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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서스가 마이너체인지를 단행한 신형 ES를 내놨다. 하이브리드 모델인 ES 300h가 주력이다. V6 가솔린 모델 ES350도 함께 출시했다.

플래그십 모델인 LS가 렉서스의 ‘본질’이라면 ES는 살림꾼이다. 렉서스의 한 직원이 “ES는 우리 월급 주는 차”라고 말했다. 가장 많이 팔리는 차종이라는 의미다. 1989년 렉서스 브랜드의 출범과 동시에 출시된 렉서스 ES는 현재까지 175만대 이상 팔렸다. 렉서스 전체 판매의 24%에 해당한다. 한국에서는 지난 2001년 12월 4세대 ES가 처음 들어왔다. 2012년 9월에는 6세대 모델이 출시됐다. 하이브리드 ES300h는 6세대 모델이 런칭할 때 국내 판매를 시작해 3년간 약 1만 1,000대 이상이 팔렸다. ES 300h를 비롯한 다양한 하이브리드 모델들은 렉서스 전체 판매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LS’가 ‘렉서스의 조용한 카리스마’를 상징한다면 ES는 그 아래서 살림을 책임져야하는 차다. 가장 중요한 게 먹고사는 문제라는 데 동의한다면 ES는 렉서스 라인업에서 ‘가장 중요한 차’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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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사는 문제는 타협을 통해 해결할 수밖에 없다. 바로 ES의 운명이다. 조용하고 편안한 승차감, 렉서스 특유의 디자인 등이 ‘양보할 수 없는 렉서스의 가치’에 해당한다면, 더 넓은 공간을 위해 앞바퀴굴림을 적용한 점은 ‘생계를 위한 타협’이라 할 수 있다. 하이브리드로 승부를 보고싶은 렉서스에게 가솔린 엔진 모델인 ES 350이 타협일수도 있겠다.   DSC00650

마이너체인지를 거치며 ES는 더욱 분명한 이목구비를 갖췄다. ‘스핀들 그릴’로 부르는 라디에이터 그릴을 더 크고 분명하게 만들었다. 그릴의 아랫부분 폭을 넓혔고 그 테두리는 아랫부분만 은은한 실버컬러로 무광 처리했다. 이전 디자인이 어딘가 조심스러워하는 부분이 느껴진다면, 새 모습에선 강한 자신감이 읽힌다. 좀 더 강하고 분명하게 ‘확 지르는’ 디자인 변화다.

화살촉 모양의 주간주행등은 좀 더 복잡한 형상으로 변했다.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고자한 시도한 변화겠지만 과했다. 굳이 이렇게까지 복잡하게 만들 필요가 있었을까.

파란 컬러로 표기되는 Hybrid 영문표기는 고급스러운 은색으로 만들어 측면에 부착했다. 하이브리드가 친환경 이미지만으로는 부족함을 말해주는 지점이다. 렉서스의 하이브리드는 고급임을 말한다.

크릴새우를 한껏 빨아들일 것 같은 고래의 커다란 입 같은 라디에이터 그릴이다. 측면은 견고한 ‘한 일자(一)형 라인’이 프리미엄 세단임을 드러낸다. 중형세단의 품격과 여유를 드러내는 모습이다.

시승차로 준비된 차는 하이브리드 차종으로 일본 큐슈 공장에서 생산돼 현해탄을 건너온 ES 300h. 기어이 하이브리드로 승부를 보겠다는 의지는 변함이 없다. 렉서스는 지금 판매량의 약 80%가 하이브리드 모델이라고 밝히고 있다. 하이브리드 차종이 시나브로 우리 삶에 바짝 가까이 뿌리내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실이다.

