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북 강변도로를 달리며 차가 참 조용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브레이크를 밟으면 지하철이 멈출 때 나는 소리가 났다. 살짝 페달을 밟으면 엔진은 잠 깰 생각이 없다는 듯, 모터가 조용히 첫발을 내디뎠다. 아마도 ‘유령의 발자국’이라는 표현으로 그 차를 설명했던 것 같다. 새로 나온 RX를 만나면서 10년 전 쯤 기억의 조각들이 떠올랐다. 국산 하이브리드자동차가 처음 등장한 건 아마도 그로부터 1~2년 지난 다음이었을 것이다. 25년 가까이 수많은 차를 시승했지만 유난히 뚜렷한 기억으로 남는 차가 몇 있다. 렉서스 RX도 그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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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RX다. 풀체인지를 거친 3세대 모델. 한 나절의 단체 시승에서 배정된 차는 RX450h다. 가장 아래 트림인 수프림 모델을 타고 왕복 120km가 구간을 달렸다.

스핀들 그릴은 빼 놓을 수 없는 포인트다. 강렬하다. 종이를 접어 날을 세운 듯한 차체의 날카로운 라인이 그 강렬함을 뒷받침하고 있다. 풀 LED 헤드램프에선 곡선이 아예 없다. 자를 대고 그은 듯한 직선이 교차하며 램프의 형상을 완성하고 있다. 측면은 물론 뒷모습까지 ‘직선의 향연’은 이어진다. 타이어 말고는 곡선 찾기가 쉽지 않다. 섣불리 다가서기 힘든, 쉽지 않아 보이는 모습. 호락호락해 보인진 않는다.

지붕이 떠보이는 ‘플로팅 루프’는 블랙 C 필러가 부르는 착시다. C 필러가 유리처럼 보여 지붕이 허공에 뜬 것 처럼 보이는 것. 미니의 블랙 A 필러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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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어졌다. 이전 모델 보다 120mm 늘어난 4,890mm의 길이를 확보했다. 휠베이스도 50mm 늘어난 2,790mm다. 너비는 1,895mm로 10mm 늘었고, 높이도 1,705mm로 20mm가 높아졌다. 전체적인 비율도 따라서 달라졌다. 분명한 건 더 커졌고 넓어졌다는 사실이다. 커진 덕에 렉서스의 플래그십 세단 ‘LS’만큼의 뒷좌석 공간을 확보했다고 렉서스는 설명했다.

시트 포지션이 낮아졌다. 19mm 낮추고 스티어링휠도 운전자 방향으로 2도쯤 세워서 운전하기 편한 자세를 갖추게 했다. 2.8회전. SUV에겐 조금 타이트한 조향비다.

12.3인치의 시원한 모니터가 센터페시아 위에 배치됐다. 터치 스크린 방식은 아니다. 렉서스 특유의 리모트 터치 컨트롤로 조작한다. 성질 급한 사람은 모니터에 손가락을 갖다 대기 마련이지만 그렇게는 반응하지 않는다.

헤드업 디스플레이, 무선충전장치, 레이저컷 우드 등은 기본형이 수프림에선 제외됐고 고급형인 이크제큐티브 트림에 적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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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열 시트는 120mm 슬라이딩이 가능해 더 넓은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트렁크에서 버튼을 눌러 뒷 시트를 접을 수 있어 편하다. 버튼을 눌러 시트를 접는 편안함. 재미있다.
재미있는 건 또 있다. 키를 몸에 지니고 앰블럼 위로 손을 갖다 대면 딸깍하고 트렁크 게이트가 열린다. 손이 아니어도 된다. 팔꿈치, 어깨 등 신체 일부를 갖다 대면 된다. 단 3초 정도 기다려야 하는 것. 손을 갖다 대자마자 문이 열리길 기대하는 이들은 작동하지 않는다고 불평할 수 있다. 기다려라. 차분하게. 기다리면 어김없이 문이 열린다. 이 차는 충청도 양반이다.

가속페달을 툭 튕겨 봤다. 반응은 반 박자쯤 늦었고 그 강도도 높지 않다. 렉서스다운 반응이다. ‘즉답’은 렉서스에 어울리지 않는다. 스포츠 모드에서 조금 낫기는 하지만 느긋함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가속반응 역시 충청도 양반 닮았다.

