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피니티는 멋지다. 심플하면서도 의미심장한 엠블럼이 그렇고 일필휘지로 그린 것 같은 디자인 또한 예사롭지 않다.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것은 초지일관하는 뚜렷한 방향성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다이내믹함을 포기하지 않는 근성은 인피니티의 가장 큰 특징. 멀리서 실루엣을 보기만 해도, 가속 페달을 밟아보기만 해도 알아 챌 수 있는 브랜드다. 인피니티의 모든 차종에는 남다른 그들만의 피가 흐른다. 봄이 찾아온 남쪽 섬, 제주에서 인피니티 G25를 비롯해 M37과 M56을 타고 인피니티의 뜨거운 피를 맛봤다.
G25는 인피니티가 한국 시장에 야심적으로 내놓은 신차다. G세단 라인업에 엔진 배기량을 낮춘 새 모델로 사실상 인피니티 라인업의 막내다. 엔트리급 신차를 투입해 판매를 크게 늘리겠다는 의지가 담긴 차다. G 세단을 포함해 기존 인피니티 모델들이 다분히 남성적이고 다이내믹하고 강한 힘을 추구한다면 G25는 여성들에게 한 발짝 더 다가선 모델이다. 상대적으로 중성적 매력이 돋보이는 차다. 렉서스 IS 250, BMW 328i, 아우디 A4, 벤츠 C300 등이 경쟁차로 지목된다.
차창으로 밀려드는 3월 초 제주의 바닷바람엔 이미 봄 내음이 짙게 배어 있었다. 저절로 에어컨에 손이 간다. 공교롭게도 첫 미션은 연비 테스트다. 연비를 고려해 주행할 때에는 ‘살살’ 운전하는 길 밖에 없다. 에어컨은 당근 꺼야하고 가속페달은 살살 달래듯이 밟고, 브레이크는 밟지 않는 게 좋다. 속도를 줄일 거면 멀리서부터 가속페달에서 발을 떼서 스스로 속도가 줄어들기를 기다리는 게 장땡이다. 하지만 오르막길에선 어쩔 수 없이 가속페달을 조금 더 깊게 밟아야 한다. 그래야 차가 속도를 유지하며 움직인다. 오르막과 평지를 11km 달려 얻은 연비는 약 7.1km/L 수준. 승부는 내리막이다. 같은 길을 내려왔다. 19.2km/L를 기록했다. 마음먹고 연비 운전을 한다면 충분히 연료를 아낄 수 있는 차다. G25의 공인연비는 11.0km/L.하지만 인피니티를 타고 부드럽게만 움직인다면 그 진수를 느낄 수 없다.
달릴 때 진가를 보이는 브랜드가 인피니티다. 연비 테스트를 마치고 가속페달을 깊숙하게 밟으며 달렸다. 비로소 인피니티를 탔다는 느낌이 온다. 엔트리급 모델로 인피니티의 다른 형들에 비해 중성적 매력이 돋보인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G25는 인피니티다. 제주의 봄바람처럼 한라산을 휘감아 달렸다. 최고출력 221마력, 최대토크 25.8kg.m의 힘은 공차중량 1.6톤의 몸을 여유 있게 리드한다. 앞서 말한 경쟁 모델들보다 확연히 앞서는 힘이다.
형만 한 아우 없다고 G37과 비교하면 확연히 차이가 나지만 그래도 야무지다. 호흡은 여유 있고 발걸음은 가볍다. 엔진은 프런트 미드십으로 배치돼 다른 FF 차에 비해 훨씬 안정적인 자세를 유지했다. 뒷좌석도 여유가 있고 시야도 시원하게 뚫렸다.
그 유명한 VQ 엔진을 얹었다. 14년 연속 세계 10대 엔진에 들었다는 말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사실. 하지만 리콜 경력이 전혀 없다는 부연설명을 듣고 나면 감탄사가 나올 수밖에 없다. 이 험한 세상에 14년 동안 단 한차례의 리콜도 없었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 오랜 시간을 두고 검증받고 다듬어진 잘 숙성된 엔진이다. 여기에 7단 자동변속기가 환상궁합을 이룬다.
스크레치드 쉴드 페인트는 시간이 오래 지나도 훨씬 깨끗한 도장상태를 유지한다. 뿐만 아니라 가벼운 흠집은 스스로 재생해 복원한다. 살아있는 사람의 피부와 다를 게 없다. 인피니티의 기술이 차가운 철판에 생명의 숨길을 불어넣었다.
짧은 시간에 많은 차를 타야하는 건 즐거운 일이지만 또한 고역이기도 하다. 시간 차를 두고 여러 여자를 만나다보면 이 여자 저 여자가 헛갈리는 것처럼. 잘 정리해 두지 않으면 시승을 하고 난 뒤, 차와 그 특징, 인상, 느낌들이 아리송해진다. 이 차가 그 차인지, 그 느낌을 어떤 차에서 받았는지…물론 차의 특징을 다른 차와 비교하며 뚜렷하게 알게 되는 장점도 크다.
