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심에서 심야에 벌어진 스포츠카의 드리프트 영상은 충격이었다. TV 뉴스에 펼쳐지는 고발 영상을 보며 진짜 저곳이 서울 도심 한복판인지 차마 믿을 수 없었다. 소문으로만 전해 듣던 현장 화면은 리얼리티가 살아 숨쉬고 있었다. 도심 한복판에서 작정하고 드리프트를 하다니. 돈 많은 부잣집 망나니들의 철없는, 하지만 위험한 장난이다.
그들을 변호할 생각은 없다. 돈 많은 집 도련님들이야 스포츠카 한 대 더 사는 셈 치고 전관예우 받는 비싼 변호사들 찾아가면 될 터다. 하지만 개운치 않다. 그들이 보여준 행태가 딱 우리의 자동차 문화 수준이어서다. 더도 덜도 아니다. 망나니들이 심야의 도심 한복판에서 난폭한 질주를 하는 장면은 자동차를 만들어 파는데 만 급급할 뿐 자동차 문화에는 아무 관심이 없음을 보여주는 부끄러운 현주소다.
달릴 곳이 없다. 자동차 대국으로 우뚝 선 대한민국에서 자동차를 좋아하는 이들이 마음 편하게 달릴 수 있는 곳이 없다. 그들은 끼리끼리 숨어서, 혹은 비공식적으로 달리기 좋은 곳을 찾아 질주를 즐긴다. 하지만 불법이다. 자유로에서, 인천공항 고속도로에서 짜릿한 고속질주를 즐기지만 불법이다. 카메라를 피하고, 경찰을 피해 숨어가면서 질주를 즐긴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왜 그렇게 달리느냐고 묻는 건 무의미한 질문이다. 대부분의 차가 시속 200km를 너끈히 넘기는 고성능을 갖췄는데 시속 100km만으로 달리라는 것은 남녀를 한 방에 재우면서 아무 일도 없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피 끓는 남녀가 한 방에 자면서 어찌 아무 일이 없겠는가. 시속 200km로 달릴 수 있는 차를 타면서 제한속도를 지키기를 바라는 것은 애당초 무리다.
대다수 운전자들은 속도에 연연하지 않는다. 하지만 또 다른 많은 자동차 마니아들은 달리고 싶은 질주본능을 억제하며 살아간다. 그들의 요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일반 도로상에서 제한속도를 넘는 과속을 허용하자는 게 아니다. 모두의 안전을 위해서 과속은 철저하게 단속해야 한다. 또한 법은 지켜야 하고 위법은 처벌 받아야 한다. 하지만 탈출구를 열어주는 지혜도 필요하다. 제한속도에 규제받지 않고 마음껏 달릴 수 있는 제한된 공간을 열어줘야 하는 것이다. 도로에서는 최고 100km/h로 달리게 하고, 마음껏 달릴 수 있는 공간을 따로 만들어 줘야 한다. 자동차 경주장의 필요한 이유다.
그런데 없다. 자동차 5위 대국이라는 한국에 자동차 경주장이라고는 고작 두 곳, F1이 열렸던 전남 영암 코리아 인터내셔널 서킷과 태백서킷이 전부다. 수도권에서 너무 멀다. 그나마 없는 것 보다는 낫지만 큰맘 먹고 찾아가야 한다. 일반인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마땅치 않다.
그나마 서울 인근에 있는 서킷들은 시나브로 사라져버렸다. 용인 스피드웨이는 몇 년 전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님의 전용 서킷으로 변모를 한 뒤 굳게 문을 닫아 걸었고 안산 스피드웨이는 6월에 예정했던 스피드페스티벌 조차 치르지 못하는 상태다. 회장님 전용 경기장의 굳게 닫힌 문을 활짝 열어야 한다. 예전처럼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시설로 거듭 나야 한다. 안산 경기장도 좀 더 전향적으로 검토해 시설물을 제대로 이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도 저도 안 된다면 수도권에 제대로 된 모터파크를 공공시설물로 만들어야 한다. 인천 영종도에 시도했던 서킷을 제대로 만들거나, 제3의 장소에 만들어도 좋겠다. 중요한 것은 스피드를 즐기고 싶은 이들의 욕구를 적절하게 해소시켜줘야 하는 것이다. 화장실이 없으면 지저분해지는 법이다. 화장실을 갖춰서 볼 일을 보게 하고 아무대서나 볼 일 보는 이들은 혼내주는 게 합리적이다. 지금 우리는 화장실 없는 집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집에 화장실이 없다보니 아무대서나 볼 일을 보는 망나니들도 생기는 것이다.
아직 한국은 자동차에 관한 한 척박한 나라다. 좀 더 다양한 자동차 문화가 숨쉬기엔 사방이 꽉 막혀있다. 자동차를 즐기고 좋아하며 나름대로의 문화를 향유하는 이들에게 좀 더 넓은 공간을 합법적으로 열어줘야 한다. 좀 더 여유 있고 풍요로운 자동차 문화가 이제는 필요한 시점이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