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반떼다. 현대차가 준중형급 선수 교체를 마쳤다. 가장 수요가 몰리는 시장에 투입될 차종이다. 시장의 허리다. 이 시장을 장악하면 밑으로 소형, 위로 중형차 시장까지도 넘볼 수 있다. 승부를 걸 수밖에 없는 대단히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다.
슈퍼 노말. 단 네 글자(11자의 알파벳)로 정리한 카피가 깔끔하다. 귀에 쏙 들어온다.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겠다.
디자인은 잘 다듬어졌다. 이전 5세대인 MD는 조금 과하다 싶은 모습이었다. 립스틱 진하게 바른 16살 소녀처럼. 6세대 신형 아반떼의 모습은 달라졌다. 이전 모습이 발랄했다면, 지금 모습은 단정하다. 쏘나타의 모습도 그렇게 변했다. 그러고 보니 아반떼는 늘 ‘작은 쏘나타’였다.
이목구비가 뚜렷하다. 헥사고날 그릴과 헤드램프 등 각 부분이 큼직하게 자리했다. 헤드램프 는 HID이고 리어램프는 LED다. 세 조각 난 리어램프가 뒷모습에 포인트를 준다.
운전석 시트는 몸을 잘 지지했다. 느슨한 듯, 하지만 움직일 때 몸을 잘 잡아주는 시트다. 허벅지까지 지지해주기를 바라는 건 욕심이다. 작은 쏘나타라는 느낌은 차 안에 들어서면 더 확실해진다. 핸들을 빼면 곡선을 찾기 힘들다. 대시보드는 수평을 유지하고 있다. 흐트러진 구석 없이 깔끔한 인테리어다.
룸미러에는 하이패스 기능과 블루링크 버튼이 통합돼 있다. SOS 버튼은 존재만으로도 든든하다. 언제든지 “도와주세요”라고 말할 상대가 있다는 건 생각보다 큰 힘이 된다. 블루링크는 커넥티드 드라이브의 시작. 앞으로 얼마나 발전해나갈지는 예측하기 힘들다.
차체 길이 4,570mm. 다섯이 들어가는 공간은 2,700mm의 휠베이스 위에 만든다. 공간 구성은 알뜰하다. 특히 바닥이 평평한 뒷좌석은 3명이 불편 없이 앉을 수 있다. 준중형 세단에서 더 바랄게 없는 공간이다. 제법이다.
아반떼 1.6 디젤중 최상위 트림인 프리미엄 모델을 타고 양평-충주 구간을 왕복했다. 차체에 부서지는 햇살이 유난히 따스했던 초가을이었다.
습관처럼 체크하는 핸들 회전수는 2.7이다. 흔히 일반적으로 무난하게 받아들여지는 3회전에 훨씬 못 미치는 회전수는 예민한 조향감각을 미리 알려주고 있다. 훨씬 날렵하고 예민한 회전 감각은 방향을 틀 때, 굽이굽이 커브가 이어지는 산길에서 빛을 발한다. 슬로 슬로 퀵퀵. 춤을 추듯 움직이는 모습이 아름답다.
1.6 디젤엔진은 7단 DCT와 호흡을 맞춘다. 유로6 기준에 맞춰 효율을 높인 친환경 엔진이다. 최고출력은 136마력/4,000rpm, 최대토크는 30.6kg.m로 1,750부터 2,500rpm 구간에서 꾸준히 나온다.
디젤 특유의 굵은 토크감, 낮은 배기음. 미세한 진동. 이런 거 신형 아반떼에선 느끼기 힘들었다. 그냥 조용히 사뿐사뿐 움직였다.
A : 차 조용하네.
B : 당연하지, 가솔린인데.
A : 이 차 디젤인데?
B : .…….
다른 차에서는 시승중 이런 대화가 오갔다는 얘기도 있다. 그만큼 조용했다.
처음 움직이는 동안은 감탄사의 연발이었다. 조용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에 압도당한 결과다.
유연해졌다고 할까? 차는 도로를 여유 있게 포용했다. 거칠게 반항하는 아들을 꼭 껴안는 엄마처럼 아반떼는 도로와 다투지 않고 품어 안는다. 조금 소프트하지만 그렇다고 낭창거리지는 않는다.
