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초, 자동차 잡지사에 다니던 시절, 한 달을 사는 즐거움 중의 하나가 외국 자동차 잡지들을 구독하는 일이었다. 한 달 마감을 끝내면 어김없이 책방으로 달려갔다. 신세계백화점 건너편, 중앙우체국 골목에 자리한 허름한 책방이었다. 주로 미국과 일본 잡지들이었다. 모터트렌드, 로드앤트랙, 카앤드라이버, 카그래픽 등의 잡지를 넘겨보며 바깥세상의 흐름을 나름대로의 눈으로 읽었다.

4×4매거진도 그중 하나였다. 일본에서 나오는 SUV전문 매거진이다. 토요타 RAV-4를 처음 접한 것도 그 잡지였다. 덩치 큰 SUV에만 익숙하던 나에게 깜찍하리만치 작은 사이즈로 만든 SUV는 생경했고 신기한 대상이었다. RAV-4뿐 아니다. 혼다 CR-V, 미쓰비시 파제로 미니 등 작은 SUV는 나에게 신선하게 다가왔었다.

RAV-4가 세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건1994년이었다. 한국에는 2009년 토요타 브랜드가 한국 판매를 시작하면서 3세대 모델로 처음 선을 보였다. 레크리에이셔널 액티비티 비클 4휠 드라이브의 뜻을 담아 RAV-4라고 이름지었다. ‘레브 포’라고 읽어야할 것 같지만 일본식 발음 ‘라브 포’라 읽는다.

풀체인지한 4세대 모델이다. 많은 부분, 아니 거의 전부가 변했다. RAV-4라는 뱃지만 여전할 뿐 예전의 모습을 찾을 수 있는 부분이 거의 없다. 디자인은 한층 안정감 있게 변했고 성능 역시 그동안의 아쉬운 부분들을 보완해 소비자들의 눈높이를 충족시키려 노력했다. 4단자동변속기는 6단으로, 17인치 타이어는 18인치로, 6개의 에어백은 8개로 각각 업그레이드됐고 에코&스포츠 모드를 택할 수 있는 드라이브 모드 셀렉터 기능도 더해졌다. 투톤 인테리어 컬러는 다양한 컬러의 조합으로 훨씬 다양한 선택을 가능하게 했다. 블루투스, USB 오디오, 파워 백도어, 차선이탈감지, 타이어 공기압 모니터링 시스템 등 기존에 없던 옵션들이 4세대 모델에는 탑재됐다. 4WD시스템은 스티어링휠의 조향각에 반응하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해 더욱 샤프해졌다. 운전석 메모리 시트, 리어 뷰 카메라, 선루프, 히팅 시트 등도 예전엔 없던 편의장치들이다.

3세대 모델의 빈약했던 부분들을 대거 보완해 훨씬 풍요롭고 편리한 소형 SUV로 탈바꿈했다. 3세대 모델이 중산층 집안의 검소한 이미지였다면 4세대로 넘어오면서 제법 부유한 집안의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로또라도 터진 걸까? 

오랜 시간을 두고 소비자들의 요구에 맞춰 하나하나 개선을 거듭해 세상에 내놓은 차다. 거칠고 쓴 맛이 시간이 지나면서 입에 착 감기는 잘 숙성된 와인을 닮았다. 좋은 친구와 와인 한잔을 마주한 느낌, 4세대 RAV-4는 그렇게 다가왔다.

3세대까지 이 차는 스페어타이어를 뒤에 매달고 다녔다. 도심지향의 SUV를 자처하면서 스페어타이어는 오프로드  전용 SUV처럼 배치한 것은 언밸런스였다. 스페어타이어를 실내 트렁크 바닥으로 집어넣으면서 그런 부조화는 완전히 사라졌다. 사이즈도 4,620mm에서 4,570mm로 줄었지만 실내 공간 손실은 없다. 차폭은 1,845mm로 10mm좁아졌고 높이는 1,705mm로 40mm가 낮아졌다.

얇은 헤드램프와 그릴, 뒤가 낮아지는 루프라인, 심플한 뒷모습 등이 훨씬 세련된 이미지를 완성하고 있다.

소박했던 인테리어는 화사한 분위기로 변했다. 화장기 없는 수수한 민낯이 3세대의 인테리어였다면 4세대 RAV-4의 인테리어는 화사한 화장을 한 셈이다. 우선 투톤 컬러를 도입해 단조로움을 피했다.

뒷좌석은 편하고 생각보다 넓다. 등받이도 어느 정도까지 뒤로 더 누일 수 있어 편안한 자세를 잡을 수 있다. 센터터널도 없어 뒷좌석 바닥은 평평했다. 3명이 앉아도 편한 구조다. 뒤창을 내리면 완전히 내려가 확실한 개방감을 준다. 인테리어 질감도 이전에 비해 좋아졌다.  손과 눈이 느끼는 질감이 이전과 다르다.

보닛을 열어 엔진룸을 살펴보면 공간이 널찍하다. 엔진 위로도 상당한 여백이 있다. 보행자 안전을 위해 바람직한 배치다. 정비사가 수리를 할 때에도 편하겠다.

