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 체로키 디젤이 출시됐다. 지난해 가을 가솔린 모델이 먼저 출시한 뒤 시차를 두고 디젤 모델이 투입된 것이다.
241마력짜리 3.0 디젤 터보 엔진을 얹은 모델. 큰 덩치가 영락없는 미국 사람의 모습을 닮았다. 체로키는 인디언 부족의 이름이다. 백인의 침략에 맞서 전투를 마다하지않았던 용맹하고 전투적인 인디언이었지만 삶의 터전에서 빼앗기고 강제 이주 당해야했던 인디언이다.
그랜드 체로키의 뿌리는 60년대에 팔리던 지프 왜고니어다. 체로키라는 이름은 84년부터 사용했다. 이후 몇 차례의 변화를 거쳐 지금의 그랜드체로키로 변신해왔다. 왜건으로 시작해 SUV로 진화해 온 것이다.
지프는 아메리칸 SUV의 명가다. 유럽에 랜드로버가 있다면 미국엔 지프가 있다. 미국이 2차대전을 승리고 이끌 수 있었던 이유중 하나가 지프라는 분석이 있을 정도다. 지금이야 많은 브랜드에서 SUV를 만들고 있지만 불과 10여년 전만해도 SUV 브랜드는 그리 많지 않았다. 지프는 그중 탁월한 존재였다.
7 슬롯 그릴. 지프의 아이콘인 7개의 세로 바로 구성된 라디에이터 그릴은 그랜드 체로키 디젤에도 당당히 자리했다. 지프라면 포기할 수 없는 디자인이다. 그 양옆으로 자리한 박스 스타일의 헤드램프는 그 안에 원형 램프가 자리했다.
덩치가 커서 그럴까. 차를 운전하다보면 꽉 맞는 옷이라기 보다 조금 헐렁한 느낌을 받는다. 길이 4,825mm, 너비는 1,935mm다. 길이야 그렇다 쳐도 차 폭은 과하다. 적어도 한국에선 그렇다. 폭이 1900mm를 넘는 경우는 흔치 않다. 1900mm를 넘기면 실내 공간은 여유있게 넓어지는 대신 주차를 하거나 좁은 길에서는 불편하다. 장점이자 단점이다. 미국이라면 단점일리 없다. 워낙 땅이 넓은 곳이다. 하지만 인구밀도가 높고 도로의 밀도도 높은 환경에서 넓은 차를 타는 건 때로 심한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변속기 레버 아래 셀렉터레인 레버가 자리했다. 사륜구동 방식을 선택할 수 있는 로터리식 버튼이다. 오프로드에 들어섰을 때 노면 상태에 따라 운전자가 선택할 수 있다. 언덕 밀림방지, 내리막 주행제어, 스로틀 제어, 변속제어, 트랜스퍼케이스, 구동력 제어, 전자제어 주행안정정치 등을 통합제어하는 시스템이다. 운전자가 도로 상황을 잘못 판단해 모래길에서 ‘ROCK’ 모드를 택하면 차가 스스로 판단해 ’샌드‘ 모드로 변환한다. 똑똑한 놈이다.
마음에 드는 건 로 모드가 있다는 것. 진흙길, 급경사 등에서, 혹은 다른 차를 견인할 때 강한 구동력을 뿜어내며 위기탈출을 도와주는 기어다. 로 기어야말로 무늬만 오프로더와 분명히 차별할 수 있는 요소다. 로 모드가 있다는 건 진짜 오프로더라는 말이다. 로 모드는 기어 중립에서 택해야 한다.
핸들은 3.5 회전 전후로 움직인다. 꽉 조인 핸들이 아니라 약간의 여유를 둔 유격도 느껴진다. 이 역시 오프로드 주행을 염두에 둔 조치로 보인다. 오프로드에선 타이트한 핸들링은 금기다. 스티어링비가 높고 핸들의 유격이 있어야 거친 길에서 여유있게 차를 컨트롤할 수 있다.
실내공간은 흠 잡을 데 없을 만큼 여유가 있다. 뒷좌석은 무릎공간이 충분한 여유를 갖는다. 트렁크 공간도 넉넉히 짐을 실을 수 있을 만큼 여유가 넘치다. 멀리 가족여행을 가기에 딱 좋은 조건을 갖췄다.
계기판은 심플하다. 좌우에 속도계와 알피엠, 그 사이에 정보표시창이 있다. 실시간 연비, 속도, 트립미터, 타이어 공기압 등을 체크할 수 있다. 운전하는 동안 필요한 정보를 쉽게 찾아볼 수 있어 좋다. 핸들어 붙어 있는 직관적 버튼도 맘에 든다. 핸들 아래엔 딱 하나의 레버만 있다. 방향지시등과 와이퍼, 상향등, 리어 와이퍼까지 레버 하나에 깔금하게 정리했다.
시속 60~80km로 물 흐르듯 달렷다. 편안한 느낌이 절로 든다. rpm은 1000-1500 사이를 커버한다. 스트레스가 없다.
