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 X3가 3세대 모델을 출시했다. 2003년에 첫 모습을 선보인 뒤 14년간 160만대 이상 팔린 차다. 전 세계적으로 폭풍처럼 성장한 SUV 시장에 큰 역할을 한 모델이다.
디자인이 변했다. 좀 더 당당해진 모습이다. 더 커진 키드니 그릴이 당당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헤드램프는 그릴과 분명하게 분리돼 또렷한 눈망울을 드러내고 있다. 이목구비가 분명하게 구분되는 똘망똘망한 얼굴이다.
쿠페 스타일을 노린 것일까. 루프 라인은 뒤를 살짝 깎아내렸다. 공기저항을 줄이는 데에도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디자인이다. 이 차의 공기저항 계수는 0.29. 그 효과는 고속주행에서 확실하게 느낄 수 있다.
7시리즈에서 시작된 BMW의 최신 기술들이 5시리즈를 거쳐 이제 3시리즈까지 확대되고 있다. 직관적으로 조작 가능한 터치식 내비게이션 모니터, 제스처 컨트롤, 디스플레이 키 등이 그렇다. 큰형의 무기를 이제 동생들도 갖게 된 것이다.
스티어링 휠은 두 바퀴를 조금 더 돌아 2.3 회전한다. 핸들은 굵은 편이어서 손 안에 꽉 차게 잡힌다. 그 아래로 자연스럽게 잡히는 패들 시프트.
가장 낮은 위치에서 가장 높은 위치까지 운전석 시트 작동 범위가 무척 넓다. 키가 크거나 작은 사람이 모두 편안한 운전 자세를 잡을 수 있을 정도다.
준중형급 SUV지만 뒷좌석 공간은 넓다. 무릎 앞으로 주먹 두 개가 들어가고도 남는다. 특히 2열 시트는 뒤로 6도가 더 넘어간다. 피곤한 몸을 기대기 좋다. 2열 시트를 접으면 550리터인 트렁크 공간이 1600리터로 늘어난다. 짐 싣는 화물차로 써도 좋을 만큼 적재공간이 넓어지는 것.
중저속에서 차는 조용하고 차분했다. 6기통 트윈터보 디젤엔진에서 터지는 265마력과 63.3kgm의 힘은 여유 있게 차를 다룬다. 가속페달을 조금만 밟아도 원하는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다. 서스펜션은 노면 충격을 잘 받아 흡수해주고 마무리까지 깔끔하게 해낸다. 시트를 통해 전해지는 충격이 크지 않다.
앞뒤 무게배분이 정확하게 50:50이다. 휠베이스는 이전보다 길어졌고, 엔진룸에 엔진은 낮게 배치됐다. 여기에 BMW의 사륜구동 시스템 X드라이브가 더해졌다. 하나하나가 차의 흔들림을 덜하게 잡아준다.
이는 고속주행에서 확연하게 드러난다. 속도를 높일수록 커지는 차체의 흔들림과 바람소리가 운전자의 불안감을 증폭시키게 마련이다. 그 불안감의 크기가 차의 완성도를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X3는 극한적인 속도에 이르기까지 불안감이 크지 않았다. 속도가 높아져도 편안함이 실내를 지배한다. SUV지만 세단 못지않은 반응이다.
주행모드는 스포츠, 컴포트, 에코 프로 모드가 있다. 스포츠 모드에서는 스포츠, 스포츠 프로, 스포츠 인디비듀얼 3개 모드로 미세조정할 수 있다. 에코와 스포츠, 컴포트 각 모드에서 주행반응은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스포츠 모드를 택하면 차의 느낌이 확 달라진다. 가속페달을 툭 치면 시트가 허리를 툭 밀어낸다. 가속페달과 허리가 직결된 반응이 온다. 확실한 변속감과 힘이 살아있는 가속이다.
고속도로 인터체인지를 조금 빠른 속도로 달렸다. 타이어가 비명을 지르며 힘들어할만한 속도였다. 하지만 타이어는 침묵을 지켰다. 인상적인 코너링이었다. 앞에 245/45 R20 뒤에는 275/40 R20 사이즈의 피렐리타이어가 차체를 받치고 있다.
당연히 엔진스톱 시스템이 적용돼 있다. 차가 멈출 때 시동이 꺼지면 실내는 순식간에 적막강산으로 변한다. 때로 그 조용함이 어색할 정도다. 눈여겨 봐야할 건 재시동이다. 밟았던 브레이크를 놓으면 아주 조용히 엔진이 재시동 걸린다. 진동도 느끼기 힘들다. 도둑이 담 넘는 소리 정도다. 재시동 걸리는 순간의 소음과 진동을 싹 걷어냈다.
