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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V 바람이 거세다는 말은 이제 식상하다. 이미 십여 년, 멀게는 수십 년 전부터 불어온 바람이다. 꾸준히 강세를 보여온 오래 된 트렌드다. 잠깐 불고 마는 바람이라기 보단 도도한 흐름을 형성한 지 오래다.

신기한 건 그 바람이 그치지 않는다는 것. 이미 포화상태에 이른 것처럼 보이는 시장에서 거침없이 질주하는 미친 가속력을 보이고 있다. 시속 200km를 넘나드는 속도에서도 가속력이 팽팽하게 살아있는 고성능 자동차처럼, SUV의 질주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메르세데스 벤츠코리아가 GLE 쿠페와 GLS를 새로 시장에 투입했다. 용인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 트레이닝 아카데미를 출발해 용인 스피드웨이를 왕복하는 짧은 구간에서 새로 출시한 두 대의 SUV를 ‘잠깐 시승’했다. 거리는 짧았고, 시간은 부족했다. 게다가 고속도로는 주말을 앞둔 금요일 오후여서 대부분이 체증구간이었다. 최악의 상황에서 이뤄진 단체 시승이었음을 먼저 밝힌다.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두 대의 차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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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S는 SUV의 S 클래스다. 길이x 너비 x 높이가 5,130 x 1,980 x 1,880mm에 이를 정도다. 대단한 크기다. 7인승이다.

V6 3.0 디젤 엔진은 258마력, 63.2kgm의 토크를 토해 낸다. 변속기는 자동 9단. 공차중량 은 무려 2,655kg이다. 큰 덩치에 최고 수준의 편의장비 등을 집어넣은 결과다. 이 무게로 복합연비 9.5km/L를 기록하는 게 신기할 정도다.

움직이는 동안 무겁다는 느낌은 없다. 초반 가속은 더딘감이 없지 않으나, 탄력이 붙으면 거침없이 속도를 올렸다. 변속감은 거칠지 않았고, 고속에서도 불안감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차체는 안정적이다.

메르세데스 벤츠 GLS 350d 4매틱 엔진룸.

메르세데스 벤츠 GLS 350d 4매틱 엔진룸.

용인 에버랜드를 감싸도는 와인딩로드에서 GLS는 환상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완만한 코너, 내리막에서 깊게 꺾여 들어가는 코너, 오르막 코너 등 다양한 종류의 와인딩 코스가 이어지는 길에서 GLS는 마치 스포츠카 같은 거동을 보였다. 차체가 높다는 점을 빼면 스포츠카와 다를 바 없는 반응이다.

드라이버는 몸이 느끼는 수준에 따라 스티어링 휠과 가속, 브레이크 페달을 조절하면 된다. 운전자의 조작이 과하면 차가 알아서 보정해준다. 힘이 넘치거나 스티어링 조작이 과하면 ESC가 개입해 한 호흡 가속을 늦춰준다. 유능한 조수가 함께 차를 다루고 있다는 느낌이다. 차가 알아서 반응하며 힘을 쓸데는 쓰고 줄일 땐 알아서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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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S 뒷좌석에 앉으면 상당히 넓은 공간감이 확 와 닿는다. 자세 잡고 앉으면 무릎 앞으로 주먹 두 개가 들어가고도 더 남는다. 이미 충분한 공간을 확보했지만 조수석 시트 뒷부분을 더 팠다. 무릎 앞부분의 유효공간을 조금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함이다.

머리 위로도 주먹 세 개는 들어갈 듯 여유가 넘친다. 머리가 닿는 헤드레스트는 길게 배치해 탄력을 줘서 자연스럽게 지지해 준다. 느낌이 좋다.

뒷좌석엔 개별 승객을 위해 좌우에 한 개씩 모두 두 개의 모니터가 있다. AUX 단자가 있어 다른 기기와 연결할 수 있다. 즐기고 싶은 방법으로 혼자서 즐길 수 있다.

접어 넣을 수 있는 암레스트에는 컵홀더가 있다. 2열 시트 뒤로 트렁크에는 두 개의 3열 시트가 접혀져 있다. 2, 3열은 버튼을 눌러 간단히 시트를 접거나 펼 수 있다.

2열 시트는 간이의자 같은 느낌이다. 시트를 접어 넣기 위한 기능적인 부분을 고려하다보니 그리됐을까. 높이가 조금 낮은 시트는 어깨까지 충분히 받쳐주지 못하고, 돌출된 헤드레스트는 뜬금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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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E 350d 쿠페로 옮겨 앉았다.

강한 남자의 냄새가 물씬한 G바겐에 비하면 GL 클래스는 부드럽고 세련된 모습이다. 중성화되는 SUV의 추세를 잘 보여주는 스타일. 마초의 상징과도 같았던 SUV가 점차 남성스러움을 잃어버리는 것 같아서 아쉬운 생각도 든다.

GLE 쿠페는 한 발 더 나갔다. 루프 라인을 보기 좋게 깎아내려, 쿠페 스타일로 만들었다. 조금 더 여성적인 분위기인 셈이다. SUV도 아름다운 모습이 미덕인걸까. 개인적으론 동의하지 않는다.

GLE 350d 쿠페는 GLS 350d와 같은 엔진과 변속기를 사용한다. 같은 힘이지만 조금 더 강하게 느껴지는 건 무게 차이에서 비롯한다. GLE의 무게는 2,405kg. 만만치 않은 무게지만 그래도 GLS보다는 가볍다. 판매가격 1억600만원.

