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얗게 서리 내린 머리 아래로 예사스럽지 않는 눈빛이 빛난다. 베일 것 같은 눈빛이다. 야구치 유키히코. 렉서스의 고성능 세단 IS F를 만든 치프 엔지니어다. 그가 한국을 찾았다. IS F 출시와 기자 시승회에 맞춰 태백 서킷으로 달려온 것. 태백에서 그와 만났다.
IS F는 그의 머리 속에서 처음 잉태됐다. 엔지니어로써 만들고 싶고 타보고 싶은 차를 구상했고, 끈질긴 뚝심으로 꿈을 현실로 빚어낸 것이다.
“유럽차를 능가하는, 강한 출력과 간결한 브레이크를 가진 차”를 만들고 싶었다. 그가 회사에 이를 제안한 것은 2002년이었다. 회사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해 말 비밀리에 IS F 개발을 시작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개발 컨셉안이 통과 된 것은 2004년이었다. 300명에 달하는 개발팀을 그가 직접 선발했다. 보통 1,000명 전후로 신차 개발 팀이 꾸려지는 것과 달리 ‘소수 정예’로 인력을 꾸렸다는 설명이다.
회사의 고위 임원들은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많은 신차들이 함께 참여하는 임원대상 시승회에서 IS F가 인기를 끄는 것을 보며 성공을 예감했다고. “운전석에서 내리는 임원들이 하나같이 웃고 있었다”고 그는 회상했다.
섀시는 토요타 테크노프레프트, 엔진은 F1에 참여하고 있던 야마하의 지원을 받았다. 미국과 유럽, 호주 등 주요 서킷을 찾아다니며 주행 테스트를 했다. 랩타임을 줄이려는 테스트가 아니라 운전자에게 즐거움을 주는 차를 개발하기 위한 테스트였다.
한 마디로 이 차를 설명한다면 “오너를 위해 개발된 차, 그래서 오너가 진짜로 좋아할 수 있는 차”라는 게 그의 말이다.
그가 특히 신경을 쓴 것은 소리다. LS에서는 조용함이 미덕이었지만 IS F 에서는 강력한 사운드가 필요했다.
“소리는 3단계로 구분했다. 엔진이 스타트를 하고 저속으로 움직이는 동안은 배기 사운드가 들린다. 3,600RPM을 지나면서 들리는 건 흡기 사운드다. 엔진이 고회전이 되면 다시 엔진 사운드가 잘 들리는 상태가 된다. 5,000~7,000 RPM 일 때가 이 구간이다.”
그는 고성능 세단에 어울리는 소리를 만들어낸 장본인이다. 놀라운 것은 정숙함으로 정평이 나있는 LS 세단의 소리를 담당한 것도 그다. 극단적인 조용함과 귀를 거칠게 자극하는 소리가 모두 그의 손끝에서 만들어졌다.
LS와 IS F의 전혀 다른 음향 특성은 그러나 같은 근본에서 출발했다. 야구치 씨는 차의 보디에 주목했다. 보디 자체가 진동 소음을 확장 시키는 스피커와 같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그는 흡음재 대신 보디 전체가 가지는 소리의 특성을 변화시키는데 주력했다. 보디 골격 그 자체를 안정화시키고 보디 패널의 흔들림을 잡아 ‘조용한 차’를 만들었다는 것.
그는 대충 대답하지 않았다. 자세하게 설명하고 이해를 도우려는 정성이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녹아 있었다. 눈빛은 살아 있었고 말에는 진심이 묻어 있었다. 엔지니어가 아니고서는 드러낼 수 없는 아우라가 그에게서 풍겼다.
■ 주요 경력
현 직책 : LS /LS 하이브리드 담당 치프 엔지니어
나고야 공과대학 기계공학 전공
1977년 토요타 자동차 입사
1980년 섀시 엔지니어링 부문 렉서스 LS400, SC300, 토요타 수프라 담당
1993년 제품 엔지니어링 본부 토요타 크라운, 렉서스 GS300 프로젝트 매니저
1997년 제 1개발센터 렉서스 LS430 프로젝트 부장
2003년 렉서스 개발센터 LS 치프 엔지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