첫 순간의 기싸움이랄까. 실내에 들어서는 순간 살짝 기가 죽는다. 까불던 아이가 고급스런 저택의 응접실에 들어서면서 숨조차 조심스럽게 쉬는 그런 분위기? 잘 다듬어진 원목으로 고유의 무늬를 낸 시마모쿠 우드트림과 고급 마감재가 사용된 도어 스위치 패널이 눈길을 끈다. 기어 레버에는 차가운 금속이 맨살처럼 드러났던 부분을 가죽으로 감싸 살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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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속레버 옆, 마우스처럼 자연스럽게 손이 가는 곳은 리모트 터치 인터페이스다. 옆면에는 엔터 버튼이 더해져 아주 쉽고 편하게 쓸 수 있다. 작동하는 느낌과 반응이 여전히 재미있다. 실내등은 손으로 살짝 스치기만 해도 점등이 된다. 손이 직접 닿지가 않아도 작동할 수 있어 쓰임새가 좋다.

렉서스 ES에는 스크래치 복원 페인팅이 적용됐다. 깊게 패인 흠이 아니라 표면이 살짝 흠집 난 정도라면 도장면 스스로 복구하는 기능이다. 인피니티가 처음 도입했던 스크래치 실드 페인트와 유사한 기능이다.

리어휠 하우스를 비롯한 주요 부위에 구조용 접착제를 사용해 철판을 이었다. 촘촘한 용접 정도를 뛰어넘어 아예 접착제로 풀칠을 해서 붙여버린 것이다. 할 수만 있다면 철판을 잇는데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지 않을까. 강성을 확보하기에도, 차 밖의 소리들이 실내로 파고드는 걸 막는 데에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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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동버튼을 누르면 움직일 준비가 끝났음을 조용히 알린다. 배터리 잔량이 부족할 땐 “부르릉” 하는 소리와 함께 엔진이 켜질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런 촌스러운 일은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
EV 모드는 시속 40km까지 유지할 수 있다. 엔진 소리 없이 스르륵, 미끄러지듯이 움직이는 느낌은 매번 신기하다. 브레이크를 밟아 멈출 때 들리는, 모터 소리도 마찬가지다.

계기판은 선명, 깨끗해서 잘 보인다. 편하다. 평소에는 파워게이지가 보이고 스포츠모드를 택하면 빨간 바탕의 rpm 게이지가 드러난다.

편안했다. 아주 많이. LS만큼은 아니지만 렉서스의 본질을 아주 잘 담고 있다. 법정 최고속도를 초과하는 조금 빠른 속도에서도 흔들림이 주는 피곤함이 없다. 안정감이 주는 편안함이 흔들리는 건 아주 빠른 속도에 진입하면서다. 앞바퀴굴림 방식이면서도 승차감이 수준급이다. 허리띠 한 칸 푼 느슨한 느낌이다.

편안하지만 재미는 떨어진다 싶으면 스포츠모드를 누르면 된다. 빠릿빠릿하고, 긴장감도 좀 있고, 내지르는 펀치가 제대로 팍팍 꽂히는 느낌이 살아난다. 허리띠 한 칸 조인 팽팽한 긴장감이, 스포츠 모드에선 제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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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렬 4기통 DOHC 앳킨슨 엔진은 2,494cc다. 여기에 렉서스의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더해져 총 203마력의 시스템 출력을 낸다. 최대토크는 21.6kgm다.

가속페달은 아무리 힘 있게 밟아도 저항이 없다. 그냥 맥없이 바닥을 내주고 만다. 킥다운 버튼을 누르며 경계를 넘는 맛이 이 차엔 없다. 기본적으로 퍼포먼스보다는 승차감을 지향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부분이다. 렉서스가 지향하는 지점이 바로 거기다.

서울 잠실을 출발해 가평의 한 골프장까지 왕복 130km 구간을 왕복했다. 가는 동안에는 최고속도를 시속 100km 넘지 않게, 급가속을 피하고, 부드럽게 교통흐름을 따라 달렸다. 연비를 체크하기 위해서다. 17.3km가 나왔다. 메이커가 밝히는 공식 복합연비는 16.4km/L. 신경 써서 달리면 크게 무리하지 않고도 공인연비 이상을 확인할 수 있겠다. 도심연비는 16.1km/L, 고속도로 연비는 16.7km/L로 주행조건간 편차가 크지 않다. 밀리면 밀리는 대로, 빠르면 빠른 대로 최적의 연비를 만들어낸다. 바로 하이브리드 시스템의 강점이다.