고급차에서나 볼 수 있는 파워 백도어도 적용됐다. 전동식 리어게이트를 적용해 버튼을 눌러 여닫을 수 있는 것. 게다가 레벨링 메모리 기능을 더해 사용자의 키에 맞춰 리어게이트가 열리는 각도를 조절할 수 있다. 

시승코스는 서울에서 태안까지 고속도로와 국도, 와인딩 코스가 포함된 코스였다. 사륜구동 모델을 타고 달렸다. 자연흡기 방식의 직렬 4기통 2.5L 가솔린 엔진은 179마력, 23.8kgm의 힘을 토해낸다.  여기에 자동 6단 변속기가 궁합을 이루며 차를 컨트롤한다.

시속 150km전후까지는 적절한 파워를, 그 이상에서는 더디지만 끈기 있는 가속감을 보였다. 시속 100km에서 rpm은 2000에 못 미친다. 그만큼 안정적이다.

시속 160km전후의 고속주행 상태에서 들리는 바람소리는 앞좌석과 뒷좌석 차이가 컸다. 앞좌석에서는 속도에 맞는 소리가 들리지만 뒷좌석에서는 훨씬 더 조용하게 들렸다.  도저히 그 속도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잔잔한 소리가 들릴 뿐이다. 속도감과 소리가 일치하지 않는 묘한 느낌에 자리에서 일어나 계기판의 속도계를 확인해 봤을 정도다.

핸들은 2.7 회전한다. SUV라면 대부분 3회전하는 것에 비하면 타이트한 조향비다. 일반적으로 SUV는 칼처럼 예리한 조향보다는 조금 여유 있는 핸들링 특성을 선호한다.  오프로드를 달릴 때에는 어느 정도의 유격과 함께 조향비가 여유있는 게 좋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차는 노골적으로 타이트한 조향성능을 택했다.  오프로드보다 온로드를 지향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이다.

“RAV-4는 온로드 지향이다. 달리는 즐거움, 운전하는 즐거움을 주는 게 주요 개발 포인트다. 민감한 핸들링을 통해 이를 구현하고 싶었다”는 것이 이 차를 만든 토요타의 부수석 엔지니어 카츠히토 마츠모토씨의 해설이다. 굳이 해석해보자면 오프로드 주행보다는 온로드에서 더 스포티한 성능을 보일 수 있게 차를 세팅했단 얘기다.

가속페달이 마지막 순간에 한 번 걸린 뒤 더 밟히는, 이른바 킥다운 버튼은 없다. 아무 저항없이 바닥까지 밟힌다. 끝까지 가속페달을 밟으면 꾸준히 밀고 나간다. 컴팩트 SUV로는 생각하기 힘든 극한적인 속도까지도 은근과 끈기로 밀어붙인다. 극한 속도에서 차의 안정감은 다소 떨어지는 감이 있지만 그 정도로 달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놀랍다.

6단 변속기의 특성도 재미있다. 각 단에서 허용하는 속도 폭이 넓다. 1단이 50km/h까지 커버하고 2단은 110km/h를 넘긴다. 최고속도는 4단에서 나온다. 

4WD 시스템에 새로운 개념을 도입한 다이내믹 토크 컨트롤은 주목할 만하다. 핸들을 돌리는 순간 뒷바퀴로 10%의 구동력을 즉시 배분해 차체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시스템이다. 코너를 돌아나가는 상황에 따라 최대 50대 50까지 앞뒤의 구동력을 조절해준다. 구동력 배분을 조향시스템과 연계 시켰다는 점이 새롭다.

RAV-4 리미티드 4WD의 정부공인 표준연비는 도심 9.2, 고속도로 11.8, 복합 10.2km/L다. 2WD는 도심 9.9, 고속도로 12.6, 복합 11.0km/h. 일반 운전자들이 운전해도 충분히 가능한 연비다. 오히려 더 좋은 연비를 기대할 수도 있다.

판매가격은 2WD모델이 3,240만원, 4WD모델은 3,790만원이다. 양품염가, 양질의 제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한다는 토요타의 철학이 반영된 가격이라고 한국토요타 나카바야시 사장은 강조했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대시보드를 돌출시킨 신선한 시도는 평범하지 않은 독특한 형식으로 강한 개성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색다른 구성으로 눈길을 끌고 돌출된 부분을 주목하는 효과가 크다. 하지만 그 아랫부분에 마련된 스포츠, 에코 모드 버튼은 상체를 숙여서 눌러야 할 정도로  멀다.
대시보드 돌출은 조수석 승객에 압박감을 줄 수도 있는 공간구성이다. 돌출 부분의 아랫부분에 수납공간이라도 만들면 좋을 텐데 그냥 방치됐다. 그늘졌다고 해야 할까. 돌출 시킨 것 까지는 신선한 시도여서 좋은데 그로 인한 그늘진 부분까지 세세하게 마무리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숙제로 남겨놓은 것처럼 보인다.
돌출부분이 각을 이루고 있는 점도 걸린다. 부드럽게 처리했다고는 하지만 만일의 경우 충돌사고에 이은 2차 충격이 가해질 때 대시보드의 ‘각’은 위험요소로 작용한다.

글/ 사진 오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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