SUV가 갖는 매력중 하나는 눈 높이가 높다는 점이다. 멀리 보면서 운전할 수 있어 중독성이 있다. 이 맛을 들인 운전자는 다시 세단으로 돌아가기 어렵다. 무게중심이 높아 고속주행, 흔들림, 코너에서 불안함이 크다는 단점도 피할 수는 없다. 구조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가솔린 모델과 마찬가지로 그랜드체로키 디젤에는 5단 변속기가 적용됐다. 6, 7, 8단 변속기가 대세를 이루는 데 부족한 느낌이 없을 수 없다. 하지만 변속기가 주는 스트레스는 없다. 시속 100km에서 2,000 rpm을 보인다. 가속페달을 밟아 가속을 이어갈 때 충분한 힘을 느끼게 해준다. 지체 없는 가속감은 인상적이다. 시속 100km를 유지하면 4단에선 2,400, 3단으로 내리면 3,600rpm을 각각 마크한다.
시속 100km 전후에서 엔진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평화롭고 부드러운 순항이다. 약간의 바람소리가 들릴 뿐이다. 그마저 없다면 너무 밋밋하다.
킥다운을 걸어 급가속을 했다. 241마력의 힘이 충분하게 발휘되면서 속도를 충분히 올려간다. 짧은 구간에서 시속 150까지 쉽게 속도를 올렸다. 공차중량 2,355kg지만 무게감이 없다. 무겁지 않게 차를 끌고 간다. 150km를 넘기면 가속감이 떨어진다. 가속을 할 때의 엔진소리는 거칠지 않게 귀를 파고 든다.
핸들은 유격이 있고 타이트 하지 않다. 느슨한 느낌이다. 높이가 있어 롤링과 피칭은 어느정도 발생한다. 차의 구조상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대체로 하드한 서스펜션은 때로 물렁한 느낌을 줄 때가 있다. 큰 장애물을 타고 넘을 때가 그렇다. 작은 쇼크는 잘 흡수하면서 타고 넘는다. 오프로드에선 부드러운 서스펜션이 유리하다. 출렁이듯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는 게 오프로드에선 차와 탑승객의 피로를 줄여준다.
속도를 높였다. 고속에서 바람소리는 오히려 심하지 않다. 흔들리지 않고 안정적이다. 시속 200km을 터치하기는 쉽지 않지만 끈기 있게 가속하면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안정감있고 시원한 속도, 하지만 가속력은 속도를 높일수록 더디다.
차의 높이가 있다보니 단면적이 넓다. 주행중 차에 부닥치는 바람소리를 피할 수는 없다. 윈드실드에 부딪히는 바람소리가 엔진 소리를 덮어 버린다.
정지상태에서 급출발했다. 출발이 부드럽다. 휠스핀도 없다. ESP가 적절하게 개입하는 것이다. 급제동을 시도했다. 차의 무게가 있는 만큼 어느 정도의 거리를 필요로 한다. 비상등은 작동하지 않았다.
코너에선 두 가지 요소가 서로 상충한다. 지상고가 높다는 것은 약점이고 사륜구동 시스템은 장점이다. 코너에서 차체제어는 기대이상이다. 차체가 기우는 느낌은 많이 들지만 속도를 낮추지 않고서도 야무지게 코너를 돈다. 길이가 있다보니 뒷부분이 부담스럽긴하다. 슬라럼을 해보면 비슷한 느낌을 느낄 수 있다. 생각보다 코너가 좋다.
연비는 11.9km/L.풀타임 4WD에 로 기어까지 갖춘 풀사이즈 SUV로서는 나쁘지 않은 수준의 연비다. 판매가격은 6.590만원.수입차 시장에서 이만한 가격에 이만한 성능과 기능을 갖춘 SUV를 찾기는 쉽지 않다.
그랜드체로키 디젤은 큰 덩치 아메리칸 스타일 SUV이 특징을 갖고 있다. 힘은 충분하다. 편안하게 움직였고 오프로드에선 강한 구동력을 가졌다.
그랜드체로키 디젤은 미국 SUV의 특징을 잘 간직한 오프로더다. 무난하게 잘 움직인다. 장거리 운행에선 충분한 공간, 편안한 주행감각으로 여유있는 주행을 즐길 수 있다. 오프로드 시스템이 강력해 험한 길도 반갑겠다. 여러 가지 용도로 쓰임새가 많은 아메리칸 SUV의 정수를 잘 보여주는 차다.
가속은 경쾌했다. 수 차례 가속 테스트를 했고 대부분 8초대를 기록했다. 0-100km/h 베스트 타임은 7.82초. 제법 빠른 속도다. 가속거리는 136.89m.
제동도 빠르다. 2.3톤이 넘는 거구가 시속 100km에서 불과 43.27m만에 완전히 멈춰섰다. 제동시간은 3.3초. 우수한 제동성능이다.
오종훈의 단도직입인테리어 지붕 끝선이 떠있다.눈에 안보이는 부분이지만 좀 더 세심한 마무리가 아쉽다.뒷좌석 시트는 미끄럽다. 제동을 강하게 하면 시트에서 엉덩이가 미끌거린다. 가솔린 모델과 마찬가지로 5단 변속기인 점은 여전히 아쉬운 부분이다. 엔진의 힘을 좀 더 효율적으로 단속할 수 있는 고단 변속기였으면 더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