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브로 사막의 열풍이 한국에 불어 닥치고 있다. 마세라티 기블리. 사하라 사막의 열풍을 이르는 말이 기블리다. 일본 애니메이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지브리 스튜디오 역시 기블리에서 가져온 이름. 아우디를 좋아하는 미야자키가 왜 지브리라는 이름을 택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지금 한국에는 마세라티 바람이 거세다. 연간 판매량 2,000대를 넘볼 정도다. 페라리 일 년 판매량을 마세라티는 한 달에 해치우는 수준. 열풍이라 할 수 있겠다.
기블리는 마세라티의 엔트리 모델이다. 엔트리 모델이라고 우습게보면 안 된다. 플래그십 세단인 콰트로 포르테와 같은 엔진과 변속기를 쓴다. 효율 면에서 보면 오히려 콰트로포르테를 능가한다고 할 수 있는, 힘 센 막내다. 하긴 엔트리 모델, 소, 중, 대형, 플래그십으로 구분하는 건 마세라티엔 어울리지 않는다. 마세라티는 체급 구별이 큰 의미 없는 개별 모델들 하나하나가 강한 존재감을 뽐낸다. 어쩌면, 이탈리안의 고집일지 모르겠다.
시승모델은 기블리S Q4 그란스포트. V6 3.0 트윈 터보 엔진에 8단 자동변속기를 물린 모델이다. 기블리는 콰트로포르테처럼 마세라티의 투 트림 전략을 적용해 고급감이 강조된 그란루소와 강한 다이내믹함을 강조하는 그란스포트로 나뉜다. 피아노 블랙 인서트 그릴과 범퍼 아래에 배치된 3개의 에어인테이크홀, 그리고 실내의 스포츠 시트가 그란스포트의 특징.
시동 버튼은 스티어링 휠 왼쪽에 있다. 원래 있던 그 자리다. 레이싱으로 단련된 흔적이다. 조금이라도 빨리 스타트하려면 왼발로 클러치 밟고, 오른발은 힐앤토, 오른손은 변속기를 조절하면서 시동을 걸어야 한다. 남은 왼손 앞에 시동키를 만들기 시작한 이유다. 시동키는 푸시버튼 방식으로 바뀌었지만, 위치는 왼쪽 그대로다. 포르쉐도 이렇다.
시동과 함께 드러나는 엔진 소리에 몸이 반응한다. 낮게 깔리지만 확실하게 박자를 맞추며 터지는 엔진소리다. 엔진 사운드를 통해 소리에 대한 마세라티의 자세를 알 수 있다. 소리는 들리지 않는게 좋고, 그래서 가능한 한 들리지 않게 차단하고 눌러놓는 방법이 있다. 토요타로 대표되는 일본 메이커들이 대체로 이렇다. 그들에게 소리는 노이즈다.
하지만 유럽으로 건너가면 다르다. 소리조차 즐길 수 있는 요소로 변화시킨다. 소리를 잘 다듬어 듣기 좋게 만들어 내는 것. 노이즈를 사운드로 변화시킨다. 마세라티가 그렇다. 하기는, 성악의 나라 이탈리아 아닌가. 엔진 개발할 때 음악가도 함께 참여한다는 소리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계기판에는 피아노 건반 모양의 게이지도 있다. 기블리에는 이처럼 인간의 감성을 건드리는 부분들이 있다. 기계적인 완성도에 몰입하는 독일 고성능 세단과는 분명히 다른 감성이 마세라티에는 있다.
낮게 으르렁 대는 엔진에 마음껏 소리 지르라고 신호를 보냈다. 가속페달을 깊게 밟으면 우렁찬 엔진 소리가 귀를 파고들어 심장에 닿는다. 속도를 높일수록 엔진과 맥박이 동기화된다. 불안감에 맥박이 뛰는 게 아니다. 솟구치는 아드레날린이 엔진 소리에 심장박동을 맞춘다.
가속페달을 바닥에 붙이는 시간을 오래 가져갈 수는 없었다. 4.7초 만에 시속 100km를 돌파하는 힘이다. 물론 극한적인 속도에 이르는 시간도 오래지 않았다.
공기저항계수 0.29로 기존 0.31보다 많이 개선됐다. 앞에 더블위시본, 뒤에 멀티링크 서스펜션은 전자제어 방식이다. 여기에 앞 245/35ZR21, 뒤 285/30ZR21 사이즈의 피렐리 타이어가 진득하게 노면을 물고 달렸다. 하나 더, 사륜구동 시스템이 있다. 후륜구동 기반의 사륜구동 시스템으로 계기판을 통해 실시간으로 앞뒤의 구동력 배분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요소들이 어우러져 고속에서 환성적인 주행안정감을 빚어낸다. 차의 안정감이 뛰어나 실제 속도를 눈치 채기가 어렵다. 체감속도는 한참 낮았다.
ADAS 시스템도 좋아졌다. 이전에 비해 완성도가 높아졌다. 어댑티브 크루즈컨트롤(ACC), 차선유지 어시스트(LKAS), 하이웨이 어시스트 등이 운전자를 지원한다. LKAS는 정확하게 차선을 읽으며 조향을 보조했고, ACC는 4단계로 차간거리를 조절하며 달렸다. 굳이 흠을 찾자면 핸들에서 손을 떼고 경고음이 나오기까지 시간이 너무 짧다는 것.
이렇게 생각하는 게 문제이기는 하다. 아직은 운전 ‘보조’ 시스템인 만큼 핸들에서 손을 떼면 안 되고 경고음이 바로 나오는 게 당연하기 때문이다.
기블리S Q4 그란스포츠는 1억 4,080만원이다. 그란루소는 1억3,990만원. 350마력짜리 V6 3.0 가솔린 엔진을 장착한 기블리는 1억 2,270만원(그란루소)과 1억 2,040만원(그란스포츠)다. 디젤 모델도 있다. 기블리 디젤은 1억 2,110만원(그란루소) 1억 1,880만원(그란스포츠)이다. 엔트리모델 가격이 하나같이 1억 원을 훌쩍 뛰어 넘는다. 그게 마세라티다.
연비 7.4km/L는 굳이 언급할 필요를 못 느낀다. 1억 원을 훌쩍 넘기는 고성능 세단에서 연비를 따지는 건 어울리지 않는다. 엔진 스톱 시스템과 에코 모드에 해당하는 I.C.E 모드도 있어 차분하게 다루면 쏠쏠한 연비를 만날 수는 있다. 시승을 하게 되면 고속, 가속, 정체, 공회전 등 연비에 가장 안 좋은 운전만 하게 된다. 계기판이 알려주는 연비는 6km/L에 못 미치는 수준. 이를 공인 복합연비와 비교하는 건 의미 없는 일이지만, 기록을 위해 남겨둔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뒷좌석은 좁다. 길이 4,970mm에 휠베이스가 3,000mm로 작은 차가 아닌데 뒷좌석에 앉으면 무릎 앞으로 주먹 하나 들어갈 공간이 안 생긴다. 게다가 뒷좌석 한가운데로 센터터널이 높게 솟아 공간을 더 제약한다.
디자인은 멋있고 세련됐으나 이기적이다. 운전석 도어를 열면 차창과 도어 끝에 예각이 드러난다. 보행자, 오토바이, 자전거 등이 부딪힐 때 그 예각이 더 큰 사고를 부를 수 있다. 장미의 가시일까. 아름답지만, 위험하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