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가 왜건을 들여왔다. 5시리즈 투어링이다.
BMW 5 시리즈 그대로의 앞모습에 지붕이 트렁크까지 덮은 뒷모습이 처음엔 생소해 보인다. 왜건이라는 말의 근원은 마차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말과 승객이 앉는 시트뒤로 천으로 덮은 짐칸이 붙어있는 형식의 마차다. 자동차 시대에서는 스테이션 왜건이라고 불렀다. 차체 뒤쪽에 자리한 화물 적재 공간이 실내와 통해 있는 것이 특징이다.왜건은 짐을 싣고 여행가기에 딱 좋은 차종이다. 유럽에선 많은 사랑을 받는 만큼 다양한 왜건 모델들이 선보이고 있다.왜건, 에스테이트 등으로 불리지만 BMW는 투어링으로이름지었다.

한국에서 왜건은 성공한 예를 찾기 힘들다. 세단도 아니고 SUV도 아닌 어중간한 차라는 인식이 강해서다.

이를 모를 리 없는 BMW가 왜 5 투어링을 들여왔을까. 차종 다양화로 소비자의 다양한 요구를 수용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시장의 흐름을 바꿀 정도로 많이 팔릴 주력 차종은 아니지만 왜건을 찾는 소수의 소비자들까지 배려하겠다는 것. 풀라인업을 구축한 BMW가 이제 틈새 차종을 투입하면서 ‘선택의 폭’을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왜건의 핵심 공간은 트렁크다. 리어 게이트를 열면 드러나는 넓은 공간은 트렁크 공간임과 동시에 뒷좌석과 막힘없이 통하는 실내 공간의 일부다. 왜건의 트렁크 공간은 세단의 그것과는 쓰임새가 확실히 다르다. 단순히 짐만 싣는 역할이 세단의 트렁크라면 왜건의 트렁크는 훨씬 더 많은 짐을 실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때로 생활공간이 되기도 한다. 특히 아이들이 좋아한다. 단 차가 움직일 때 트렁크에 아이들이 있게 해선 안된다.
오토캠핑에서도 진가를 발휘한다. 트렁크를 깨끗하기 비우고 뒷좌석을 접으면 성인 두 명이 누울 수 있는 아늑한 침실이 될 수도 있다. 트렁크에서라면 운전석에서 시트를누이고 쉬는 것보다 숙면을 취할 수 있다. 낯선 여행지에서 아늑한 집이 되는 것이다.

BMW 5 투어링의 트렁크는 좀 더 기능적이다. 테일게이트는 리모트 컨트롤 버튼을 누르면 열린다. 트렁크 바닥은 완전히 평평하고 바닥을 들어 올리면 물건을 수납할 수 있는 또 다른 작은 공간이 열린다. 당연히 스페어 타이어는 없다. 펑크가 나도 계속 달릴 수 있는 런플랫 타이어를 적용했기 때문이다.
리어게이트를 열고 뒤에서 버튼을 누르면 뒤 시트가 앞으로 접히면서 훨씬 넓은 공간이 만들어진다. 트렁크 공간은 560리터에서 1,670리터까지 확대할 수 있다. 소형 화물차로도 충분히 사용할 수 있을 정도다.

리어 시트는 분할형 시트로 4:2:4로 구분되고 앞으로 완전히 접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최대 11도 각도로 누일 수도 있다. 뒷좌석에서도 시트에 비스듬히 기댄 자세가 가능한것.

실내는 충분한 공간을 확보했다. 머리 위 공간도 여유있다. 운전석 시트는 허벅지까지도 여유 있게 받쳐준다. 운전석에도 지붕에 손잡이를 배치했다. 없어도 될 부분이다.

시승차는 525d x드라이브 M 스포츠 패키지 모델이다. 배기량 1,995cc의 디젤 엔진과 8단 자동변속기가 궁합을 맞춰 최고출력 218마력, 최대토크 45.9kgm의 힘을 낸다. 제법 센 놈이다. 배기량에 비해 센 힘은 이 차의 효율성을 잘 보여준다. 복합연비 14.7km/L에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km당 133g이다.

적게 먹고 큰 힘을 내는 한편 방귀도 적게 뀌는 셈. 파워와 효율 서로 다른 방향으로 튀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치지 않고 있다. 두 마리 토끼를 포획하는 BMW의 이피션시다이내믹 기술은 개선을 거듭하며 이제 익을 대로 익었다. 연료탱크 용량은 70리터, 공인 연비만 맞출 수 있다면 1,350 km마다 한 번씩만 주유하면 된다는 계산이다.