SUV지만 포장도로에선 세단과 다르지 않다. 편안하게 움직였고, 힘이 필요할 땐 충분한 힘을 순식간에 제공한다. 메이커 발표 0-100km/h 가속시간이 5.8초다. 스포츠카 버금가는 순발력을 X3 30d가 보여준다.
시속 100km에서 rpm은 1,300에 불과하다. 8단 자동변속기는 시속 100km를 3~8단으로 소화하며 변화무쌍한 반응을 이끌어낸다. 주행모드, 수동 변속 조작에 따라 아주 다양한 반응을 만날 수 있다. 가장 극적인 것은 스포츠 모드에서 수동 변속을 할 때 자동변속을 거부하며 운전자가 변속지시를 할 때까지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반응이다.
M 스포츠 패키지를 적용해 고성능에 대응하는 M 스포츠 브레이크가 있다. 90km/h 전후의 속도에서 급제동을 했다. 아주 강한 제동이었지만 차체 반응은 생각보다 거칠지 않았다. 앞으로 처박히는 느낌이 아니라 주저앉는 느낌이었다.
시승차의 공인 복합연비는 11.3km/L. 실제 주행을 하면서 계기판을 통해 확인한 연비는 9.6km/L 정도였다. 고속질주 구간이 많았고 오프로드까지 달린 연비여서 공인연비와는 어느 정도 차이를 보였다. 차분하게 다루면 충분히 극복가능한 차이다.
이번 시승의 백미는 도강이 포함된 오프로드 주행이었다. X3의 성능을 마음껏 뽐내려는 듯, BMW코리아는 산길, 자갈길, 모랫길을 두루 달리는 시승코스를 준비했다. 시승차는 그 길을 흙먼지 폴폴 날리며 부지런히 달렸다. 타이어는 순간적으로 미끌거렸지만 그립을 잃는 법은 없었다. 모래길이나 강을 건널 때에는 일정한 속도로 꾸준히 달리는 게 중요하다. 바닥이 무르거나 미끄러운 곳에서는 일단 정지하면 재출발하기가 무척 어려울 수 있다. 유혹은 컸지만 무모한 시험은 하지 않았다. 신형 X3는 깊이 500mm까지 물길을 건널 수 있다.
비싼 수입차를 타는 오너의 입장에서 오프로드 주행은 내키지 않는 일이다. 차가 다치거나 고장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용기를 내서 오프로드로 한 발 더 내디뎌보면 또 다른 세상을 만나게 된다. 사륜구동 SUV로 포장도로만 달리는 건 차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포장도로에서 세단 같았던 X3였다. 오프로드에선 정통 오프로더 못지않은 모습을 보였다. 깔끔한 정장 차림으로 도심을 달리기 참 좋은 차다. 점퍼에 등산화 차림으로 오프로드에 올라서면 더 멋있어 보일 차다. 도심에서 대자연의 한복판까지 어디든 잘 어울리는, 길을 가리지 않는 오지랖 참 넓은 차다.
판매가격이 매력 있다. X3 20d는 X라인이 6,580만원으로 300만원이 낮아졌다. 확 유혹을 느끼는 가격이다. 20d M 스포츠패키지는 6,870만원. 30d는 X라인이 8,060만원, M 스포츠 패키지가 8,360만원이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20d는 물론 30d에도 기본형 크루즈컨트롤을 적용했다. 또한 차선이탈경보장치가 적용됐다. 어댑티브 크루즈컨트롤과 차선이탈조향보조시스템이 아니다. 8,000만원이 넘는 프리미엄 브랜드의 SUV에 이게 웬 말인가. 가격을 낮추기 위한 고민을 이해 못하는바 아니지만 그래도 이 정도는 기본 적용되어야 하지 않을까.
통풍, 온열이 함께 작동하는 시트는 의문이다. 최근 새 모델로 등장하는 BMW의 모든 차들이 이렇다. 미처 알아채지 못한 깊은 뜻이 있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왜 그랬을까. 어쨌든 차갑고 뜨거운 두 개의 버튼이 함께 작동하는 건 문제가 있다.
계기판은 모니터가 가림막 없이 그대로 노출됐다. 손가락이 그대로 닿는다. 먼지가 앉을 수도 있겠다. 무심코 볼 땐 몰랐는데, 알고 나니 자꾸 손가락이 간다. 가림막이 있는 게 낫지 않을까.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