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쿠스가 세계 최고급 세단의 반열에 올랐다. JD파워의 2011년 상품성 평가(APEAL) 결과 내로라하는 세계적인 명차들을 제치고 에쿠스가 1위에 등극했다.

에쿠스는 BMW 7시리즈, 아우디 A8, 벤츠 S 클래스, 렉서스 LS 등 세계적인명차들이 포진한 라지 프리미엄카 세그먼트에서 당당히 1등을 차지했다. 이 세그먼트에서 1위를 차지했던 차는 그동안 BMW와 벤츠, 렉서스 밖에 없었다. 에쿠스가 4번째로 1위에 오른 차가 된 것이다. 세그먼트 구분을 없애도 가장 좋은 점수를 받아 234여개 차종 중 전체 수석도 에쿠스의 몫이었다. 명실상부한 명차의 반열에 올랐다고 평가할 만한 일이다.

에쿠스의 1등은 JD 파워의 평가결과여서 더 큰 의미가 있다. JD파워의 조사결과에 대해서 업계가 반발하는 일은 없다. JD파워의 평가 결과 상위권에 든 메이커들은 하나 같이 명예로 여기며 언론에 자랑하기 바쁘다. 소비자들의 의견을 가감 없이 있는 그대로 반영한 결과이기 때문이다.JD 파워의 조사결과 에쿠스가 1위를 했다는 것은 곧 미국의 소비자들이 에쿠스를 최고의 차로 인정했다는 의미다. 한국 자동차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사건이 아닐 수 없다.

JD 파워의 영향력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이 회사가 시장조사에 나서는 기간에 맞춰 전 세계의 주요 자동차 메이커들은 품질관리에 특별히 더 신경을 쓴다. 행여 조사결과가 나쁘면 판매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현대차도 그랬다. 2004년 JD 파워 신차 품질조사(IQS)에서 쏘나타가 중형차 부문 1위에 올랐을 때다. 신차품질 조사 대상이 되는 11, 12, 1월에 등록되는 차들의 품질 수준을 높이기 위해 여름부터 미국에 수출되는 차들을 특별관리한 것. 생산 라인을 돌아 완성된 차를 면밀히 검사해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운 부분이 생긴 차는 배에 싣지 않았다. 2005년 미국 알라바마에 공장을 지은 현대차가 쏘나타를 앞세워 미국 시장에 안착할 수 있었던 데에는 2004년 JD 파워의 호평도 한 몫을 했다는 분석이다.

소비자들의 반응도 뜨겁다. 신차구매자들이 JD 파워의 조사결과를 보고 차를 구매하는 이들이 절대적으로 많다. 조사 결과를 신뢰하기 때문이다.

JD 파워는 해마다 우편설문 조사를 실시한다. 조사 내용은 크게 네가지. 신차품질조사(IQS)와 내구품질조사(VDS), AS만족도조사(CSI), 그리고 상품성평가(APEAL) 등이다. IQS와 APEAL은 새 차를 구입한 지 3개월이 지난 고객들을 대상으로 2월부터 5월까지 설문지를 돌려 답을 구한다. AS만족도 조사와 구입 후 3년이 지난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내구품질조사는 하반기에 각각 별도로 설문조사를 진행한다.

설문조사는 100% 우편 조사다. 수십만 명의 설문 대상자들에게 우편으로 설문지를 보내고 응답자들은 수백 가지 질문에 일일이 답을 적어 봉투에 넣은 다음 JD 파워로 다시 보낸다. 설문지를 작성하는 데에는 한 시간 남짓 걸린다. 대부분의 응답자들은 많은 시간을 투자해 답해야 하는 까다롭고 긴 질문지에 불평하지 않고 자신의 평가를 꼼꼼하게 적어 낸다.

