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츠의 파상공세가 거세다. 수입차 1위 브랜드로 우뚝 올라섰지만 긴장을 늦추지 않고 고삐를 바짝 당기고 있다. 이번엔 E 클래스 최고의 모델 E400 4매틱이다. 10세대 E 클래스 라인업에 8번째로 등판한 E400 4매틱을 시승했다.
디자인 감상은 생략하고 바로 운전석에 올랐다. 보닛 끝에 올라선 삼각별이 눈에 들어온다. 이 차, 벤츠다. 시선을 스티어링 휠로 거두면 그 중간에 헤드업 디스플레이가 있다. 쨍한 날씨에도 선명하게 보인다.
고급 응접실에 편안하게 앉은 느낌이다. 원목 가구에 가죽소파, 대리석 바닥 등으로 꾸며진 저택의 응접실 같은 실내다. 편안하고 고급스러운 느낌이다. 이런 고급스러움에 익숙하지 않은 이라면 차에 기가 눌려 조금 주눅 드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을 정도.
룸미러는 작지만 후방시야를 확보하는데 아무 문제없다. 깨끗하고 선명한 시야를 확보해 준다. 스티어링 휠 아래엔 변속레버와 패들 시프트를 비롯해 틸트&텔레스코픽 등 6개의 레버가 자리하고 있다. 자칫 다른 레버를 건드릴 위험도 있다. 세심한 조작이 필요하다.
최고급 가죽인 디지뇨 가죽을 사용한 시트는 푹신하진 않다. 조금 딱딱한, 적당하게 딱 버텨주는 반발력이 좋다.
13개의 스피커로 무장한 부메스터 오디오 시스템은 풍부한 음질, 질감 있는 사운드를 들려준다. 소리에 입체감이 살아있다.
계기판은 12.3 인치 모니터로 구현된다. 바로 옆으로 같은 사이즈의 모니터가 하나 더 배치돼 내비게이션 지도를 비롯해 다양한 정보들을 보여준다. 차의 여러 기능을 작동시킬 수도 있다. 모니터 해상도가 높아 햇볕이 아주 강한 날씨에도 선명하게 보여준다.
뒷좌석. 무릎 앞으로 주먹 두 개가 들어가고도 여유 있는 충분한 공간을 확보했다. 디지뇨 가죽으로 만든 시크는 부드럽고 고급스럽다. 열선 시트가 적용됐고 B 필러와 센터콘솔 뒤로 송풍구가 배치됐다. 12볼트 전원도 사용할 수 있다. 센터터널은 매우 높은 편이다. 한 뼘 정도 높이로 솟았다.
안전띠는 에어백 겸용이다. 유사시 좀 더 확실하게 안전을 담보할 수 있겠다. 뒷 차창은 닫히는 도중에 이물질이 걸리면 자동으로 내려와 안전공간을 확보해준다.
스티어링 휠은 2.3회전. 제법 타이트한 조향비를 기대할만한 수준이다. 움직이자마자 체크한 건 드라이빙 어시스트 플러스다. ‘플러스’라는 이름이 말해주듯 기술 수준은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 경험할 때마다 재미있고 신박하다.
드라이빙 어시스트 플러스 시스템은 아주 다양한 기술이 결합된 수준 높은 반자율운전시스템이다. 브레이크를 밟지 않아도 앞차를 따라서 스스로 완전 정지까지 한다. 앞차가 정지후 바로 출발하면 그대로 따라 간다. 자동차 전용도로에서는 자율운전에 가까운 기능을 경험할 수 있다. 알아서 속도조절하고 정지까지. 차선을 읽으며 조향까지 보조한다. 차간 거리는 무려 여섯 단계로 조절한다.
차선 유지 조향보조 시스템은 점선과 실선을 구분하다. 점선 넘을 땐 살짝 진동이 전해오는 정도다. 방향지시등 없이 실선 넘을 땐 강하게 저항한다. 조향에 적극 개입하는 게 깜짝 놀랄 정도다. 운전자가 실수 하지 않게 돕는 것. 핸들 잡은 손이 하나 더 있는 느낌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누군가 나와 함께 스티어링 휠을 쥐고 있는 느낌. 든든한 빽이다.
무조건 좋은 건 아니다. 운전 집중도가 떨어질 수 있다. 차가 알아서 해주겠지 하는 마음에 긴장감을 늦출 수 있는 것. 벤츠는 이런 경우 주의 어시스트가 작동해 잠시 쉬었다 갈 것을 운전자에게 권유한다. 완전 자율운전이 도입돼 운전에서 해방될 때까지는 최종책임 운전자에게 있다. 집중해야 한다.
고급세단이 이런 거구나 싶을 만큼 아주 편안하게 움직인다. V6 3.0 가솔린 엔진은 333마력의 힘을 낸다. 공차중량 1910kg을 대입해 마력당 무게비를 산출해보면 5.7kg. 마력당 무게비는 0-100km/h 가속성능에 수렴한다. 메이커가 밝힌 이 차의 0-100km/h 가속 시간은 5.2초. 비슷하게 맞아떨어진다.
9단 변속기는 6단에서 일대일 기어비를 이루고 이후 7, 8, 9단에서 오버드라이브 상태가 된다. 기어 선택의 폭이 그만큼 넓다.
서스펜션은 멀티챔버 에어 서스펜션에 앞뒤 멀티링크 방식이다. 에어 서스펜션보다 한 단계 더 고급스러워진 시스템이다.