하이브리드 모델인 450h에는 V6 3.5리터 앳킨슨 사이클 엔진이 적용된다. 엔진 출력 262마력에 모터 출력 37kW를 더해 전체 출력은 313마력의 힘을 낸다. 드라이브 모드를 에코 노멀 스포츠 3단계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스포츠모드는 조금 더 민감하지만, 다른 브랜드의 스포츠모드보다는 한결 순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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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속페달을 깊게 밟으면 바닥까지 아무 저항 없이 밟힌다. 킥다운 버튼은 없다. 엔진 소리가 제법 힘차게 터져 나온다. 웅장하고 폭넓은 스포츠카의 소리가 아니다. 높은 소리는 좁은 관을 빠져나오는 듯 상대적으로 얇다.

원하는 만큼 힘을 뽑아낼 수 있다. 극한적인 속도까지 쭉 올라간다. 변속 충격도 없다. 무단변속기 덕분에 rpm 게이지는 전진과 후퇴하는 과정 없이 레드존을 향해 곧바로 달려간다. 인상적인 가속이었다.

고속도로를 빠져나오는 인터체인지를 빠르게 돌아 나왔다. 235/65/R 사이즈의 미쉐린 타이어는 살짝 비명을 질렀지만 무리 없이 코너를 탈출했다. 리어 트랜드 액슬에 모터를 더한 사륜구동 방식이다. 고속주행, 코너링 등에서 차의 안정감을 한 단계 더 높여준다.

조용함과 편안함은 렉서스의 미덕이다. 충분히 빠르게 달릴 수 있고, 고속에서의 안정감 또한 뛰어나지만 역시 시속 100km 전후의 속도로 순항할 때 가장 좋은 느낌을 받는다. 세단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승차감이다. 앞에 맥퍼슨 스트럿, 뒤에 더블위시본을 적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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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조용한 편은 아니다. 다른 브랜드에 비하면 NVH가 우수하지만 렉서스에 대한 기대를 갖고 있다면 소음이 조금 거슬리게 들릴 수 있다. 자글거리는 노면 소음이 실내로 파고든다.

굴곡이 있는 도로를 달리면 그 굴곡에 따라 차가 출렁이는 느낌을 받는다. 조금 무른 듯한 서스펜션이지만 코너에서나 고속에서는 제대로 차체를 지지한다. 필요한 순간에는 차체를 강하게 받쳐주는 느낌이 인상적이다.

메이커가 밝힌 복합연비는 12.8km/L. 계기판이 알려주는 연비는 8km/L 전후였다. 시승을 하면 워낙 변화가 많은 주행상황을 겪는 만큼 나쁘다고 탓할 수는 없다. 에코 모드를 택해 충청도 양반처럼 차분히 운전하면 공인연비 수준은 충분히 경험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미국 고속도로안전보험협회(IIHS)는 이 차를 최고 안전차량으로 선정한 바 있다. 모든 영역에서 만점을 받았다. 10개의 에어백이 사후 안전을 책임진다면, VDIM과 VSC는 사고를 회피하는 사전 안전을 책임진다.

RX 450h 수프림은 7,610만원이다. 450h 이그제큐티브와 F 스포츠는 8,600만원이다. 하이브리드가 아닌 RX350은 8,070만원. BMW X5, 레인지로버 이보크, 인피니티 QX70 등과 경쟁이 가능한 가격대다. 렉서스 RX가 갖는 분명한 성격을 잘 이해한다면 선택에 어려움은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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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훈의 단도직입
변속레버는 거칠다. 레버의 반응, 소리가 그렇다. 무단변속기의 부드러움이 변속레버의 강하고 거친 움직임으로 무색해진다. 변속레버를 자주 쓰는 건 아니지만 움직일 때마다 아쉬움이 남는다.
센터페시아 아래부터 센터 콘솔까지의 레이아웃은 재조정했으면 좋겠다. 변속레버 앞으로 전자식 파킹 브레이크와 브레이크 홀드 버튼이 배치됐는데 거리가 멀고 공간이 협소에 조작이 편치 않다. 이 부분에 대한 좀 더 창의적인 대안을 기대해 본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