IQS와 VDS가 주로 묻는 내용은 불만이다. 새 차를 사고, 혹은 차를 3년간 타는 동안 불만이 뭐냐, 어디가 고장 났는가, 결함이 뭐냐, 만족하는가 등을 자동차의 각 부문별로 세세하게 묻는다. CSI는 서비스 분야를 집중 조사한다. APEAL은 신차구입후 3개월 전후의 고객을 대상으로 내외관 스타일, 주행 만족도, 오디오 및 내비게이션 편의성, 실내 공간 등을 평가한다. JD 파워는 이를 바탕으로 데이터 처리과정을 거쳐 결과를 발표한다. 고객들의 충실한 응답이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IQS와 VDS는 100대당 결함 숫자로 발표된다. 숫자가 높으면 결함이 그만큼 많다는 것으로 숫자가 낮을수록 품질이 좋다는 의미다. CSI와 APEAL은 1000점 만점의 만족도 점수로 점수가 높을수록 우수하다.

이처럼 충실한 응답을 바탕으로 한 JD 파워의 조사 결과는 결국 ‘소비자의 소리’다. 메이커들이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소비자들에게도 좋은 정보가 된다. 이미 차를 타본 사람들의 정보가 집대성된 결과인 만큼 차를 살 때 좋은 지침서가 되기 때문이다.

JD 파워가 처음 설립된 것도 바로 ‘소비자의 소리’ 때문이었다. JD 파워의 설립자는 제임스 데이비드 파워 3세다. 그는 하버드 이상의 명문으로 인정받는 와튼 스쿨에서 MBA를 마치고 포드에 입사해 회계업무를 담당했다. 포드를 퇴사한 이후에는 GM의 광고 대행 관련 업무를 했다. 그는 소비자들의 불만에 귀를 닫고 무시하는 자동차 메이커의 행태에 실망해 소비자들의 요구와 불만을 제대로 알아내고 이를 메이커에 전달하는 일을 시작했다. 오늘날 JD 파워의 시작이었다. 1968년의 일이다.

첫고객은 가정용 공구를 만드는 맥커리였다. 그즈음 토요타가 JD 파워에 소비자 조사를 의뢰한다. JD 파워의 첫 자동차 고객사였다. 미국 재진출을 준비 중이었던 토요타가 미국 소비자들의 ‘니즈’를 파악하기 위해 JD 파워에 연락한 것. 이 같은 치밀한 사전준비에 힘입어 토요타는 미국 시장 재진출 이후 승승장구하며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해 나간다.

JD 파워의 힘을 보여주는 유명한 사건이 있다. 73년 마쯔다와의 로터리 엔진 사건이다. 마쯔다가 판매하는 차의 로터리 엔진에 중대한 결함을 발견한 것. 설문조사를 통해 많은 응답자들이 마쯔다의 로터리 엔진이 일정거리 이상을 달리면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을 지적했고 JD 파워는 이를 발표했다. 하지만 마쯔다는 강하게 반발했다. 엔진은 문제가 없으며 JD 파워의 조사 방법과 신뢰성에 문제가 있다는 역공이었다. 하지만 JD 파워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고 결국 마쯔다는 엔진 결함을 인정했다. 많은 소비자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비슷한 결함 사례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소비자의 의견을 제대로 듣고 문제를 지적한 JD 파워의 승리였고 이는 곧 소비자의 승리였다.

JD 파워는 한국 시장과도 인연이 있었다. 1996년 한국에 ‘JD파워코리아’를 설립하고 한국에서의 사업에 나선 것. 코리아리서치와의 합작 사업이었다. 하지만 시기가 좋지 않았다. JD파워코리아가 설립한 이듬해 IMF와 기아자동자 사태가 벌어졌다. 98년엔 삼성자동차가 무너졌고, 99년엔 쌍용자동차, 2000년엔 대우자동차가 그 뒤를 이었다. 일 년에 하나씩 자동차 회사들이 부도나고 망하는 위기의 시기에 제대로 비즈니스를 펼칠 기회는 오지 않았다. 결국 JD파워는 2000년에 한국 시장에서 전격 철수를 결정했다.

국내에서 자동차 시장조사를 11년째 계속 해오고 있는 마케팅인사이트의 김진국 대표가 당시 JD파워코리아의 대표였다. 마케팅인사이트는 2001년부터 국내 최대 규모인 10만명에 달하는 응답자들을 대상으로 해마다 온라인 설문조사를 하고 있다.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초기품질, 내구품질, AS 품질 발표하는 등 한국을 대표하는 자동차시장조사 기관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JD 파워의 한국판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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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