E클래스 최고 모델답게 아주 많고 다양한 기능들이 있다. 계기판 디자인, 구성부터 주행모드, 서스펜션 세팅, 앰비언트 라이트 조절, 헤드램프 작동, 각종 편의장비 조절 등 운전자가 선택해야할 많은 부분들이 있다. 어쩌면 이 차를 타는 동안 한 번도 쓰지 못하는 기능이 숨어 있을 수 있다. 제대로 이 차를 타려면 차량설명서를 공부하는 마음으로 몇 차례 정독해야 한다.
시속 100km에서 1,200rpm을 마크한다. 대단한 안정감이다. 굳이 엔진 회전수를 높게 쓰지 않아도 필요한 힘을 구할 수 있다. 조금 높은 회전수를 택하면 기대 이상의 힘을 얻을 수 있다. 효율과 힘의 폭이 넓은 건 9단 변속기의 효과다. 시속 100km에서 택할 수 있는 기어 단수가 3단부터 9단에 이른다.
효율을 원한다면 공인연비보다 더 좋은 연비를 만날 수도 있다. 차분하게 30km 가량을 움직인 순간에 체크해본 연비는 9.7km/L. 메이커가 밝힌 공인연비는 9.0km/L. 아주 좋은 연비는 아니지만 받아들일만한 합리적 수준이라 할 수 있겠다.
조향은 무척 예민하다. 스티어링 휠을 조금만 움직여도 차의 앞부분이 크게 반응한다. 휠을 낚아채면 방향을 전환하는 속도가 빠르다.
가속페달엔 킥다운 버튼이 있다. 330마력의 힘을 마음껏 쓰며 속도를 올렸다. 빨려들어가듯 달렸다. 밟는 대로 나간다. 극한적인 속도에서도 크게 불안함이 없다. 주행의 즐거움을 넘어 짜릿한 느낌을 만끽할 수 있다. 불안감이 증폭되면 느끼기 힘든 감정이다. 조금 시끄러워 계기판을 보고서야 놀랐다. 감탄사 절로 나온다. 고속주행 안정감이 워낙 뛰어나 체감속도와 실제속도의 차이가 무척 컸다.
고속주행 안정감이 탁월한 이유 중 하나는 4매틱, 즉 사륜구동 시스템이다. 네 바퀴가 각각 구동력을 확보하며 달리는 덕이다. 또 하나는 바람소리, 즉 에어로다이내믹의 효과다. 극한적인 속도에서도 바람소리가 생각만큼 크지는 않았다. 그 상태에서 가속페달에는 여유가 많았다. 극한적 속도에서 어마한 공기저항을 이겨내고 중심을 딱 잡고 달린다. 빠르다는 느낌보다 잘 달린다는 느낌이 훨씬 더 크다. 불안함보다 즐거움이 크다. 역시 벤츠다.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고속주행을 이어가면 연료가 뚝뚝 떨어지는 게 눈에 보인다.
정속주행을 이어가면 최고급 세단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마음먹고 고속 주행하면 스포츠카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인다. 벤츠의 이름값을 한다. E클래스의 최고급 모델답다.
알피엠을 높여 코너에 도전했다. 잘 버틴다. 타이어가 살짝 소리를 내며 엄살피우지만 차제는 잘 버텨준다. 비명소리가 조금 거슬렸지만 전체적인 움직임은 조금 더 밟아도 버티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앞 245/40R19 뒤 275/35R19 사이즈의 타이어는 펑크에서 자유로운 런플랫이다. 스페어타이어는 없다. 런플랫이 승차감에 썩 좋지는 않다는 특성은 있지만 전체적인 조율을 거쳐 완성도 높은 승차감을 확보했다.
주행모드에 따라 차의 반응은 미묘하지만 확실한 차이를 보인다. 에코모드에선 가속페달과 차체가 큰 상관없이 움직인다. 너는 밟아라, 나는 나대로 간다는 느낌. 컴포트 모드에선 한 박자 늦은 반응이다. 일하기 싫은 소가 억지로 발을 떼는 느낌. 스포츠모드에선 빠른 반응으로 변하더니 스포츠 플러스에서는 가속페달과 시트가 연결된 듯 페달을 밟으면 시트가 바로 몸을 민다.
메르세데스 벤츠 E400 4매틱은 오너드라이버의 상한선이다. E 클래스 최고급 모델이어서다. 이를 넘어 S 클래스로 올라가면 쇼퍼드리븐카다. 직접 운전하는 오너라면 E 클래스가 최상의 선택일 텐데 그중 최고 모델이 E400이다. 오너드라이버가 택할 수 있는 더 이상의 프리미엄 세단은 없다. 이를 말하듯 가격도 4자리 수의 마지노선에 걸쳐 있다. 9,870만원.
오종훈의 단도직입
계기판과 내비게이션 모니터 상단에 처마처럼 길게 배치한 면이 날카롭게 각이 졌다. 대시보드상의 예각은 늘 거슬리는 부분이다. 센터페시아에 일부 적용된 블랙 하이그로시 재질은 손때와 먼지에 약하다. 개인적으로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E 클래스 최고모델임을 자랑하는데 트렁크 윗부분에는 맨 철판이 드러나 있다. 물론 단정하게 정돈된 모습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철판을 만날 때의 민망함은 아쉬울 뿐이다. 사소한 부분들에서 조금씩 거슬리는 부분들이 눈에 들어온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