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다가 5세대 오딧세이를 내놨다. 오딧세이, 오디세우스를 비롯해 수많은 인물이 등장하는 그리스의 장편 서사시를 차의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 만큼 많은 사람을 태울 수 있다는 뜻일까. 오딧세이는 8인승 미니밴이다.
다른 차에선 만날 수 없는 것들이 오딧세이에는 있다. 10단 자동변속기와 진공청소기다.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 두 개의 특징은 미니밴 오딧세이의 정체성을 잘 말해주는 포인트.
또 있다. 2열 시트가 좌우로도 슬라이딩 된다. 매직 시트다. 앞뒤는 물론 좌우로도 움직여 공간을 연출할 수 있는 것. 시트를 떼어낼 수도 있다. 실내공간을 아주 다양하게 연출할 수 있다. 조수석을 접으면 3m가 넘는 물건도 실을 수 있다.
2, 3열은 꽤 넓은 공간을 확보했다. 등받이를 조절할 수도 있고 앞좌석을 밀어내 좀 더 여유 있는 공간을 확보할 수도 있다. 3열 시트는 끈 하나 잡아당겨 접으면 수납된다. 쉽고 빨라서 좋다. 키를 몸에 소지하고 범퍼 밑에 발차기를 하면 리어 게이트가 열린다. 핸즈프리 테일 게이트다.
트렁크 공간 좌측 벽에는 진공청소기가 있다. 호스에 흡입구를 연결하고 버튼을 누르면 모터소리를 내며 작동한다. 야외활동 후 차를 정리할 때 유용하겠다. 바닷가에서 놀다 몸에 달라붙은 모래를 털어낼 때도 좋겠다. 차에 청소기를 장착해 놓을 생각을 했다는 게 더 놀랍다. 소비자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뭘까를 고민한 결과가 아닐까 싶다.
2열 지붕에는 작은 카메라가 있다. 이를 통해 2, 3열의 상황을 센터페시아 상단 모니터에 보여주는 ‘캐빈 워치’다. 뒷좌석에 아이들을 태울 때 아주 유용한 장치다. ‘캐빈 토크’ 기능도 있다. 실내 스피커를 통해서 뒷좌석 탑승자와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것. 역시 아이들을 케어하기에 참 좋다.
자동차로서 성능에 집중하기보다 미니밴으로서 다양한 편의장치에 신경을 많이 썼다. 기능적이고 합리적이다. 미니밴은 그래야 한다. 매직시트와 청소기 등 톡톡튀는 아이디어도 더해졌다. 미니밴 이상의 미니밴인 이유다.
스티어링은 정확하게 3회전한다. 유격도 거의 없다. 성능과 승차감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무난한 조향비다. 5m가 넘는 길이, 2m 육박하는 폭을 가진 큰 차임을 감안해야 한다.
모니터는 깨끗하고 쨍하게 보인다. 해상도가 좋아서 햇빛이 강한 날에도 모니터를 보는 데 지장이 없다. 계기판에는 7인치, 센터페시아에는 8인치 모니터가 자리했다.
3.5리터 직분사 엔진은 최고출력 284마력, 최대토크는 36.2kgm다. 가솔린 엔진이어서 차분하고 편안하다. 평상 주행 속도에선 시끄럽지 않다. 노면 소리가 잔잔하게 들리는 정도.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과 LKAS가 있어서 핸들에서 손을 떼고 잠깐 동안이지만 반자율 운전이 가능하다. 차로를 벗어나지 않고 굽은 길을 잘 타고 달렸다. 혼다는 ‘혼다 센싱’이라는 이름으로 이 시스템 소개하고 있다. 당연히 운전의 책임은 운전자에게 있다. 운전을 맡긴다기보다는 도움을 받는다는 기분으로 이를 이용해야 한다. 아직은.
시속 100km에서 알피엠은 9단에서 1,500까지 떨어진다. 10단을 물리기엔 너무 낮은 속도. 4~9단에서 시속 100km를 커버한다.
개인적으론 두 번째 만나는 10단 변속기다. 지난 9월의 렉서스 LC가 처음이었다. 일본 브랜드들이 10단 변속기의 시대를 열고 있는 느낌.
