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타 코롤라가 왔다. 서울모터쇼에서 한국 출시를 신고하자마자 다음날 강원도 평창으로 기자들을 불러 시승식을 가졌다.
코롤라는 토요타의 대표적인 소형차다. 자동차 역사상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차가 바로 코롤라다. 그만큼 저력 있는 차라 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그림자조차 볼 수 없었지만 한국을 뺀 전 세계를 평정한 모델이라 고해도 과언은 아니다. 평창에서 동해안까지 60여 km를 달리며 코롤라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살펴봤다.
시승은 철저한 통제 하에 진행됐다. 토요타코리아의 안전에 대한 집착은 유별나서 다소 거친 주행을 시도해야 하는 시승에서조차 최고속도 120km를 넘지 않게 했다. 따라서 그 이상의 고속주행성능은 체크할 기회를 갖지 못했음을 미리 밝힌다. 차후에 기회가 된다면 이 부분은 따로 다루기로 한다. 시승하는 코롤라는 10세대 모델이다. 66년 1세대 모델을 시작으로 45년간을 같은 이름으로 명맥을 이어왔다. 이것만으로도 역사적으로 대단히 가치가 있는 모델이다. 게다가 누적 판매대수 기준으로 가장 많이 팔린 차라는 타이틀은 결코 이 차를 무시할 수 없게 하는 든든한 백 그라운드가 된다.
무난한 모습이다. 시대를 앞서는 세련된 맛보다는 조금 보수적인 무난함이다. 10세대 모델은 이미 4-5년 전에 출시했다. 그만큼 시간이 지났고 이제 또 다시 세대교체를 준비해야할 시점이다.
부드럽다. 직선 사용이 그리 많지 않고 살짝 부풀려진 듯 한 외모가 부드러운 인상을 만든다. 라디에이터 그릴은 살짝 미소를 짓는 것 같은 부드러운 곡선으로 마무리했다. 다리미로 각을 잡아 다린 듯 한 날 선 모습은 찾을 수 없다. 부드럽고 완만한 면과 선이 차체를 구성한다. 유니크한 형상의 헤드램프와 그릴, 그리고 그 한가운데 자리한 토요타 엠블럼이 다정한 앞모습을 이룬다.
옆모습은 이렇다 할 특색을 드러내지 않고 단정하게 만들었다. 가로로 배치된 리어램프와 크롬라인이 뒷모습의 포인트를 이룬다. 길이 4,540mm로 경쟁차로 꼽히는 현대 아반떼보다 10mm가 길다. 뒷좌석은 좁지 않다. 173cm의 성인이 앉아도 앞 시트에 무릎이 닿지 않는다. 머리 위로도 여유 공간이 있다. 센터터널이 지나는 곳도 거의 솟아오르지 않아 바닥이 대체로 평평한 편이다. 차창은 좁은 편이고 숄더라인은 높다. 아늑한 느낌을 주는데 효과적인 구성이다.
도어를 닫는 느낌이 위치에 따라서 다르다. 운전석 도어를 밖에서 닫으면 가벼운 철판 소리가 난다. 같은 소리를 실내에서 들으면 부드럽게 들렸다. 전동시트가 아니다. 전동시트란 게 있으면 편리하지만 없어도 크게 불편하지 않다. 게다가 이 차는 소형차, 우리 기준으로 한다면 준중형차다. 보다 빠르게 시트를 세팅할 수 있다는 면에서는 오히려 수동을 더 선호하는 이들도 있다.
그래도 토요타는 코롤라를 수입하면서 한국시장을 의식해 인테리어를 고급스럽게 만들었다. 변속레버 손잡이에 우드를 적용했고, 밝은 컬러의 가죽시트에 6.5인치 내비게이션 모니터도 달았다. 고급스럽다는 느낌이 들 만큼 인테리어 소재도 신경 썼다. 해외에서도 이 정도 사양은 무척 고급에 속한다. 한국 소비자들의 까탈스러운 입맛에 맞추기 위해 나름 고민을 많이 한 흔적들이다. 핸들은 3.4회전을 한다. 승차감에 좀 더 무게를 둔 스티어링임을 알 수 있다. 무난하게 차를 컨트롤한다. 날카롭고 즉각적인 반응보다 조금 느리지만 안정감 있는 핸들링이다.
코롤라에는 VSC (Vehicle Stability Control, 차체자세제어장치), TRC (Traction Control, 트랙션 컨트롤), EBD (Electronic Brake force Distribution, 전자식 제동력 분배장치), ABS (Anti-lock Brake System, 잠김방지 제동장치), BA(Brake Assist, 제동보조장치)등 다양한 능동적 안전 시스템들이 기본사양으로 채택됐다. 코너를 돌거나, 브레이크를 밟을 때 차가 훨씬 안정감 있는 자세를 유지할 수 있게 돕는 장치들이다.