어쨌든 이 차를 탈 때엔 연비에 신경을 쓰면서 달리는 게 좋다. 그래야 이 차의 편안한 승차감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다. 연비는 승차감이다.

실내는 조용했다. 다른 프리미엄 세단들보다도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의 렉서스다운 조용함이다. 도로 상태가 안 좋은 곳을 지날 땐 자글거리는 노면 마찰음이 더 도드라진다. 너무 조용해서 오히려 시끄러운 역설이다. 자면서 코라도 곤다면 그 소리도 실제보다 더 크게 들릴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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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속 100km에서 에코모드로 달리면 초록색 에코존 끝부분에 게이지가 걸린다. 스포츠모드를 택해 rpm 게이지를 불러내면 같은 속도에서 1,800rpm 정도를 보인다.

반환점을 찍고 돌아오는 길에는 거칠게 다뤘다. 가감속을 반복했고, 아주 빠른 최고속에도 도전했다. 연비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고, 고속주행 위주로 퍼포먼스를 즐겼다.

승차감에 무게 중심을 좀 더 준 프리미엄 세단이지만 ES는 강한 모습도 유감없이 보였다. 고속주행은 호쾌했고 코너에선 야무졌다. 앞바퀴굴림차 답지 않게 차의 흔들림을 안정감 있게 제어할 수 있었다.

변속기는 놀라웠다. 가속페달을 깊게 밟았다. 레드존을 넘어 5750rpm까지 오르면 끝까지 떨어질 줄 모른다. 한번 물면 놓지 않는다. 변속충격? rpm이 떨어졌다 올라갔다 해야 변속쇼크가 생길 텐데 아예 rpm 변화가 없으니 충격이 생길 리가 없다. 무단변속기의 궁극적인 모습을 잘 보여줬다.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렉서스 ES는 여전히 렉서스의 본질을 잘 간직하고 있었다. 그 본질은 바로 렉서스의 존재이유이기도 하다. 심신을 가장 편안하게 받아주는 자동차로서 렉서스는 단연 최고 수준임을 ES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렉서스 ES 300h의 판매가격은 프리미엄 5,1980만원, 수프림 5,590만원, 이그제큐티브 6,370만원이다. 프리미엄 수입차 가격으로 적절한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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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했던 과거에 지배당하는 오늘은 초라하다. “내가 왕년에…….”로 시작하는 말이 초라한 오늘을 바꿔주지는 않는다. 렉서스 ES가 강남 쏘나타였던 그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다면 렉서스는 초라하다.

하지만 아니다. 그들의 시선은 어제가 아닌 내일을 향해있다. 렉서스가 내일을 보는 창이 바로 하이브리드다. 디젤이 장악한 시장에서 한 치 흔들림 없이 하이브리드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는 브랜드가 렉서스다. 그들의 시선이 ‘미래’를 향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본격적인 하이브리드 자동차 시대가 시작될 때 렉서스의 화려한 시절도 비로소 시작될 것이다. 렉서스에게 화려한 시절은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이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운전석 머리 위에 손잡이가 있다. 그게 왜 필요할까? 좌측핸들, 우측핸들차를 모두 만족시키기 위해 좌석에 관계없이 4개의 손잡이를 무조건 만든 거라면 프리미엄 브랜드답지 않다. 사소한 부분에서까지 세심한 배려를 느껴야 한다는데 반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변속레버는 풀려버린 나사처럼 헐겁다. 가죽 부츠를 덮어 한껏 멋스러워졌는데 이리 빙글, 저리 빙글 헛도는 손잡이가 단번에 그 멋을 갉아먹어버린다. 아쉽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