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쓰비시의 랜서 에볼루션. 일본에서는 란에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모델이다. 랜서 에볼루션을 일본식으로 줄이면 란에보가 된다. 미쓰비시는 물론 일본을 대표하는 스포츠 세단이라는 랜서 에볼루션을 탔다. 미쓰비시는 지금 토요타 닛산 혼다에 이어 4위 업체지만 컬러가 분명한 메이커다. 스포츠카와 SUV가 강한 브랜드다. 파제로를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과거 현대 갤로퍼의 오리지널 모델로 죽음의 랠리로 불리는 파리다카르 랠리 등 다양한 랠리에서 명성을 쌓아온 모델이다. SUV에 파제로가 있다면 스포츠 세단에는 란에보가 있다. 일본 주요 서킷의 베스트 랩타임은 대부분 랜서 에볼루션이 기록했다고 한다. 그만큼 빠르게 잘 달리는 차다. ‘공도의 제왕’이라는 별명만 봐도 이 차의 면모를 짐작해볼 수 있겠다. 잘 달리는 정도가 아니라 끝내주게 달리는 차, 미쓰비시 랜서 에볼루션이 오늘의 주인공이다.전자장비로 중무장한 10세대 란에보
랜서 에볼루션은 1992년 출시됐다. 이후 WRC에서 우승을 하는 등 진화를 거듭해 왔다. 지금 만나는 란에보는 10세대 모델이다. 일본에서는 스바루 임프레자와 쌍벽을 이루는 스포츠 세단이다. 각종 랠리와 모터스포츠 경기를 통해 쌓은 미쓰비시의 기술이 집약된 모델이기도 하다. 자동차와 모터스포츠에 대한 미쓰비시의 순정이 녹아 있는 차다. 랜서 에볼루션의 엔진 배기량은 2,000cc. 그 엔진에서 295마력의 가공할 힘이 나온다. 엄청난 효율이다. 란에보는 전자장비와 고성능 튜닝 장비로 중무장했다. 고출력을 발휘하는 MIVEC 터보엔진과 TC-SST, S-AWC 등이 탑재됐다. 여기에 더해 빌스테인 쇼크업소버, 아이바크 스프링, 브렘보 브레이크, BBS 알루미늄휠, 레카로 시트, 락포드 포스케이트 오디오 등 최고의 튜닝 제품들이 더해졌다. 첨단 기술과 튜닝 용품들로 완전무장한 것.
디자인이 매우 화려하다. 과장됐다고 해야 할까. 보는 사람을 흥분시키는 묘한 매력이 있다. 공격적인 프런트 마스크, 날개를 쫙 편 것 같은 리어 스포일러는 마치 하늘을 날 것 같은 느낌을 전한다. 실제로는 그 반대다. 하늘로 떠오르려는 차를 내려 누르는 게 리어 스포일러다. 치켜뜬 눈 같은 헤드램프가 참 똑똑해 보인다.
실내로 들어가면 레카로 시트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레이싱 시트다. 머리, 어깨, 옆구리, 허벅지까지 드라이버의 몸을 빈틈없이 감싸는 시트다. 시트는 의외로 중요한 부분이다. 질주하는 차 안에서 운전자의 몸이 어느 정도 잘 고정됐느냐에 따라 차의 성능이 달라질 수 있다. 운전자가 흔들리면 차도 흔들리고 한계가 일찍 오게 마련이다. 운전자가 제대로 고정되면 차의 성능 이상을 기대할 수도 있게 된다. 레카로 시트가 몸을 제대로 잡아주는 느낌이 좋다. 불편하지 않다.
센터페시아는 단순하게 만들었다. 오디오와 공조 스위치 정도가 위치해 있다. 조작하기 간단하고 편해서 마음에 든다. 데시보드에 요즘 유행하는 하이그로시 패널을 덧댔다.
코너에서 특히 강한 도로의 제왕
TC SST는 트윈 클러치다. 두 개의 클러치를 가졌다. 2,4,6단과 1,3,5단 각각 다른 클러치를 이용해 변속한다. 변속 타이밍이 수동보다 빠르다고 할 만큼 효율적인 변속기다. 빠른 변속은 힘 있는 주행을 가능하게 해줄 뿐 아니라 동력 손실을 줄여 연비를 좋게 하는 데에도 큰 역할을 한다. 스티어링휠 아래에 달린 마그네슘 재질의 패들쉬프트도 운전하는 재미를 느끼게 해준다. 마치 게임을 하듯 운전을 즐길 수 있다. 이왕이면 핸들에 붙어 있으면 좋겠다.
