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붙은 내수시장에서 기아차만 선전했다”
이 문구는 기아차가 지난해 판매 실적을 알리는 보도자료의 첫문장입니다. 온통 우울한 자동차 산업이지만 기아차를 보면 분위기가 조금 다릅니다. 밝고 희망적입니다. 물론 걱정스러운 시각이 있습니다만 적어도 지금까지는 기아차가 상대적으로 여유있습니다.

기아차는 올해 쏘렌토 후속 중형 SUV(XM), 포르테 쿠페, 준대형 세단(VG), 포르테 LPI 하이브리드를 출시한다고 합니다. 신차가 나오면 판매실적은 좋아집니다. 이른바 신차효과지요. 지난해 기아차가 잘나갈 수 있었던 것도 신차 때문이지요. 모하비, 로체, 쏘울, 포르테 등이 기아차 선전의 비결이었습니다. 강성인 현대차 노조보다 유연한 태도를 보이는 기아차 노조도 큰 몫을 했지요.

하지만 기아차가 계속 탄탄대로를 달릴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기아차가 해결해야할 문제들도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가장 가까이 있습니다. 바로 현대차이지요. 현대차를 넘어설 수 없는 것이 기아차의 숙명입니다. ‘영원한 2인자’인 것이지요. 경차 모닝을 제외하면 기아차의 모든 차종은 현대차와 완벽하게 겹칩니다. 그중 현대차보다 잘 팔리는 차는 없습니다. 일부 차종이 일시적으로 더 팔리는 일이 가끔 벌어집니다만 지속적으로 현대차를 누르는 기아차의 모델은 없습니다. 기아차의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작은 집이 편해야 큰 집도 편하다”는 게 큰 집 현대차 사람들의 얘기입니다. 같은 집안으로 기아차를 배려하고 밀어주는 한편으로는 ‘작은집’으로 분명히 선을 긋고 있습니다. 작은 집이 큰집을 이기려고 한다면 큰집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것입니다. 현대차를 넘어서지 않는 적당한 선에서 머물러야 하는 게 기아차의 숙명인 것입니다.

현대차와의 문제는 브랜드 이미지와도 직결됩니다. 현대차의 ‘세컨드 브랜드’라는 것이지요. 이런 이미지로는 온전히 독립된 브랜드로 인정받기 힘듭니다. 폭스바겐과 아우디, 포르쉐의 관계가 현대기아차에게는 좋은 본보기가 될 것입니다. 어느 한 브랜드가 다른 브랜드의 세컨드 브랜드가 아닌 온전히 독립된 이미지를 구축하는 것. 바로 기아차의 숙제입니다. 작전중 사망, 즉 전사를 의미하는 KIA(killed in action)라는 이름도 태생적으로 부정적인 이미지를 만드는 요인입니다.

‘디자인’도 있습니다. 문제라기 보다는 큰 변수입니다. 기아차는 ‘디자인 경영’을 외치며 디자인으로 승부를 걸겠다는 의지도 거듭 밝힌바 있습니다. 디자인이 부가가치를 높인다는 데 이의를 다는 사람은 없습니다. 문제는 모든 디자인이 다 부가가치를 높이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기아차의 디자인이 과연 부가가치를 높여주느냐를 냉정하게 평가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기아차 디자인의 키는 피터 슈라이어 부사장이 쥐고 있지요. 슈라이어 라인으로 대표되는 기아차의 디자인이 과연 브랜드 가치 상승을 이끄는 견인차가 될 것인가는 좀 더 두고 봐야 합니다. 오피러스 후속 VG를 주목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슈라이어가 개발단계서부터 관여한 차로 비로소 디자인 책임을 그에게 물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계의 유명 브랜드를 거친 피터 슈라이어가 기아차에서 더 성숙한 역량을 보일지, 아니면 그 반대일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할 것입니다.

기아차의 리더십도 짚어봐야 합니다. “나를 따르라! 내가 책임진다.”는 리더십은 기대하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왜냐하면현대기아차 그룹의 정몽구 회장과 그 아들 정의선 기아차 사장은임직원들의 충성을 누릴 수는 있지만 ‘책임’지는 경영자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군림’하는 경영자는 바로 기아차의 가장 큰 문제중 하나임이 분명합니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