쏘렌토는 이탈리아의 지명이다. 2002년 기아차가 만든 SUV 이름이기도 하다. 쏘렌토가 처음 나왔을 때 시장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주문적체가 수개월씩 쌓여서 차 빨리 달라고 졸라야 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그 쏘렌토가 풀체인지한 모습으로 지난 서울모터쇼에 첫선을 보였다. 늘씬하고 세련된 모습으로 탈바꿈하고 ‘쏘렌토R’이라 이름 붙였다. 쏘렌토라는 이름을 계속 이어가는 것은 잘하는 일이다. 이전 쏘렌토의 이미지가 워낙 좋기도 했거니와 기아차도 이제는 장수 브랜드를 만들어 나가야 할 때다. RV 명가를 지향하는 기아차라면 쏘렌토를 장수 브랜드로 키워갈만 할 것이다. 현대차에 쏘나타가 있듯이 기아차의 쏘렌토가 대를 이어가며 장수하는 차종으로 커나가는 게 바람직한 일이다.
1세대 쏘렌토가 출시할 때와 달리 SUV 시장은 이제 많이 변했다. 5년전의 뜨거운 열풍은 사라졌고 시장은 차갑게 식었다. 경제도 힘들어져 덩치 큰 SUV보다는 작은 차가 더 사랑받는 시대가 됐다.
2WD 프리미엄 모델을 배정받아 시승에 나섰다.
앞은 슈라이어라인 뒤는 이른바 ‘모하비룩’이다. 기아차 디자인을 관통하는 슈라이어 라인이 이 차에도 어김없이 적용됐다 라디에이터 그릴과 측면 디자인에 포인트를 주면서 슈라이어 라인이 들어가 있다. 하지만 그뿐이다. 모하비를 닮은 뒷모습에서는 슈라이어 라인이 생략됐다. 앞뒤가 따로 노는 듯 한 느낌을 피할 수 없다. 슈라이어 라인을 중심으로 변해가는 기아차의 디자인이 어느 새 식상해졌는지도 모르겠다. 그 차가 그 차 같다는. 기아차의 아이덴티티를 찾아가는 것인지, 슈라이어 라인으로 획일화되는 것인지.
길어진 모습은 도심 지향의 세련된 멋을 풍긴다. 강인함, 남성다움을 강조하는 기존 쏘렌토와 달리 부드럽고 세련된 아름다움은 여성에 더 가깝다. 시장의 변화를 충실히 따르는 디자인이다. 머플러는 범퍼 안으로 완전히 숨겨 바깥에서는 잘 안 보인다. 허리를 숙여 머리를 바닥에 대야 겨우 보인다. 깔끔한 마무리다. C필러는 블랙 컬러유리에 숨기고 강인한 D필러가 차의 기둥처럼 단단하게 보인다.
인테리어에서는 치밀함이 묻어있다. 각 부분들이 잘 레이아웃 되어 있고 틈새도 일정하다. 치밀하게 물려있어 완성도가 예전보다 훨씬 좋아졌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전혀 다른 엉성함도 보인다. 단도직입을 참조 하시라.
운전석에 앉으면 시트 사이로 차가운 바람이 나온다. 냉난방 시트가 운전석에만 적용돼 있다. 음성인식 기능도 잘 작동한다. ‘라디오’ 하고 말하면 라디오가 켜지고, 내비게이션하고 말하면 내비게이션 지도가 화면에 뜬다. 대체로 잘 알아듣고 명령에 따른다. 시키는 대로 따르는 차가 충직한 부하 같아서 믿음이 간다.
쏘렌토R은 변속레버를 잡는 손맛이 또한 일품이다. 작은 크기의 변속레버가 손 안에 쏙 들어와 잡히는 느낌이 매우 좋다. ‘王’ 자가 새겨진 배의 탱탱한 근육질 살을 만지는 느낌이다.
지붕에는 넓은 유리창과 선루프가 적용돼 하늘이 시원하게 보인다. 개방감이 커서 실내의 답답함을 잘 해소시킬 수 있다. 3열 시트는 트렁크 바닥에 숨겨졌다. 하지만 원하기만 하면 단 한 번의 동작으로 시트를 펼 수 있다. 그만큼 편하고 유용하게 만들었다.
스마트키를 몸에 지닌 채 시동버튼을 누르면 낮고 굵은 엔진소리가 울린다. 영락없는 디젤 엔진이다. 실내에서 듣는 엔진 소리는 그러나 울림이 작다. 소음과 진동이 실내의 쾌적함을 이기지 못한다.