G25와 헤어지자마자 서둘러 M37과 M56을 갈아탔다. 봉긋 솟아올라 계기판을 덮은 두 개의 라인은 차창 밖으로 보이는 제주의 오름을 닮았다. 누구는 B컵쯤 되겠다고 했다.고개가 끄덕여진다.
M56은 말할 것도 없고 M37 역시 폭발적인 가속력을 보였다. 압권이다. 발걸음을 빨랐지만 노면을 놓치는 법은 없다. 끈끈이를 발라놓은 것처럼 도로를 물고 달리며 코너와 직선도로를 거침없이 내달렸다.인피니티 M은 BMW의 5와 벤츠의 E에 대응하는 프리미엄 중형세단이다. 날카로운 헤드램프와 더블 아치형 그릴이 빚어내는 앞모습은 볼륨감 넘치는 풍만함이 지배한다. 예리한 각을 이루는 트렁크 리드, 그리고 그 양옆으로 살짝 쳐지는 라인을 적용해 날카로움과 부드러움을 잘 조화시킨 모습은 예술이다. 내공이 깊은 디자인이다.
운전하는 기분에 따라, 혹은 도로 상태에 맞춰 주행 모드를 에코, 스노, 스탠더드, 스포츠 모드로 택할 수 있다. 정신없이 운전하다보면 엇박자가 나기도 한다. 에코 모드에 놓고 미친듯이 달리고, 스포츠모드에서 조심조심 살살 움직일 때도 있다. 선택에 어려움을 겪는다면 그냥 스탠더드를 택하고 기분대로 운전하는 게 상책이다. M에는 아이들 뉴트럴 컨드롤이 있다. 차가 멈추면 D 레인지에서도 변속기가 자동으로 중립이 되는 것. 차의 힘을 브레이크로 누를 때 겪는 불쾌한 진동에서 해방될 수 있다.
M37도 나무랄 데 없지만 M56이라는 워낙 출중한 모델에 눈길이 갈 수밖에 없다. 날개만 달면 하늘로 날아오를 것 같은 폭발적인 가속감은 압권이다. 게다가 M56에는 리어 휠을 컨트롤해주는 4휠 액티브 스팅어 기능이 있어 차선변경, 고속주행 시에 스티어링 반응이 빠르고 안정적이다. 앞차와의 거리를 유지하며 정해진 속도로 달리는 인텔리전트 크루즈 컨트롤은 새삼스러운 기술은 아니다. 차간 거리가 좁아지면 속도가 느려지고 안전거리가 확보되면 정해진 속도를 스스로 회복하는 스마트한 기능이다. 인피니티는 여기에 하나를 더 보탰다. 바로 가속페달을 제어하는 것. 앞차와 거리가 가까워졌는데도 운전자가 가속페달을 밟고 있으면 차가 스스로 가속페달을 밀어내는 것이다. 처음 느껴보는 발바닥을 밀어내는 느낌이 재미있다. 시속 70km 이상에서는 차선이탈 방지장치가 작동한다. 깜빡이를 켜지 않고 차선을 바꾸면 차는 핸들이 부르르 떨리는 것이다.
점점 운전자가 할 일은 줄어들고 대신 자동차가 알아서 조치하는 부분이 늘고 있음을 절감한다. 굳이 운전면허 없어도 차가 알아서 운전하는 일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술 한 잔 마시고 차 안에서 늘어지게 자는 동안 자동차가 혼자서 움직여 집에 도착하는 일이 상상 속에서만 끝날 것 같지는 않다.
인피니티에 장착되는 보스 사운드 시스템은 차의 가치를 더욱 높여준다. G25를 비롯한 G세단의 양쪽 도어에는 무려 10인치짜리 우퍼가 내장돼 있다. M세단에서는 시트 스피커를 내장해 각 승객이 각자의 자리에서 최고의 음질을 듣게 튜닝 했다. 또한 엔진의 부밍 노이즈를 상쇄시키는 사운드를 스피커에서 발생시켜 귀의 스트레스를 줄여준다.
아직 인피니티를 경험해보지 않았다면 G25를 먼저 타는 게 좋겠다. 인피니티치곤 부드럽지만 다른 차들보다는 조금 강한, 완충지대에 자리하는 세단이다. 좀 더 강한 인피니티를 원한다면 G37이 있다. 강한 성능만으로는 뭔가 아쉽다면 M37이 있다. 강한 힘에 프리미엄급 권위와 아우라를 가진 모델이다. 슈퍼카 같은 극한적인 엑스터시를 원한다면 M56이 있다. 가속감이 황홀한 환상적인 차다. G와 M 다음엔 또 다른 세단 Q가 있지만 오늘은 G와 M까지만 이다.
제주=시승/ 사진 오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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