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회에 드라마 협찬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

방송국 드라마 협찬용으로 제공됐던 수입차 21대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것을 두고 업계 관계자들이 하는 얘기다. 협찬 차량들 수십 대가 한꺼번에 사라져버린 일은 전무후무한 일이다.

KBS 드라마 ‘적도의 남자’ 및 ‘사랑비’, SBS 드라마 ‘바보엄마’ 등에 나오던 차들이다. 3개사, 4개 브랜드가 피해를 입었다. 이들은 모두 한 광고대행사에 드라마 PPL을 맡겼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라진 차들의 가격을 합하면 대략 15억 원에 이른다. 피해를 입은 회사들은 16일, 부천경찰서에 수사를 의뢰하고 사태 파악에 나서고 있다. 사라진 차들의 행방은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사라진 차들은 어디로 갔을까.

문제의 차들은 모두 종합보험에 가입돼 있어 도난으로 밝혀지면 피해 보상이 가능하다. 하지만 관련된 누군가가 사기행각을 벌였거나 채권채무가 얽혀 있는 경우 오랜 시간을 두고 복잡한 법적 절차를 거쳐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수입차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번 기회에 드라마 PPL 관행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연예계에 끈을 댄 일부 부실한 업체들이 턱없이 높은 협찬금을 받고 차를 서너 달씩 사용하며 갖은 말썽을 빚어왔다”는 것이다.

자동차만 제공하면 추가비용 없이 PPL이 가능했는데 언제부터인지 턱없이 높은 추가비용을 내야 겨우 드라마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게 됐다는 것. 최근의 PPL 비용은 자동차 제공 플러스 1억5,000만~2억 원에 이른다.

업계에서는 PPL 업체들이 여러 브랜드에 제안서를 던지며 가격을 올려놨다며 볼멘소리를 한다. 하지만 이 같은 돈을 내고서라도 드라마 간접광고에 응하는 업체들이 있어 협찬 비용이 늘어난다는 지적도 있다.

차량 제공 기간도 문제다. 이전에는 촬영 당일 혹은 그 전후 2-3일이었지만 요즘에는 아예 서너 달씩 장기간 빌려준다. 때문에 차량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기 힘들다. 그때그때 손보고 소모품을 교체해주는 것은 물론 다른 용도로 차를 쓰지 못하게 통제가 이뤄져야 하지만 장기임대로 제공되다보니 임대기간 동안 전혀 관리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임대 기간 중 관계자들이 개인적으로 혹은 PPL 대행사의 업무용으로 사용하는 일은 당연하게 여겨진다. 수천만 원에서 억대를 호가하는 차들을 마치 자신의 차인양 마음 놓고 사용한다는 것. 간혹 교통사고가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 드라마 촬영 이외의 용도로 차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약속은 지켜지지 않는다. 임대기간 동안 제대로 관리를 못하고 험하게 사용된 후 돌아온 차들의 상태는 대부분 경악할 만한 수준이라는 게 업계의 하소연이다.

이번 사건을 두고 업계에서는 차량관리 강화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장기 임대 관행은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협찬 제공된 차들을 회수하고 촬영 때마다 차를 내주는 방향을 고려한다는 것. 드라마 협찬은 물론 다양한 명목으로 외부에 제공되는 차들에 대한 관리가 한층 강화될 전망이다. 이번 사건의 파문이 어디까지 미칠지 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이 같은 사고가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제도적인 대책도 필요하다. 신뢰성을 갖춘 업체를 통해서만 PPL 협찬을 하도록 업계가 공동대응하는 방안도 마련하고 무분별한 협찬 경쟁도 자제해야 한다.

어처구니 없는 사고를 당한 수입차 업계는 이래저래 심란해 보인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