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쉐를 타고 아우토반을 시속 300km로 달렸다. 짜릿했다. 심장의 두근거림은 온몸을 기분좋은 흥분상태로 몰아넣고 핸들을 잡은 손의 긴장감은 팽팽했지만 그렇다고 겁 먹을 정도는 아니었다. 독일 기계 기술의 정수라는 평을 받는 포르쉐. 그중에서도 911 터보 카브리올레를 타고 아우토반을 한 시간 가까이 누볐다. 지난해 6월, 독일에서의 일이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얘기하지만 사실 차라면 죽고 못사는 이들에게 이런 얘기를 하면 ‘염장지르는 말’이거나 잘난 척하는 말이 되고 만다.
무대를 옮겨 한국으로 와보자. 사실 한국으로 옮길 것도 없다. 아우토반이 없는 독일 바깥이면 된다. 첨단 기술을 적용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달릴 수 있는 자동차를 만들어내지만 정작, 자동차가 가장 빨리 달릴 수 있는 속도는 고작 시속 110km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판중인 대부분의 자동차는 최고속도 200km를 넘기는 게 현실이다. 어떤 스포츠카는 시속 350km를 넘긴다하고, 심지어 비행기와 겨루는 자동차까지 나온다. 날개만 달면 하늘을 날 정도로 빠르다는 말이다. 이정도면 날개없는 비행기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어지간한 중형 세단도 시속 200km는 우습다. 경쟁사보다 단 1마력이라도 강하고, 1km라도 더 빠르게 새 차를 만들려고하는 엔지니어들의 노력은 눈물겹다. 엄청난 돈이 쏟아부어지는 것은 물론이다. 자존심 싸움이자, 단순 명쾌하게 숫자로 보여지는 성능의 우월함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낫다고 얘기하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한국에서 가장 빠르게 달릴 수 있는 길은 시속 110km다. 그것도 일부 고속도로에서만 허용되는 속도다. 대부분의 국도에서는 80km/h가 최고다.
물론 자유로에서, 신공항하이웨이에서, 일부 고속도로에서, 혹은 몰래 몰래 자신만 아는 도로에서 시속 200km를 넘겼네, 250km를 찍었네 말들은 하지만 따지고 보면 모두 불법이다. 카메라에 찍히면 여지 없이 벌금을 내고 벌점을 받아야 한다. 우리가 지켜야 하는 법은 시속 110km 이상을 허용하지 않는다.
시속 100km가 느린 것은 아니다. 1초에 28m를 달려야 하는 나름대로 빠른 속도다. 하지만 아편처럼 빠른 속도에 중독된 이들에게 시속 100km는 거북이 걸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생각해보면 얼마나 바보같은 짓인가. 엄청난 돈을 들여 조금이라도 빨리 달릴 수 있는 기술을 만들어내고, 그 기술을 양산차에 적용하고, 그 차를 비싼 돈을 주고 사지만 정작 도로 위에서 그 기술은 사실 무용지물이다. 시속 100km로 달리는 것은 그리 고급 기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70년대 정도의 기술 수준으로도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속도다.
이런 생각을 해본다. 최고속도를 100km 이상 낼 수 없게 법이 강제하면, 즉 100km/h 이상 달릴 수 없게 차를 만들면 어떨까. 마티즈도 그랜저도, 새로 나온다는 제네시스도 W카도, 벤츠도 BMW도 최고속도는 100km 이상 낼 수 없게 차를 만들어야 한다면. 따지고 보면 그게 맞는 얘기 아닐까. 법이 정했으니, 법대로 달릴 수 있는 차를 만들어야지, 그보다 더 빠른, 그것도 두배 이상 빠른 속도로 달릴 수 있는 차를 만드는 것은 위법 탈법을 조장하는 일이 아닐까.
최고속도를 더 빠르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할 생각은 없다. 교통사고 위험을 생각하면 그렇다. 교통사고로 죽어가는 단 한 사람의 목숨이라도 건지려면 최고속도를 줄이면 줄였지 더 빠르게 허용해선 안돼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의 현실이 이처럼 모순 덩어리임을 말하고 싶을 따름이다. 엄청나게 예쁜 미녀와 한 방에서 자면서 아무 일도 없어야 한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엄청나게 예쁜 미녀가 아니어도 아무 일 없이 하룻밤을 보내야 한다는 건 사실 괴로운 일이다.
최첨단 기술로 세례하고 쭉쭉빵빵하게 차를 만들어 놓고, 밟으면 쏜살같이 달릴 수 있게 해 놓고, 길도 잘 닦아 놓고, 시속 100km를 지키라는 건 잔인한 일이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