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시대가 바짝 코 앞에 다가왔다. 기아차가 레이 EV를 선보였고 르노삼성차도 올해 말부터 전기차를 본격 시판한다는 계획이다. 백년 이상 계속된 내연기관 중심의 자동차 산업 패러다임이 일대 변화를 앞두고 있는 시점이다.
따지고 보면 자동차 산업 초창기에 이미 전기차는 존재했다. 포르쉐가 만든 첫 자동차는 전기 모터를 이용해 움직이는 완벽한 전기차였다. 하지만 배터리의 효율이 너무 낮아 상용화하지 못했다. 예나 지금이나 문제는 배터리인 셈이다. 시대가 흘러 배터리의 효율성이 상당한 수준으로 개선됐고 환경문제, 석유자원의 고갈과 고유가 등의 문제가 겹치면서 다시 전기차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전기차의 선두주자는 현재로선 일본이다. 닛산이 전기차 리프를 세계 최초로 일반 판매에 나섰고 미쓰비시도 iMIV로 전기차 대열에 합류한 지 오래다. 프랑스 르노 역시 이미 2대의 전기차를 판매하고 있고 올해 안에 모두 4개의 전기차를 판매할 예정이다. 그중 하나 플루언스 ZE가 바로 르노삼성이 국내 판매할 SM3 ZE다. 눈여겨보면 르노닛산 얼라이언스 안에 상당수의 전기차들이 포진해 있음을 알 수 있다.
시승을 위해 준비한 SM3 ZE는 터키 공장에서 만들어 국내로 공수한 모델. ZE는 제로 에미션을 의미한다. 국내 시판차는 부산공장에서 만들게 되는데 약간의 차이가 있다고 한다. 서울 르노삼성 본사에서 경기도 일산까지 약 40km 거리를 왕복하는 시승길에 올랐다.
외관은 르노삼성의 SM3와 같다. 다만 C 필러 뒤로 차 길이를 13cm 가량 늘렸다. 배터리팩을 장착하기 위한 공간을 만들기 위한 조치다. 옆에서 보면 차의 비례가 깨지는 아쉬움은 있지만 보기에 어색하지는 않았다. 역삼각형으로 배치한 리어 램프가 SM3와는 다른 디자인이다.
시동을 거는 것처럼 키를 돌려 전원을 넣는다. 차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다만 계기판에 초록색 On 표시가 뜬다. 차가 달릴 준비가 됐다는 의미다. 키를 돌리는 것보다 버튼을 누르는 게 전기차에는 더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든다.
계기판은 상당히 누워있다. 조금만 더 눕히면 하늘을 볼 정도다. 가속하는데 엔진소리가 들리지 않아 잠깐 어색함을 느꼈다. 바퀴가 굴러 움직인다기보다 미끄러지는 느낌을 받는다. 속도를 조금 올리면 바람소리, 타이어 마찰음 등이 올라와 어색함을 줄여준다.
가속감은 가솔린이나 디젤 엔진차 저리가라할 정도. 특히 초반 가속은 압권이다. 가속페달을 밟자마자 차를 끌고 나가는 힘이 확연히 차이난다. 전기차의 특성이다. 모터가 움직이면서 바로 최대토크가 발휘되기 때문이다. 덕분에 시내 도로에서 쉽게 가속추월을 할 수 있다. 엔진을 장착한 차들은 가속 초기에 힘을 내기 힘들지만 SM3 ZE는 가뿐하게 속도를 높인다.
엔진이 없어 그 소리도 따라서 사라졌다. 저속에선 매우 조용했다. 속도를 올리면 바람소리며 노면 마찰음들이 들려 차를 타고 있다는 느낌을 살려준다. 편안한 세단이다.
핸들은 3회전을 넘어 3.3회전한다. 여유있고 편안한 핸들링 특성을 보였다.
전기차에는 변속기도 없다. 전기차에 달린 변속기는 전진 후진만 결정해줄 뿐, 1,2,3단의 개념이 없다. 따라서 변속충격을 걱정할 일도 없다. 가속페달을 밟으면 부드럽고 빠르게 속도를 높여갔다. 차체설계를 새로해 서스펜션 특성도 SM3와는 조금 다르다.