급가속을 해도 타이어 슬립을 느낄 수 없다. VSC, TRC 등이 적절하게 개입해 안정감을 높여주는 것. 고속도로에서 속도를 조금 높일 수 있었다. 시속 80km에서 바람소리가 들린다. 노면에서 생기는 잡소리도 실내로 유입된다. 4단 자동변속기는 게이트 방식의 레버를 적용해 원한다면 수동변속도 가능하게 만들었다.
시속 100km로 정속 주행하는 상태에서 2,500rpm을 보였다. 5, 6단 변속기를 사용하는 다른 차들은 이 속도에서 2,000rpm 정도를 보인다. 엔진 회전수가 높아지면 시끄러울 뿐 아니라 연비도 나빠진다. 4단 변속기의 한계다. 코롤라의연비는 13.5km/L.
브레이크는 소프트한 편이다. 제동을 하면 전약후강이다. 초기에는 부드럽게 반응하고 뒤로 가면 조금 더 강하게 브레이크가 작동한다. 핸들을 놓고 가속하면 한쪽으로 쏠리는 토크 스티어 현상이 나타난다. 앞바퀴굴림 차의 특성이다.무난함.
코롤라를 한 마디로 말하면 무난하다는 말이 딱 좋겠다.스타일도 성능도 그렇다. 뜨겁고 자극적이라면일부 마니아들을 만족시킬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자동차를 생활의 도구로 선택하는 대다수 소비자들에게는 튀는 스타일과 강한 성능은 관심 밖의 일이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튀지 않고 무난하며 고장 없이 오래 탈 수 있는 차다. 결국 대다수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기 위해서는 모나지 않는 무난함이 필수다. 짜고 맵고 자극적인 맛보다 조금 싱거운 듯 한 맛을 더 많은 사람들이 찾는 이유와 비슷하다.
시승을 하는 동안 도대체 어떤 매력이 이 차를 월드 베스트셀러로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그 많은 사람들은 도대체 왜 이 차를 택했을까. 토요타는 ‘토털 밸런스’를 강조했다. 전체적인 균형이 잘 잡힌 차라는 것이다. 성능, 안전, 승차감 등의 면에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이 밸런스를 잘 잡아 완성도를 높였다는 설명이다.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코롤라를 선택해 월드 베스트셀링 모델로 만들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코롤라의 어떤 매력을 보고 구매를 결정했을까. 짐작컨대 성능 때문에 이 차를 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더 좋은 성능을 가진 차들이 제법 있기 때문이다. 그 보다는 오랜 세월을 두고 많은 소비자들에게 검증받은 안정된 품질, 일본을 대표하고 세계무대에서 선두를 다투는 ‘토요타’라는 브랜드를 보고 이 차를 택하는 경우가 많지 않을까 짐작해본다. 중용의 미덕을 갖춘 것이다.
한국의 소비자들은 까다롭기 짝이 없다. 옵션과 안전에 예민하고 가격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분명한 것은 해외의 소비자들과 한국의 소비자들은 다르다는 것. 코롤라를 통해 자동차에 눈높이를 맞춘 소비자들이 해외에는 많을지 몰라도 한국에는 현대차를 통해 차에 대한 기준을 잡는 소비자들이 다수다. 한국 소비자들의 눈높이가 훨씬 높다는 것을 코롤라를 통해 알 수 있었다.
토요타는 코롤라 판매 목표를 한 해 1800대로 잡았다. 월드 베스트셀러로서는 무척 겸손한 계획이지만 그렇다고 쉽게 달성할 수 있는 목표도 아니다. 코롤라의 국내 판매가격은 2,590만원과 2,990만원 두 종류로 나온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어느 것 하나 똑 부러지게 경쟁차를 앞서는 부분이 없다. 국산 준중형차의 절대 강자로 군림하는 아반떼와 비교하면 코롤라는 절대 열세다. 엔진 배기량은 코롤라가 더 크지만 출력은 8마력이나 작다. 마력당 무게비는 코롤라가 9.6kg으로 아반떼 8.3kg보다 무겁다. 동급의 경쟁차들이 6단변속기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코롤라는 4단 자동변속기다.연비도 열세다.결국 코롤라의 비교 우위를 말하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을 내세울 수밖에 없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런 면에서 토요타가 코롤라의 강점으로 강조하는 ‘토털 밸런스’는 토요타의고육지책이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