변속기가 다단화될수록 힘을 좀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가 있게 된다. 속도에 맞는 최적의 힘을 사용할 수 있고, 때로는 힘과 효율 둘 중 하나를 극단적으로 강조할 수도 있는 게 다단변속기의 특징. 한 마디로 같은 속도에서 선택할 수 있는 기어 단수의 범위가 넓다는 것.
엔진은 대체로 차분한 상태를 유지한다. 스포츠 모드를 택하면 알피엠 변화가 일어난다. 1,500에서 3,000으로 상승하는 것. 에코 모드는 스포츠모드에서도 활성화된다.
11인승 이었다면 110km에서 속도가 제한되어야 하지만 오딧세이는 8인승 이어서 속도제한에서 자유롭다. 원하는 만큼, 능력이 닿는 만큼 빠르게 달릴 수 있다. 대신 고속도로 버스 전용차로에 들어갈 자격은 없다. 미니밴으로서 가장 큰 매력 하나를 잃어버린 셈이다.
고속주행에서 편안하고 조용했다. 아주 빠른 속도에 비해 바람소리도, 차의 흔들림도 크지 않았다. 운전자가 느끼는 불안감이 중요한데, 거의 이를 느끼기 힘들 정도. 의외였다. 덩치 큰 미니밴, 게다가 앞바퀴굴림이라는 불리한 조건을 잘 극복해냈다.
가속을 시도하면 약간의 여유를 두고 힘 있게 달려 나간다. 284마력의 힘은 충분했다. 물론 팡팡 터지는 탄력 있는 힘은 아니지만 힘 있게 차를 끌고 달린다는 느낌이다.
미니밴으로서는 시도하기 힘든, 조금 위험할 수도 있는 속도까지 탄력을 잃지 않고 달려 나갔다. 온 힘을 다해 달려야 할 땐, 6개의 실린더가 터질 듯 달려준다.
하지만 꼭 그럴 때만 있는 건 아니다. 정속주행을 할 때는 굳이 실린더 6개를 다 쓸 필요가 없다. 그래서 혼다는 VDM 기술을 적용하고 있다. 가변 실린더 제어 시스템, VDM 이다. 6개중 3개의 실린더만 작동한다. 나머지 3개 실린더는 쉰다. 효율을 위해서다.
차가 멈추면 시동이 꺼지는 엔진스톱 시스템도 있다. 역시 연비와 효율을 위한 기술. 시동이 꺼진 상태에서 스티어링휠에 살짝 힘을 주면 다시 시동이 켜진다.
연비는 9.2km/L. 3.5리터의 배기량과 차체 무게를 감안하면 제법 우수한 수준의 연비라고 할 수 있다.
운전을 하기도 편했다. 시트 포지션이 높아 시야가 트였고, 맥퍼슨 스트럿과 트레일링 암 서스펜션은 차체의 흔들림을 안정감 있게 제어하고 있었다. 235/55R19 사이즈의 타이어도 노면을 잘 붙들고 달린다. 승차감은 세단에 크게 뒤지지 않는다. 앉는 자세는 오히려 세단보다 편하다.
버스전용차로에 들어설 수 없어서 그렇지, 8인승으로 최적의 쾌적한 공간을 갖췄다. 더 넓게, 조금 밀착해서, 아니면 밴으로. 실내를 구성할 수 있는 방법은 아주 많다. 그만큼 다양하게 이 차를 사용할 수 있다는 얘기도 된다.
두 팀이 골프장 가기에 딱 좋겠다. 돈 많은 골프 친구에게 이 차 한 대 사놓으라고 바람 좀 잡아야겠다. 판매가격은 5,790만원이다. 세단 버금가게 잘 달리고, 쾌적하고 넓은 공간에 다양한 기능을 가진 미니밴으로 괜찮은 가격이 아닌가 싶다.
패밀리 밴으로, 혹은 회사의 업무용으로 참 좋은 미니밴이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8인승. 장점도 단점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8인승 이어서 고속도로 버스전용차로에 못 들어가는 것은 일부에겐 치명적인 약점이다. 그 때문에 이 차에 군침을 흘리면서도 포기해야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스포츠 모드에서 에코 모드가 같이 활성화되는 것은 논리적이지 않다. 스포츠 모드에서는 에코 모드가 비활성화 되는 게 맞겠다. 아이들 스톱에서 스티어링을 살짝만 돌려도 시동이 다시 켜진다. 엔진 스톱 상태를 좀 더 오래 유지할 수 있으면 좋겠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