초반가속은 무난하다. 쏜살같이 달리는 빠른 맛은 덜하지만 제법 빠르고 꾸준하게 속도를 높인다. 가속페달을 깊게 밟으면 변속이 빠르게 일어난다. 시속 120km면 4단에 이른다. 지체하지 않고 빠르게 시프트업이 일어나게 기어 간격을 좁혔다. 성능과 연비를 고려한 세팅으로 보인다. 시속 170km 까지 무리 없이 속도를 높일 수 있었다. 그 이후로도 더디지만 속도는 꾸준히 올라간다.
직진가속성능은 무난한 편이다. 무게 중심이 높은데다 앞바퀴 굴림이라 불안한 감이 없지 않으나 생각보다는 안정된 자세를 유지했다. 슬라럼 주행으로 점차 속도를 높이며 차의 반응을 살폈다. 비가 내려 조금 미끄러운 도로에서 60-70km인 상태에서 좌우 핸들링을 번갈아하며 달렸지만 차는 미끄러질 조짐도 보이지 않았다. 서스펜션과 타이어가 노면을 단단하게 물고 달리며 차체를 제대로 지탱했다.
서스펜션은 소프트한 편이다. 적당히 승차감을 즐길 수 있을 만큼 소프트해서 급차선변경이나 급회전을 할 때에는 부드러운 서스펜션의 살짝 부담이 가기도 한다. 하지만 작정하고 잡아 돌리면 차는 군말 없이 따라온다.
고속주행에서는 엔진 소리보다 바람소리가 더 큰 편이다. 차체 단면적이 큰 SUV라 어쩔 수 없이 바람소리가 커지는 것이다.
2.2 디젤엔진은 무려 200마력의 힘을 낸다. 44.5kg.m에 달하는 토크도 놀라운 수준이다. 이 힘을 바탕으로 공차중량 1800kg인 차체를 가볍게 끌고 달린다. 스포츠카 수준은 아니지만 보통의 세단 수준은 충분히 따라 잡을 정도의 조건을 갖췄다.
작지 않은 배기량에 이처럼 큰 힘을 갖추고도 연비가 14.1km/l에 달한다고 하니 귀를 의심하게 된다. 시승하느라 차를 가혹하게 타는 바람에 계기판에 나오는 평균연비는 10km를 넘기지 못했다. 메이커 발표 연비 정도만 얻을 수 있다면 엄청난 매력 포인트가 아닐 수 없다. 다행히 이 차에는 에코 드라이빙 시스템이 있다. 계기판 에코 등에 초록색 불이 들어오게만 운전하면 메이커 발표 연비보다 훨씬 더 좋게 운행할 수도 있다. 힘든 시대를 사는 운전자들의 주머니 사정을 위해서는 더 없이 좋은 장치다.
쏘렌토는 전체적으로 가볍고 경쾌해졌다. 이전 프레임 방식의 구형 모델이 강하고 조금은 거친 남성의 모습이었다면 쏘렌토R은 모노코크 보디를 사용해 가벼워졌고 도심 지향의 세련된 스타일로 여성의 모습에 가깝다. 트랜스젠더 쏘렌토R 인 셈이다.
판매가격은 2630만원부터 3610만원까지다. 만만치 않은 가격이다. 수입차와 견줄만한 수준이다. 물론 수입차와 비교할 때 옵션, 편의장치 수준은 비슷한 가격대의 수입차보다 쏘렌토R이 훨씬 높다. 과거에 비해서는 비싸졌지만 수입차에 비해서는 여전히 가격대비 품질이 장점이라 할 수 있겠다.
오종훈의 單刀直入수동변속기가 없다. 값을 더 내릴 수 있었고 연비도 더 좋게 만들 수 있었다는 얘기다. 고급화하는 것도 좋지만 좀더 실용적이고 알찬 모델을 찾는 소비자들을 위해서 수동 변속기 모델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찾는 사람이 없다고 안만들고, 없어서 못타는 ‘수동변속기의 악순환’을 이어가서는 안된다. 그 악순환의 고리는 자동차 메이커가 먼저 끊어야 한다. 그런데 기아차는 악순환의 고리가 아니라 ‘수동 변속기’를 끊어버렸다.
지붕과 윈드실드가 만나는 곳이 들떠 있는 것은 의문이다. 미국이나 일부 유럽메이커에서 이런 경우는 종종 봐 왔지만 적어도 중형급 이상의 현대기아차에서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이 부분이 말하는 것은 성의다. 지붕 끝 부분을 마무리 하는 게 대단한 기술이 필요한 게 아니다. 끝까지 세심하게 차를 제작하려는 ‘성의’의 문제다. 쏘렌토R에 그게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기아차는 되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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