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쾌했다. 거침없는 질주는 한계를 거부했다. 무한질주다. 왜 인피니티인지 FX50은 실체적으로 말하고 있었다. FX 50. 인피니티가 새롭게 선보인 기대주다. FX45를 풀 체인지한 모델로 숫자의 변화가 말해주듯 배기량을 키워 더 강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인피니티를 타면 그 차가 어떤 차든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호쾌한 드라이브는 인피니티의 가장 큰 특징이다. 여성을 매우 의식한 EX에서도 이런 특성은 예외가 아니었다. 바로 인피니티만의 DNA다.
학창시절 큰 덩치에 조금은 불량스럽던 친구의 모습이 생각났다. 짝다리 짚고 골목길에 기대서서 ‘뭘봐?’ 하며 찡그린 얼굴을 들이대던. 잘못 대답했다간 한 대 날아들 것 같은.누구는 ‘광어’를 닮았다고 했다. 넓적하게 옆으로 퍼진데다 길게 째져서 사선으로 치켜오른 눈이 얼굴 모서리에 바짝 붙어있는 모습이 그렇게 보이기도 한다. 인피니티가 풀체인지한 새 모델 FX를 보면서 하는 말이다. 심약한 이라면 그 앞에서 눈을 똑바로 뜨기 힘들 듯 하다. 강했다. 보는 이를 압도하는 카리스마가 있다.
평범을 거부하는스타일 일반적으로 자동차의 디자인은 앞으로 쏠리고 뒤가 들리게 보이는 웻지 스타일이다. 옆에서 보면 그렇다. 역동적으로 보이려는 의도다. 인피니티는 조금 다르다. 뒤로 주저앉은 모습이다. 마치 개구리 처럼. 언듯 포르쉐의 루프라인 겹쳐진다. EX도 그랬다. 신형 FX에서는 루프라인과 차창의 선을 과장해 뒤로 가라앉은 느낌을 조금 더 강하게 줬다. 그렇다고 역동성이 떨어지게 보일까. 천만의 말씀이다. 움추린 개구리를 보면서 다음 동작을 기대하는 것처럼 ‘숨겨진 역동성’을 본다.
눈을 돌려 안을 보자. 짙은 갈색 가죽이 눈에 들어온다. 광택이 반짝이는 나무들은 니스칠이 잘된 거실 소파를 떠오르게 한다. 가죽과 나무. 고급감을 살리는 소재들이다. 하지만 고급감과는 별개로 인테리어의 컬러는 일관성이 없다. 금속재질과 나무, 가죽 들이 나름대로의 질감과 고급감은 있으나 제각각이다. 전체를 하나로 아우르는 일관된 맛은 떨어진다.
EX에서 첫선을 보여 감탄을 자아냈던 어라운드 뷰 모니터는 이 차에도 적용됐다. 주차하는데 더 없이 편하다. 이 장치를 달고도 주차하다가 어딘가에 부딪힌다면 운전하는 것을 심각하게 재고해볼 것을 권한다.
원래의 FX는 단단한 성벽같은 느낌이었다. 운전석에 앉으면 마치 벙커 안에 들어앉은 듯한 아늑함, 보호받는 다는 느낌이 드는 대신 시야가 확 트였다는 느낌은 덜했다. 새 FX는 둘러쌓였다는 느낌이 줄었다. 벙커의 창이 조금 넓어진 느낌이랄까. 하지만 여전히 운전석에 앉으면 옆 창이 이루는 숄더 라인이 높다.
V8 엔진은 그 자체로 듬직하다. 굳이 제원을 살피지 않아도 만만치 않은 파워, 성능을 가졌을 터. 도로 위에서 FX는 물 만난 고기처럼 자유로웠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원하는 힘을 원하는 순간에 발휘했다. 도로 흐름에 맞춰 유유자적 하다가도 멀리 있는 차를 눈 깜짝할 사이에 따라 잡는다.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혹은 대양을 헤엄치는 만타 가오리처럼 빠르고 힘이 넘친다. 390마력, 51.0kg.m의 토크는 여유롭다. 언제든 그 힘을 토해낼 수 있어 오히려 얌전하다. 가볍고 경박하게 아무 때나 내달리는 건 이 차에 어울리지 않는다. 진짜 힘 센 사람은 아무데서나 힘자랑을 하지 않는다. 이전 모델인 FX45에 비해 배기량은 키웠지만 연비는 좋아졌다. 효율을 높였기 때문이다. 흡기와 배기 모두 듀얼 방식을 적용했다. 알루미늄 후드, 플라스틱 백도어, 알루미늄 도어 등을 적용해 무게도 꽤 줄였다. 도어 4짝의 무게만 비교해도 경쟁차종 대비 무려 40kg 가까이 가볍다는 게 인피니티의 설명이다. 공차중량 2110kg, 최대출력 390마력, 최대토크 51.0kg.m다. 마력당 무게비 5.4kg, 토크당 무게비 41.4kg이다. 스포츠카 수준의 효율이다. 제로백 5.7초면 스포츠 세단과 경쟁할 정도다.
7단 변속기의 힘과 부드러움7단 수동겸용 자동변속기는 1단 기어비 4.886에서 나오는 굵직한 토크와 7단 0.774의 가볍고 거침없는 힘을 두루 전해준다. 5단 기어비가 일대일, 6, 7단은 오버드라이브다. D에서 시속 100km 정속주행 상태에서 rpm게이지는 2,000을 가르켰다. 시속 200km에서는 4,800rpm이다. 7단 변속기여서 속도에 비해 rpm이 낮은 편이다.
