은 핸들 깊숙하게 다시 잡고 패들을 조작해야 한다.
험로주행 모드를 갖춘 드라이브 테리언은 로터리 스위치로 조작한다. 주행모드와 험로 주행모드를 하나의 버튼으로 조작한다. 오프로드에서는 스노, 머드, 샌드, 온로드에선 컴포트, 에코, 스포츠, 스마트를 택할 수 있다.
넓다. 2열은 물론 3열에서도 불편하지 않은 공간을 만난다.
팰리세이드는 8인승이 기본이다. 2열 시트를 좌우 독립시트로 적용해 7인승을 옵션으로 택할 수 있다. 2열은 좌우 독립식 공기조절장치, 냉난방 시트, 220V와 12V 전원 등을 갖췄다. 눈에 띄는 것은 1열 시트 옆으로 USB 포트를 만들어 놓은 것. 돋보이는 아이디어다.
7인승은 훨씬 공간이 여유롭다. 공간 그 차제가 주는 고급스러움을 부정할 수는 없다. 여기에 독립시트의 여유로움이 더해져 최고급 SUV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비즈니스 의전용으로도 손색이 없겠다.
3열 시트는 그냥 폼으로 만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팰리세이드는 3열을 위해 USB 포트, 컵홀더를 준비했다. 버튼을 눌러 전동식으로 2~3열 시트를 접을 수 있을 뿐 아니라 3열 시트의 등받이를 앞뒤로 조절할 수 있다. 그냥 만든 시트가 아니라 정성을 들인 공간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3열 시트에 성인 3명이 앉기에는 좁아 보였다. 앞뒤로는 그래도 공간을 만들 수 있는데, 좌우 공간이 좁다.
시승차는 2.2 디젤 엔진에 전자식 사륜구동 시스템인 H트랙을 갖췄다. 공차중량 1,945kg, 202마력이다. 여유 있는 힘은 무겁지 않게 차체를 끌고 달렸다. 넘치는 힘은 아니지만, 부족하지도 않다. 욕심부리지 않으면 원할 때 여유 있는 힘을 내준다. 그 힘이 성에 차지 않는다면, 욕심부리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스티어링휠은 2.7회전 한다. 차의 크기에 비해 타이트한 조향비다. 덩치 큰 놈이 몸놀림은 민첩하겠다.
정지 상태에서 급가속하며 출발할 때에는 힘을 끌어모으느라 시간을 잡아먹는다.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 탄력을 받으면 꾸준히 가속을 이어간다. 가속페달의 깊이를 처음부터 깊게 밟기보다, 살짝 밟아 첫발을 떼게 한 뒤 깊게 밟는데 더 빠르다. 다그치면 엉덩이를 뒤로 빼고, 살살 달래면 좋아라 달린다.
북한강변의 오프로드에 잠깐 올랐다. 고운 모래가 깔린 길. 샌드모드에 넣고 부드럽게, 때로 거칠게 움직였다. 타이어가 모래를 파고들어 주저앉을만했는데, 전혀 내색하지 않고 잘 움직였다. 계기판을 통해 전자식 사륜구동시스템이 작동하고 있음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오프로드에서 거침없이 움직였지만, 겁 없이 오프로드에 들어서면 안 된다. 휠베이스가 길어 차체가 얹혀버릴 위험이 있어서다. 도로 상태를 미리 파악하고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고속도로에 차를 올려 신나게 달렸다. 쭉쭉 뻗어 나가며 시원하게 달렸다. 사륜구동은 오프로드뿐 아니라 온로드에서도 빛을 발한다. 고속주행안정감은 놀라울 정도다. 높은 차체에도 불구하고 바람소리는 크지 않았다. 고속주행 중 체감속도는 낮았고 불안감도 크지 않았다. 파도를 타며 바다 위를 미끄러지듯, 바람을 잘 타며 도로 위를 달리는 느낌이다.