최고속도는 135km/h. 무리없이 최고속도를 낼 수 있었다. 빠르게 달리는 자동차 전용도로에서 교통 흐름을 타는 데 아무 문제 없다. 모터 출력은 70Kw. 마력으로 환산하면 95마력 정도다. 최대토크는 226Nm. 우리에게 익숙한 단위로 보면 23kg.m가 된다. 이렇게 보면 힘이 부족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지만 기우다. 차를 다루고 속도를 내는 데 충분한 힘을 내준다. 힘을 걱정할 일은 없겠다.
제동도 만족할만하다. 운전자의 의지대로 속도를 줄이고 멈추는데 문제가 없다. 140km를 넘는 고속주행이 불가능한 만큼 브레이크의 부담도 줄었다고 보면된다. 급제동을 하면 비상등이 자동으로 작동한다. 감속을 하거나 브레이크를 밟을 때에는 회생제동시스템이 작동한다. 감속 에너지를 다시 전기로 변환시켜 배터리에 저장하는 것.
문제는 배터리 즉 전기다. 르노삼성차는 이 차의 1회 충전 주행거리를 182km라고 했지만 차에 부착된 에너지효율 표시에는 123km로 되어 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달리는 장거리 운전은 불가능하다. 왕복을 감안하면 최대 90km 정도, 에너지 효율표를 기준으로 한다면 60km 정도가 이 차로 갈 수 있는 최대 거리라고 보면 된다. 1일 운행거리 60km 이하가 전체 운전자의 87%라고 하니 전기차 수요는 충분한 셈이다.
배터리 무게는 280kg이다. 240~480V의 고전압을 내는 데 SM3 ZE에는 LG화학의 리튬이온배터리가 장착된다. 배터리는 뒷좌석 뒤로 수직으로 세워져있다. 트렁크를 열면 수직으로 세워진 벽을 보게 되는 데 바로 배터리팩의 위치다. 차의 무게 중심이 높아지는 불리함에도 불구하고 배터리를 세운 것은 ‘퀵 드롭’ 교환을 위해서다. 배터리가 방전됐을 때 이미 완충된 배터리로 빠르고 쉽게 교체하기 위한 방책이다.
가정에서의 표준충전을 하면 6-8시간, 급속충전을 하면 30분~1시간이 걸린다. 퀵드롭 방식으로 배터리를 교체하면 3분 정도가 소요될 뿐이다. 르노삼성은 전기차에서 배터리 가격이 빘다다는데 착안해 배터리만 리스로 판매하는 방식도 도입할 예정이다.
서울에서 일산을 왕복하며 도심, 국도, 자동차 전용도로 등 다양한 조건에서 차를 탔다. 모든 구간에서 기존 내연기관차를 능가하는 성능을 보였다. 이 차의 최고속도인 시속 135km를 넘는 고속으로 달릴 수 없다는 점을 빼면 기대 이상의 주행성능을 갖췄다. 배터리 성능이 개선된다면 이 같은 전기차의 한계도 조금씩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르노삼성차는 이 차를 4500만원 이하로 판다는 계획이라고 밝혔다. 기아차의 전기차 레이 EV보다 싸게 팔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
오종훈의 단도직입
문제는 인프라다. 전기 충전시설, 전기차에 대한 자동차 보험료 체계, 전기차용으로 사용하는 전기요금, 전기차 사고시 대처방안에 대한 경찰, 119 등 안전 요원에 대한 교육 등에 대해 명확히 결정된 것이 거의 없다. 차근차근 해결해나가야할 문제들이지만 전기차 시대가 코앞에 다가왔지만 사회적 인프라는 빈약하기 짝이 없다. 이런 환경에서 전기차를 택할 소비자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정부와 관련 기관이 좀 더 적극적으로 전기차 시대를 맞을 준비를 해야할 것이다.
오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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