이 지점에서 아반떼는 i30와 조금 다른 맛을 낸다. 같은 준중형이지만 i30는 조금 거칠고 아반떼는 조금 부드럽다. 그래서 두 차는 경쟁차종도 다르게 설정했다. i30는 폭스바겐 골프를, 아반떼는 토요타 코롤라를 각각 경쟁상대로 꼽는다. 경쟁차종을 보고 차 성격을 이해할 수 있다.
가속을 이어가면 DCT 특유의 빠른 변속감을 만난다. 4,500 가까이 치솟던 rpm이 순간적으로 3,000 가까이 떨어졌다가 다시 올라간다. rpm 게이지의 움직임이 아주 빠르다.
중저속에선 힘이 넘친다. 시속 100~130km/h 구간에서는 딱 좋다. 파워도 좋고 시끄럽지도 않다. 잔잔한 호수 위를 달리는 듯한 승차감도 인상적이다. 그 구간을 넘어서도 꾸준히 힘을 낸다. 하지만 속도가 올라갈수록 탄력은 떨어진다. 어쩔 수 없는 배기량의 한계다. 그래도 놀라운 건, 최고속에서 마지막 한 방울의 힘까지 쥐어짜내는 모습이다. 극한의 고속을, 힘겹지만, 기어이 터치하고 만다. 고집이 느껴진다.
킥다운 버튼이 없는 밋밋한 가속페달은 재미없다. 밀당을 모르는 여자처럼, 그냥 다 줘버린다. 살짝 앙탈도 부리고, 밀어내기도하다가, 바닥을 내어주면 훨씬 더 재미있겠구만. 너무 순하고 착하다.
에코모드에서 아주 독특한 반응을 느꼈다. 가속페달을 아주 깊게 밟아 쭉 가속을 이어간 다음 발을 떼고 나면 툭하고 미는 느낌이 온다. 빙상경기에서 바통을 이어받은 주자를 뒤에서 밀어주는 듯한 느낌이다. 연비에 도움이 되기는 하겠다.
훨씬 더 까다롭고 강화된 새로운 기준을 적용한 정부 신고연비는 17인치 타이어와 ISG 장착 기준으로 17.7km/L다. 시승차에서 내리며 계기판을 통해 확인한 시승차의 실제 연비는 16.0km/L. 시승 구간의 절반 이상을 고속주행으로 달린 결과다. 고속주행을 줄이고 60~80km/h 구간에서 안정적으로 운전했다면 메이커가 발표한 연비 정도는 충분히 경험할 수 있겠다. 그런 면에서 신뢰할만한, 우수한 연비다.
신형 아반떼에는 혼유 사고를 막을 수 있는 장치가 있다. ‘오주유 방지 시스템’이다. 디젤차에 가솔린 주유건이 삽입되면 차단막이 작동해 기름을 못넣게 하는 방식으로 혼유사고를 막는다.
아반떼 디젤은 1,600만원부터다. 시승차인 최고급 트림인 ‘프리미엄’ 모델은 2,371만원.
오종훈의 단도직입
주행모드간 차이는 알아채기 힘들다. 스포츠와 에코모드가 어떻게 다른지 그 차이가 명확하지 않다. 물론 엔진 작동과 변속반응에 차이가 있겠지만 운전자에겐 그 미묘한 차이가 제대로 전해지지 않는다. 스포츠는 좀 더 강하게, 에코모드는 좀 더 부드럽게 그 간격을 벌려놓을 필요가 있겠다. 굳이 주행모드 구분이 필요할까 하는 생각도 든다. 스포츠나 에코 필요 없이 그냥 노말한 차를 좀 더 싸게 제공해줄 것을 원하는 이들도 상당수다.
준중형 세단이라면 그런 트림도 하나쯤 있어야 한다. 하지만 아반떼에서 자동변속기를 택하면 통합주행모드가 자동으로 따라온다. 이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수동변속기 밖에 없다. 화려하고 충실한 옵션도 좋지만, 이를 거부할 수 있는 소비자의 권리도 존중할 필요가 있다. 더 싸고 기계적으로 더 간단한 트림도 하나쯤 만들어달라는 얘기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