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달인 2017년 8월 개봉예정인 영화, 송강호주연 ‘택시운전사’의 포스터 한 장을 앞에 두고 문뜩 “자동차는 역사와 문화를 담는 그릇이다”라는 정의를 생각하니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연상과 추억, 상상들이 쏟아져 나온다.
■ ‘브리사’가 달리던 시절
1973년 8월, 기아자동차는 마쯔다 파밀리아(Familia) 설계도 가져와 생산을 하고 그것을 브리사(Brisa)로 명명하였다. 초기 60마력(1000cc), 후기 약 90마력(1300cc)에 후륜구동. 마즈다의 지분을 갖고 있었던 미국 포드가 기아자동차와 거래를 하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
Ford Festiva로 하청 생산되었던 ‘프라이드’, 포드-마즈다가 아무래도 때가 너무 이르다고 휴지통에 던져버린 설계도를 줏어와 만든, 전 세계 최초이자 컴팩트 SUV의 조상격인 ‘스포티지’, 날렵했던 세피아, 그 이전의 포드 마크-5 등 70~90년대 기아 자동차 모델들의 제작배경들을 살펴보면 이런 저런 재미난 일화들이 많다.
재미난 일화가 많았다 함은 그 만큼 “착착착! 척척척!” 제대로 만들 여건이 안되었다는 뜻. 기아자동차는 물론 다른 메이커들도 기술적인 관점, 제조능력 관점 등 다양한 항목들에 있어서 현격히 자동차 선진국들에 비해 수준미달이었던 시절이었다.
IMF 시절 애써 만든 ‘크레도스’로 마침표를 찍고 기아자동차가 현대차그룹으로 편입된 것은 최소한 ‘기업경쟁에 의한 소비자권익 확보’라는 관점에서 심히 안타까운 일이다.
■ 혼란의 시대
이 포스터는 5.18 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총과 몽둥이 폭압에 의해 사망했던 사건, 한 동안 반란으로 규정되어 말을 꺼내기도 어려웠던 사건 속에서 스토리가 전개된다.
(출처 : http://img.insight.co.kr/static/2017/03/28/700/X6E81AISZQTR358KEL06.jpg)
그 1980년은 박정희, 전두환, 박근혜 그리고 현재에도 살아 있는 다른 이들이 엮이는 시점이자 역설적으로는 국민주권을 찾으려는 활동의 첫 계기가 마련되었던 시점이었다.
그러므로 세월호 사건에서 당당히 의견을 표현할 만큼, 영화 ‘변호인’ 때문에 직전 정권에서 불이익을 받았다는 말이 있는 만큼 생각이 있는 송강호가 ‘택시운전사’ 주연으로 낙점된 것이 나름 유의미하다.
과거로 돌아간 송강호 그리고 그가 몰고 있는 브리사.
그리하여 그 브리사가 1980년 5월, 그 혼란의 시대를 고스란히 담아내는 훌륭한 그릇으로 사용되고 있다 말하는 것은 너무 자연스럽다. 감독은 일종의 타임머신을 생각했음이고 그 발상이 멋지게 적중하려는 사례.
■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아주 오래 전에 지어진 건물로서 승강식 주차시스템이 적용된 경우, “네~에? 저기에… 제 차가 들어간다고요?” 특별히 크지도 않은 요즘의 2000cc 승용차를 진입시키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최근 국토교통부가 ‘주차장법 시행규칙’을 개정해서 70년대 ‘브리사’에 비해 현격히 덩치가 커진 현재형 자동차들을 넉넉히 수용할 만큼 기준주차면적을 늘리겠다고 했다. 이제야 40년 간격을 메꾸겠다는 것인데… 발 빠른 기술발전과 문화발전을 행정기준이 따라가지못함이니 중소기업들의 1인승 전기자동차 제작을 허용한 최근 결정이 오히려 어색하기까지하다.
(출처 : http://img.insight.co.kr/static/2017/03/07/700/43IO49388UB91A0H0D4J.jpg)
그 시절의 튀는 색상, 녹색.
30년쯤 전 자동차 색들을 기억해보면 주로 검정이거나 흰색이거나 그리고 제한된 경우 유색. 대체적으로 흑백에 순응하여 살았다. 요즘은 어떤가? 그나마 조금 형편이 나아진 탓인지 또는 그 때문에 생각이 자유로워진 탓인지 좀 더 변칙적인 색상들이 눈에 띈다. 다양한 색상은 곧 문화적 다양성을 의미한다. 성 소수자들의 퀴어(Queer)축제에서 예쁘고 기분좋은 무지개를 볼 수 있는 만큼.
“과거를 모르면 현재를 알 수 없고 그렇다면 미래는 오리무중”
4기통 자연흡기 캬브레이터 엔진, 4단 기어, 후륜구동, 추진축 때문에 볼록 솓아오른 뒷좌석 센터터널, 유연휘발유, 여기저기 담배 재털이, 차값 만큼이나 비싼 에어컨, 돈이 없으면 그나마 선풍기라도… 손으로 돌려 창문을 올리고 창문 위에 빗물받이가 있었던 시절, “뭐라꼬요?” ‘에어로-다이나믹’이 생소했던 시절, 후사경이 후드 앞쪽에 달려 있었던 시절, ‘급발진’사고는 없었던 시절, 찌그러진 차 한대로도 “야! 타!” 이상을 할 수 있었던 시절, “오라이~”가 익숙했던 시절, 붓으로 대충 ‘뺑끼칠’해도 티가 잘 안나던 시절이 지나간 과거다.
여기저기 널려있는 2000만 대 자동차가 달리는 세상이 현재이고. Drive-by-Wire에, 인공지능, Connected, 무선, 전기와 모터가 쉽게 거론되는 것이 가까운 미래. 그리고 그 다음은?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 흔히 ‘발전’이라 잘못 표현되는 무색 무취의 단어 ‘변화’는 늘 과거에서 출발하는 것이고 시계열상 연속성을 가질 수 밖에 없으니 과거를 알아야 현재를 가늠할 수 있고 그럼으로써 미래를 내다보고 평가할 수 있겠다.
이것은 삶의 명제같은 것이다.
그래서 강조하기를, 어떤 모델 자동차 한 대를 또는 어떤 시리즈 모델을 머리 속으로 상상하고 최초의 것을 A라고 하고 현재의 것을 B라 한 후 시간흐름에 따라 A와 B 사이에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를 잠시 탐색해보는 것은 매우 재미있고 유익한 일이다. 왜 그런가하면… 자동차는 단순 이동수단이 아니라 태생적으로 역사, 문화, 행정과 규제, 기술발전 그리고 인간의 삶과 의식변화 등 모든 것을 담는 큰 그릇이었기 때문.이제까지 늘 그런 존재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날고 기는 검색엔진 널린 세상의 5분 짜리 지적 투자, 그것은 마치 재미있는 책을 읽는 것과 같다.
글쓴이 : 박태수(한국자동차기술신문, www.atnkorea.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