수동겸용인데다 핸들에도 변속레버가 장착돼 있어 손맛을 기대해도 좋겠다. D 드라이브에서 가볍게 가속페달을 밟으면 변속감을 체감하기 쉽지 않다. 다만 치고 오르던 rpm 게이지가 뚝 떨어질 때 변속을 짐작할 뿐이다. 수동변속은 반응이 특이하다. 수동 모드에서 레드존까지 끌어올린 뒤 시프트 업을 하면 변속이 일어난 뒤 잠깐 멈칫거리며 쿨렁거리는 느낌이 온다. 개운치 않은 뒷맛이다. 수동모드에서 절대 자동변속은 일어나지 않는다.
6,900rpm부터 시작되는 레드존에 이르면 차는 가속페달에 대한 반응을 멈춘다. 운전자의 손길을 기다리는 것이다. 시프트 업을 해달라는 표시. 하지만 알아서 변속하는 무례는 범하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운전자의 판단과 손길을 기다릴 뿐 알아서 움직이는 건방을 떠는 일은 없다. 겸손하다. 주행 중 시프트다운을 하면 속도가 허용하는 한 확실한 엔진 감속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속도가 맞지 않으면 속도가 줄때까지 다운 시프트는 일어나지 않는다. 킥다운 직전에 페달이 한 차례 걸렸다가 넘어가는 느낌은 없다. 그냥 페달이 바닥에 닿으면 킥다운이다.
수동모드에서 킥다운을 걸어 끝까지 몰아부쳤다. 1단에서 시속 60km, 2단에서 90km까지 속도를 올린다. 3단 140km/h, 4단 200km/h가 한계다. 5, 6, 7단에서의 한계속도는 의미가 없다. D모드에서 자연스럽게 속도를 올리면 시속 50km, 80km, 140km, 195km이 변속 시점이 된다. 부드럽지만 확실한 변속이다.
체감속도는 낮다. 빠르다 싶으면 200km를 넘보는 속도다. 그만큼 고속 주행안정성이 좋다는 뜻이다. 트레드, 휠 베이스 등이 이전 FX보다 길어져서 훨씬 안정감있는 체격이 된 덕이다. 힘이 커진만큼 체형도 단단해진 것이다. 앞트레드가 45mm, 너비는 5mm 넓어졌고 뒷트레드는 전과 같다. 전체 차 길이는 45mm, 휠베이스는 35mm, 앞 트레드가 10mm 길어졌다.
마음먹고 밟으면 4단에서 시속 200km에 이른다. 남아있는 5, 6, 7단을 위해서는 적당할 때 시프트업을 해야 한다. 그래야 7단까지 고르게 쓸 수 있다.
핸들은 조금 작다. 민감한 조향성능을 예고하는 부분이다. 패들시프트는 여전히 핸들 고정식이 아니다. 핸들을 돌리며 패들시프트를 이용해 변속하기 쉽지 않다.
차가 조용하지는 않다. 차 바닥으로 바깥 소음이 파고 들고, A 필러를 중심으로 차와 부딪히는 바람소리도 들린다. 차의 단면적이 넓은 SUV여서 바람소리를 피할 수는 없다. 적당하게 귀를 간질이는 엔진소리가 다른 소리들을 덮어줘서 좋다. 소리가 주는 다이내믹한 맛은 있지만 고급 승용차의 럭셔리한 조용함은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소리를 즐길 수 있다면 더 없이 맞는 궁합이다.
마술같은기술, 스크레치 쉴드 페인트이 차에는 스크레치드 쉴드 페인트 기술이 적용됐다. FX를 발표할 때 처음 적용된 기술이지만 한국에서는 새 FX를 통해 처음 소개되는 기술이다. 차의 표면 도장에 흠집이 났을 때 별도로 조치를 취하지 않아도 스스로 복원한다는 기술이다. 긁힌 상처를 자연치유하는 사람의 피부같다. 차체 표면 도장이 점성을 유지하고 있다가 표면에 흠집이 나면 그 부분의 페인트가 흘러내려 이전 상태로 복원한다는 것이다. 온도와 습도 등 대기 상태에 따라 복원시간은 달라진다. 마술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놀라운 기술이다. 마술은 눈속임이지만 스크레치드 쉴드 페인트는 눈 속임이 아닌 실제 기술이어서 마술보다 더 놀랍다. 물론 한계는 있다. 도장 표면이 아니라 깊숙하게 패인 흠집은 복원이 안된다. 시승하는 동안 사포로 차 표면을 문질러 보고 싶은 욕망을 참느라 힘들었다.
FX50 판매가격은 8,750만원. FX35는 6,900만원이다. BMW, 벤츠 등 유럽산 프리미엄 SUV들과 비교하면 매우 매력적인 제안이 아닐 수 없다.
오종훈의 單刀直入연비는 아쉽다. 7.2km/l로 8월부터 적용되는 새 기준에 따르면 5등급이다. 차의 성능을 만끽하며 마음껏 페달을 밟으면 리터당 5km를 달리기가 버겁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1km당 324g이다. 하나 더 당부하고 싶다. 앞서 언급했지만 소리다. 바닥을 통해 차 안으로 파고드는 바람소리와 노면 소음은 조금 더 줄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대책을 마련하다보면 무게가 늘고 연비가 나빠지는 어려움을 함께 해결해야하는 난제겠지만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 ‘옥의 티’ 여서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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