공기저항계수 0.33. 세단이라면 자랑할 게 아니지만, SUV 그것도 높고 넓은, 그래서 단면적이 제법 넓은 풀사이즈 SUV의 공기저항계수가 0.33이라면 드러내놓고 자랑할만하다. 바람을 잘 탈만한 체격인 셈. 윈드실드와 1열 차창에 이중접합유리를 써서 실내로 파고드는 소음도 적절하게 걸러내고 있다.
스마트센스는 완성도를 더욱 높이고 있다. 차로의 중앙을 잘 유지하며 달렸고, 심지어 과속단속 카메라가 있는 곳에선 속도를 줄일 줄도 안다. 스마트 크루즈컨트롤이 내비게이션 정보를 읽고 작동하기 때문이다. 자동차전용도로에서는 자율운전에 성큼 더 다가선 느낌이다. 스마트한 보조 운전자와 함께 운전하는 기분이다. 든든하다. 행여나 운전자가 챙기지 못하는 부분이 있어도 차가 커버해주기 때문이다. 그래도 분명한 건, 아직 자율운전이 아닌 만큼 운전의 책임은 운전자가 져야 한다는 사실.
차가 넓다 보니 달리는 차 안에서 3열에 앉은 사람과 대화하려면 소리를 질러야 할지도 모른다. 그럴 필요 없다. ‘후석 대화’ 기능이 있어서 마이크와 스피커를 통해 소리 지르지 않고도 편하게 뒷좌석 승객과 대화할 수 있다.
운전석 조명 버튼 옆에 빨간색 SOS 버튼이 있다. 누르면 콜센터 상담원이 바로 연결된다. 즉시 응급지원을 요청할 수 있다. 어딘가에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 혼자 운전하고 있어도 보호받고 있다는 사실이 든든하다. 언제든 필요할 때 연결할 수 있다.
가격을 얘기해야 한다. 많은 이들이 이 차를 눈여겨보는 건 가격 때문이다. 그만큼 현대차가 공격적으로 대형 SUV 시장 공략에 나섰다는 의미다.
디젤 2.2 모델은 익스클루시브 3,622만 원, 프레스티지 4,177만 원이다. 가솔린 3.8은 익스클루시브 3,475만 원, 프레스티지가 4,030만 원이다. 같은 트림일 때 3.8 가솔린 엔진보다 2.2 디젤 엔진이 147만 원 더 비싸다.
경쟁력 있는 가격을 책정하다 보니 싼타페와 충돌하고 말았다. 싼타페의 가격대는 2,763~4,035만 원이다. 싼타페 2.2 디젤 인스피레이션이 4,035만 원. 싼타페 보러왔다가 팰리세이드 계약하고 가는 경우가 많아지겠다.
그뿐 아니다. 식구가 많은 가족이 선호했던 카니발과도 경쟁이 불가피하다. 같은 대형 SUV인 모하비도 비교 대상이다. 자칫 집안 경쟁이 벌어질 판이다. 하지만 나쁘지 않다. 일부 집안 경쟁이 불가피해 보이지만, 더 큰 승부는 수입차와의 경쟁에서 벌어진다. 가격, 편의 및 안전 장비, 성능, 디자인 대부분의 면에서 볼 때 경쟁 상대로 꼽히는 수입 SUV보다 우월한 면이 많다. 경쟁자들이 긴장해야 할 때다.
8일 동안 사전 주문이 2만 대를 넘겼다. 벌써 시장은 빠르게 반응하고 있다. 대형 SUV 시장의 지각변동은 벌써 시작됐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옆모습. C필러를 강조하는 크롬 라인이 도드라져 보인다. 그 때문에 픽업에 지붕을 덮은 것처럼 보인다. 대형 SUV의 고급스러움이 무너지는 부분이다. C필러를 감싸는 크롬 라인을 제거하는 게 낫겠다. 굳이 필요하다면 D 필러까지 라인을 확장하는 게 좋겠다.
3명이 앉기에 3열 좌우 공간은 좁다. 그냥 2인용 시트로 쓰는 게 낫겠다. 아주 고급스런 2열 독립 시트에 궁색하고 좁은 3열 시트는 극단적인 대비다. 차 안의 양극화인 셈. 굳이 7인승을 만든다면 2열 3인 시트에 3열 2인 시트가 자연스럽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