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는 수입차 시장이 큰 폭으로 확대되고 있고 세계적으로는 프리미엄카의 판매가 늘고 있다. 두 개의 비슷한 현상은 어쩌면 같은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지 모른다. 부자들이 많다. 혹은 늘고 있다는 말이다. BMW와 벤츠는 이제 쏘나타 만큼이나 흔하게 볼 수 있는 게 서울 거리다. 많이 팔리는 차는 흔히 보이게 마련이고 흔한 차는 값어치가 없어 보인다. 많이 팔리는 프리미엄 카들의 역설이다. 그 틈새에서 강한 존재감을 보이는 브랜드가 재규어다. 최고급 프리미엄세단의 이미지를 갖고 있으면서 대량판매되는 브랜드가 아니니 적당한 희소성도 갖췄다. 프리미엄 브랜드로서는 가장 좋은 포지셔닝일 수 있다. 남들 다 타는 그런 고급차 말고 흔치 않은 고급차를 원하는 이들을 유혹하기에 딱 좋은 브랜드라는 말이다.

재규어 XJ 3.0 슈퍼차저 롱휠베이스 2013년형 모델을 시승했다.
세단이지만 4도어 쿠페의 스타일이다. 지붕에서 트렁크까지 선의 흐름이 꺾임이 없다. 물방울의 이지미를 가져왔다는 디자인이다. 재규어는 특히 디자인에 강하다. 언제봐도 감탄사가 터지는 E타입을 비롯해 모델 하나하나가 탁월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XJ도 마찬가지다.

길다. 주차장에 세우면 뒤를 아무리 바짝 갖다대도 코가 튀어 나온다. 길이가 5,253mm, 휠베이스가 3,157mm다. 5m를 한참 넘긴 크기는 보기만해도 부담스럽다. 하지만 고급스러움을 강조하기에는 오히려 좋을 수 있다. 넓은 공간 그 자체가 부유함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인테리어는 호화로움의 종결자라는 요트에서 응용했다. 소재 하나 하나가 예사롭지 않다. 인테리어의 호화로움은 눈과 손으로 절감한다. 핸들은 가죽과 나무로 만들었고 실내는 가죽으로 감쌌다. 손 끝으로 느끼는 촉감과 소재의 질감은 차원이 다르다. 시트는 몸을 가볍게 안아준다.

1,910kg으로 2톤에 가까운 공차중량은 그나마 100% 알루미늄 차체를 적용한 경량화의 결과다. 2톤을 훨씬 넘어야할 크기지만 알루미늄 차체를 적용해 이 정도로 군살을 뺄 수 있었다. 이 크기에 엔진 배기량은 3.0 리터에 불과하다. 택도 없을 것 같은 엔진이지만 수퍼차저를 적용해 최고출력이 340마력, 최대토크 45.9kgm에 이르는 극도로 효율화된 엔진이다. 작은 배기량으로 한 급 위의 엔진을 대체하는 다운사이징의 본보기라 할 수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8단 자동변속기 또한 극한의 효율을 만드는데 일조한다. 시속 100km에서 rpm이 1,300 전후를 마크할 정도다. 120km/h에서 1,500rpm에 이른다. 일상적인 주행 영역이라면 1,500rpm 이상을 쓸 일이 거의 없다는 말이다. 순간적으로 가속하는 상황을 제외한다면 엔진은 늘 편안하고 조용한 상태를 유지한다. 당연히 승차감도 좋아질 수밖에 없다.

변속레버 대신 자리한 동그란 드라이브 셀렉터는 재규어의 특징이다. 시동을 걸면 솟아오르고 끄면 들어간다. 수동변속은 핸들에 달린 패들시프트를 이용하면 된다. 패들 시프트는 반응이 빠르고 정확하다. 시프트 다운을 하면서 가속페달을 깊게 밟으면 우아하게 움직이는 영국 신사가 단거리 스프린터로 돌변한다. 수퍼차저가 지원하는 엔진의 반응이 폭발적이다.