Mercedes-Benz GLE Coupé, GLE 450 AMG 4MATIC, Exterieur: Designo Hyazinthrot Metallic ; Mercedes-Benz GLE Coupé, GLE AMG 4MATIC, exterior: designo hyacinth red metallic;

Mercedes-Benz GLE Coupé, GLE 450 AMG 4MATIC, Exterieur: Designo Hyazinthrot Metallic ;
Mercedes-Benz GLE Coupé, GLE AMG 4MATIC, exterior: designo hyacinth red metallic;

유격 없이 정확하게 움직이는 조향 반응이 인상적이다. 손이 꽉 차게 잡히는 두꺼운 D컷 스티어링 휠은 2.7회전한다. GLE 쿠페는 GLE 보다 조향비를 조금 더 타이트하게 세팅했다는 설명이다. 차의 성격을 조금 더 예민하고 스포티하게 세팅했다는 의미로 읽을 수 있다.

GLE와 GLE 쿠페는 차 크기도 조금 다르다. GLE 쿠페가 50mm 더 길고(4,880mm) 너비는 무려 95mm가 넓다(2,030mm). 높이는 45mm 낮다(1,725mm). 같은 듯 다른 차다. 덩치를 조금 더 키운 것은 쿠페 스타일을 적용하면서 좁아질 수 있는 공간을 만회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2m를 훨씬 뛰어넘는 차폭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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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S가 무게감 있고 가라앉는 고급스러운 가속감을 준다면 GLE 쿠페는 그보다 좀 더 스피디하고 파워풀한 순발력을 보인다.

무게가 있어서 그런지 가속할 때 초기반응은 시원치 않다. 탄력을 받기까진 시간이 필요했다. 일단 탄력을 받으면 63빌딩의 엘리베이터처럼 수직상승하는 가속감이 느껴진다.

단순히 강한 힘만이 아닌 게 힘의 질감이 아주 좋다. 강한 힘이 부드럽게 몸을 휘감는 느낌이다. 노면의 거친 충격을 잘 흡수해 흔들림 없는 차체를 유지하는 것도 한 몫을 한다. 높은 수준의 주행안정감은 “역시 벤츠”다. 운전하는 사람은 물론 탑승객도 불안감을 느끼기 힘들다. 그만큼 편안하다는 의미다.

Mercedes-Benz GLE 쿠페 대시보드.

Mercedes-Benz GLE 쿠페 대시보드.

엔진 사운드는 낮은 편이다. 중저속 구간에서 낮고 부드럽게 들리는 소리는 고속주행 구간에 접어들며 바람소리에 점차 파묻힌다. 엔진 소리를 있는 그대로의 수준에서 잘 튜닝한 뒤 다시 반 내림시켜 음정을 다시 조절한 느낌이다. 포근한 소리다. 푹신하고 따뜻하지만 전혀 무겁지 않는 다운 파커의 느낌이 드는 건 무슨 이유일까.

브레이크는 무거운 차체를 힘들어하지 않고 정확하게 작동한다. 밀리는 법이 없다. 감속은 부드럽고 제동을 깔끔했다.

시속 100km 정속주행시 1900rpm을 마크했다. 9단 변속기라면 엔진 회전수를 좀 더 낮출 수도 있을 텐데 하는 궁금증이 있었지만 도로 사정상 다시 체크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21인치 타이어가 들어갔다. 앞에는 275/45R 21, 뒤에는 315/40R21 사이즈다. 조금 과장하면 버스에 끼워도 좋을 만큼이다. 큰 사이즈는 SUV를 한층 더 멋있게 만들어준다. 휠 하우스를 꽉 채운 타이어가 전체적인 스타일의 완성도를 높여주는 건 분명한 사실. 또한 강한 구동력과 확실한 제동력을 발휘하는 데에도 큰 도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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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경제적으로 보면 부담이 커지는 게 사실이다. 단순히 타이어 가격이 비싼 것만이 아니다. 타이어 자체의 무게가 증가하고 노면과의 마찰력이 커져 필요 이상의 연료 소비를 유발한다. 타이어 편마모도 심해진다. 얻는 것만큼 잃는 것도 많은 셈이다.

음성인식 시스템은 놀랍다. 우리말을 너무 잘 알아듣는다. 음성인식 버튼을 누르고 “내비게이션”하고 말하면 바로 지도가 뜬다. “라디오”하는 명령에 즉각 FM 라디오가 들렸다. 시원치 않은 한국식 영어발음이지만 잘 알아듣고 정확하게 명령에 따랐다. 마음에 든다.

쿠페 스타일이어서 룸미러를 통한 후방 시야는 약간의 제약이 있다. 지붕 끝선이 룸미러 상단을 가리고, 뒷좌석 헤드레스트 역시 룸미러에 걸려서다. 후방 시야를 보는데 큰 지장은 없지만 거슬리는 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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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훈의 단도직입
GLE 쿠페는 기본형 크루즈 컨트롤을 사용한다. 어댑티브 크루즈컨트롤도 아닌 그냥 정속주행만 가능한 기본형이다. 조향보조시스템도 없다. 아무리 벤츠라고 하지만 1억 넘는 차인데 너무 인색했다. 가격을 낮추던지, 장비를 좀 더 보강하던지 해야 한다.

SUV의 S 클래스라는 GLS는 뒷좌석은 생각보다 빈약하다. 시트는 고급스러운 느낌이 없고 마치 간이 벤치 같은 느낌이다. 이게 GL‘S’ 맞나 당혹스러울 정도다. 뒷좌석 모니터를 제외하면 이렇다 할 편의장비도 찾기 힘들다. S 클래스 수준을 기대하고 GLS 뒷좌석에 앉으면, 실망할 수밖에 없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