랜서 에볼루션은 미쓰비시자동차의 드라이빙 즐거움의 핵심기술인 S-AWC를 탑재하고 있다. S-AWC(Super All Wheel Control)는 ACD, AYC, ASC, S-ABS 등을 통해 네바퀴를 완벽히 제어한다. 달려보면 뭔가 다른 느낌을 받게 된다. 특히 코너에서 그랬다.
TC SSC는 노멀과 스포츠, 수퍼 스포츠 모드로 나뉜다. 노멀 모드는 조금 부드러운 편이다. 6000rpm에서 변속이 일어나고 차체의 반응도 조금 늦다. 약간 루즈하다고 할까. 조금 헐거운, 그래서 여유 있는 맛을 낸다.
스포츠 모드는 노멀과 수퍼 스포츠모드의 중간이다. 변속시기가 6500rpm으로 조금 늦어지고 차체의 반응은 조금 빨라진다.
그 차이는 슈퍼 스포츠 모드에서 확실하게 드러난다. 이 모드에서는 변속시점이 7000rpm으로 늦춰진다. 레드존에 진입하면서 변속이 일어나는 것이다. 엔진출력을 최대한 활용하는 모습이다. 차체 반응도 매우 예민해진다. 가속페달을 살짝 터지만해도 즉각 반응한다. 거칠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사소한 조작도 놓지지 않고 반응한다.
D모드에서 가속하면 2000-3000 rpm 사이에서 빠르게 변속된다. 비교적 낮은 속도에서 빠르게 시프트 업이 일어나는 것. 시속 20, 40, 60, 80, 90km에서 변속된다. 불과 90km에서 6단이 물린다. 늘 그런 것은 아니다, 가속페달을 좀 더 깊게 밟으면 변속이 늦어지기도 한다.
수동모드로 옮기면 레드존에 들어가서도 변속을 거부하고 기존 단수를 유지한다. 레드존에서 퓨얼 컷이 일어나며 거칠게 흔들리는 느낌이 좋다. 드라이버와 도로를 압도하는 란에보
엔진소리는 시종일관 귀를 자극한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이 차가 조용하리라고 기대하면 안 된다. 엔진 소리 자체가 또 다른 즐거움이다. 엔진 소리는 귀와 함께 심장도 자극한다. 하이톤으로 두둥 거리는 엔진 소리를 듣다보면 달려야 할 것 같은 의무감에 절로 가속페달을 깊게 밟게 된다.직선로에서 터보가 터지는 느낌을 온몸으로 느끼며 가속하는 기분은 일반 세단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대로 달려나가면 하늘로 떠오를 것 같은 기분은 느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코너에서는 더욱 압권이다. 마치 중앙 중심점에 축을 꽂아두고 돌아나가는 것처럼 흔들림 없이 코너를 돌아나간다. 시속 100km, 그이상의 속도로 코너를 공략해도 마찬가지다. 흔들림도 거침도 없다. 직선로에서 탄력을 붙이고 코너에 진입하기 전, 잠깐 속도를 줄인 뒤 본격적으로 코너를 타기 시작할 때, 그 순간 전해지는 느낌은 뭔가 달랐다. 사륜구동이 제대로 작동하고 각 바퀴의 회전차이가 확실하게 컨트롤되고 있다는 느낌이 온다. 언덕을 내려가는 다운힐에서 코너링을 하는 것은 가장 어려운 일이다. 무게 중심이 앞으로 쏠리며 차가 스핀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란에보는 다운힐 코너링을 자신 있게 해낸다. 원심력을 차체가 이겨낸다. 드라이버의 불안한 심리가 문제지 라네보는 드라이버 기대 이상으로 코너에 강한 면모를 보인다. 몇 차례 코너를 공략하면서 왜 일본에서 라네보가 큰 인기를 얻었는지, 그 명성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있었다.
오종훈의 單刀直入연비와 가격은 아쉽다. 연비가 8.1km/l라고는 하지만 이는 착하게 달릴 때 연비다. 이 차를 타고 2000rpm으로 얌전하게만 달리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 일. 하지만 제대로 기분내며 달리다보면 운전석에서 보면 연료게이지가 뚝뚝 떨어지는 게 눈에 보인다. 55리터 가득 채우고 스포츠 주행으로 230km를 달리니 연료가 바닥이 났다. 좀 과한 식욕이다. 판매가격도 비싸다. 6,200만원. 아무리 마니아들의 선망의 대상이라고는 하지만 가격을 너무 높게 잡았다. 경제성과는 거리가 먼 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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