스르르 시동이 꺼지는 경험은 이제 익숙한 일이다. 차가 멈추면 조용한 엔진 소리조차 사라지고 적막함이 실내를 뒤덮는다. 시동이 꺼지면서 핸들도 잠긴다. 차가 움직이면서 시동이 걸릴 때 핸들을 동시에 작동하면 강한 반발력이 순간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진다.

오토스탑 기능도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오토홀드 기능과의 간섭을 완전히 없앴다. 브레이크 페달에서 발을 떼도 브레이크를 잡은 상태를 유지하는 오토홀드 기능은 그동안오토스탑과 상충됐다.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면 다시 시동이 걸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BMW 5 투어링은 브레이크에서 발을 뗄 때가 아니라 가속페달을 다시 밟는 순간 시동이 걸리게 설계했다.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도 시동은 꺼져있고 오토홀드 기능도 유지되는 것.

그래서일까. 정지 후 출발할 때에는 한 박자 놓친다. 브레이크 페달에서 발을 떼는 순간 시동이 걸리면 가속페달을 밟는 순간 부드럽게 차가 나가는데 이제는 가속페달을 밟는 순간 시동을 걸고 움직이게 돼 시간이 더 필요한 것이다.

제법 굵은 핸들은 3.2회전한다. 여유 있는 스티어링 휠이다. 날카로운 조향감보다 약간의 여유를 더 가진 느긋한 핸들이다.

헤드업 디스플레이는 더 편해졌다. 화려한 컬러로 표시될 뿐 아니라 진행해야 할 차로까지 표시할 정도로 더 정교하게 안내한다. 교차로가 다가올 때마다 신경을 곤두세우지않아도 내비게이션이 시키는 대로만 하면 문제없다.

218마력과 45.9kg의 토크는 주행하는 모든 속도 영역에서 폭발적인 순발력을 토해 낸다. 얌전히 미끄러지다가 킥다운 버튼을 터치하면 강남스타일의 그녀처럼 반전이 벌어진다. 정숙한 자태로 사뿐사뿐 움직이다가 신호를 주면 도로에 밀착하며 미친 듯이 달려 나간다. 메이커가 밝히는 시속 100km 도달 시간은 7.3초다. 왜건이지만 스포츠 세단수준의 순발력을 가졌다.

일반적으로 왜건은 리어 서스펜션을 조금 더 단단하게 세팅한다. 짐을 실을 때를 대비해서다. 이 때문에 혼자서 차를 탈 때면 뒤가 통통 튄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하지만 이 차는 달랐다. M 스포츠 서스펜션에 18인치 타이어를 끼워 하드하지만 쇼크를 잘 흡수했다. 때로 부드럽다는 느낌을 줄 정도다.

어느 속도에서도 부드럽게 차가 움직이는 것은 8단 변속기 덕이다. 부드럽다고 힘이 없는 것은 아니다. 충분한 힘이 느껴진다. 시속 100km에서 rpm은 겨우 1500 전후를 마크할 뿐이다. 엔진 회전수가 낮아도 충분한 속도를 낼 수 있는 것.

속도를 높이면 BMW가 자랑하는 X 드라이브의 진가가 드러난다. 흔들림을 거의 느낄 수 없는 안정감이 체감 속도를 크게 낮춘다. 코너에서도 한계 속도가 높아 운전자의 역량 이상의 움직임을 보인다.

왜건은 편해 보인다. 꽉 짜인 일상을 바삐 움직이는 게 세단이라면, 왜건은 주말 가족 나들이와 어울리는 그림이다. 넥타이를 풀어헤친 편안한 셔츠 차림의 아빠가 운전석에앉아있을 것 같은 차다. 일상의 여유를 즐기는, 좋은 아빠가 운전하는 차일 것 같은 분위기. BMW 5 투어링은 그런 차다.

판매가격은 BMW 525d x드라이브 투어링이 7,670만원, BMW 525d x드라이브 투어링 M 스포츠는 8,280만원이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룸미러를 통해 뒤를 보면 리어시트의 헤드레스트가 걸린다. 룸미러의 상당부분을 헤드레스트가 차지해 시야가 충분하지 않다. 좌우 사이드미러를 통해 필요한 시야를 확보할 수는 있지만 룸미러를 볼 때마다 걸린다.

오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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