빠르게 속도를 올리지만 차의 안정감은 흐트러지지 않는다. 고속에서도 체감속도는 현저히 낮아 속도계를 항상 잘 체크해야 한다.
잔잔한 엔진 소리는 가속 상태에서도 그리 요란스럽지 않다. 엔진 소리에 섞인 수퍼차저 작동음도 알아채기 힘들다.
차가 멈추면 엔진은 즉시 멈춘다. 아이들 스톱 기능을 적용해 단 한방울의 연료도 허투루 쓰지 않는다.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면 엔진은 힘차게 되살아난다.

긴 차는 코너에서 차의 뒷부분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앞 245/45R19, 뒤 275/40R19 사이즈의 피렐리 타이어를 신은 재규어 XJ는 큰 부담없이 코너를 빠져나갔다. 꼬리가 휘청일법도 했지만 야무지게 노면을 지탱하는 타이어는 단단한 서스펜션과 환상의 궁합을 이루며 코너를 공략했다.

에어서스펜션의 역할도 크다. 초당 500회로 반응하는 연속 가변 댐퍼 기능을 갖는 에어서스펜션은 노멀, 다이내믹, 윈터 3가지 모드를 지원한다. 다이내믹 모드를 택하면 안전띠가 조금 더 강하게 조이고 문자판이 적색으로 바뀐다. 달릴 준비가 됐다는 의미다.

XJ는 여전히 잘 달렸다. 멋있는 모습 못지 않게 잘 달리는 건 재규어가 반드시 갖춰야할 기본이다. 호화로운 인테리어도 빠질 수 없다. 변속레버를 대신하는 동그란 드라이브 셀렉터는 재규어의 아이콘이 됐다.

센터 페시아에 자리한 8인치 터치스크린은 듀얼뷰 기능이 있다. 운전자와 조수석 승객이 서로 다른 모니터를 볼 수 있는 것. 운전자는 내비게이션을 보고 조수석 승객은 DVD 영화를 감상할 수 있다.
계기판에 자리한 12.3 인치의 가상 계기판은 다양한 비주얼로 차의 주행정보와 상태를 전달해준다. 825W 출력의 메리디안 오디오 시스템은 20개의 스피커를 동원해 귀를 호강시킨다.
앞좌석 헤드레스트 뒷편에는 뒷좌석 승객을 위한 8인치 LCD 모니터가 있다. 무선 적외선 디지털 헤드폰을 이용해 혼자만의 엔터테인먼트를 즐길 수 있는 장치다. 뒷좌석은 등받이 를 조절할 수 있고 조수석 시트 원격 조절 기능, 4방향 요추 받침 조절 장치, 마사지 기능, 뒷좌석 발받침 등이 있다. 쇼퍼 드리븐카로로 제격임을 말해주는 편의장치들이다.

XJ의 또 다른 장점은 선택 폭이 넓다는 것. 2.0, 3.0, 5.0 가솔린 엔진에 3.0 디젤 엔진까지 있고 SWB,와 LWB의 보디, 후륜구동과 사륜구동 등의 조합으로 모두 8개 트림을 구성하고 있다. 가격대는 1억 990만원부터 2억2,390만원만원까지다. 흔한 건 프리미엄이 아니라는 재규어의 정밀한 고객 유인책이다.

오늘 시승한 XJ LWB 3.0 수퍼차저의 복합연비는 8.4km/L, 판매가격은 1억 3,990만원이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부를 상징하는 넓은 공간은 좁은 골목길에서 운전자를 힘들게 한다. 서울에는 5m가 넘는 차를 힘들게 만드는 도로와 주차장이 너무 많다. 장점이 곧 단점인 셈이다. 다운사이징과 알루미늄 차체를 적용했음에도 복합연비는 5등급을 벗어나지 못했다. 결코 싸다고 할 수 없는 가격과 5등급 연비는 부담스럽다.

시승 / 오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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