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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 녹화를 마치고 스튜디오를 나서는 그녀의 얼굴엔 살짝 피곤함이 묻어 있다. 저녁 8시를 바라보는 시간. 퇴근 직전의그녀와 마주 앉았다.


배수경. 카TV의 아나운서다. 국내 유일의 자동차 전문 TV인’카TV’에서 뉴스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물론 모든 게 자동차 관련 소식이다. “여자라서 힘들텐데” 걱정 아닌 걱정에 이어지는 그녀의 답은 경쾌했다.”처음엔 그랬죠. 하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1년 전, 그녀가 카 TV에 입사했을 땐 자동차에는 문외한이었다. 귀에 익은 국산차 이름이나 겨우 알 정도였다. 람보르기니가 뭔지도 모른 채 카 TV의 아나운서 일을 시작했다.그때 그랬다는 이야기를 하는 그녀의 얼굴에 편안한 웃음이 번진다. 지금은 안그렇다는 자신감이 베어있는 미소다.
지금 그녀는 웬만한 마니아 뺨칠 정도의 해박한 자동차 지식을 자랑한다. 뿐만 아니다. 신차 정보, 자동차 업계의 세세한 소식을 줄줄이 꿰고 있다. 연기자이자 레이싱팀 감독인 이세창씨와 함께 시승 프로그램인 ‘프라임 오토클럽’도 진행하고 있다. 문외한이 탈바꿈한 것이다.불과 일년 만에.



그녀는 고향이 부산이다.신문방송학과를 전공하고 방송아카데미를 거쳐 KBS ‘세상의 아침’ 리포터로 방송계에 입문했다. 2002년의 일이다. 제주 KBS, 창원 KBS를 거치면서 기상캐스터로, 6시 내고향 리포터로 정신없이 달렸다. 그녀의 동생도 언니 뒤를 따라 MBC 기상캐스터로 근무중이다. “자매 방송인으로 나름대로 유명하다”며 웃는다.웃는 모습이 곱다.



카TV와 연을 맺은 건 2007년 2월. 이제1년이 지났고 그녀는 달라졌다. 전문가의 길에 들어선 것이다.저널리스트가스페셜리스트로 탈바꿈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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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파에서는 매일 매일 주제가 달라 방송이 늘 재미있었지만 카TV에서는 오로지 자동차를 붙들고 승부를 걸어야 했다. 차를 모르면 재미가 없어 작심하고 공부를 했다. 자동차 전문 잡지를 구독하며 공부하는 자세로 잡지를 읽었다. 카TV 화면 아래에 늘 노출되는 스크롤 뉴스로 직접 선정하고 기사를 일일이 읽어보며 감각을 키웠다. 쉽지는 않았지만 하다보니 점점 재미가 늘었다. 이제는 자동차 이야기만으로 밤을 샐 수도 있을 만큼 재미를 붙였다.



그녀는 현장 취재도 마다지 않는다. 신차 발표등 주요 행사가 있을 땐 마이크를 들고 직접 현장에서 카메라 앞에 나선다. 차를 소개하고 관련 인물들을 인터뷰를 하는 게 그녀의 임무. 카메라를 마주 할 때마다 두려움이 밀려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직업병이다. 하지만 그녀는 담담하다. 카메라를 볼 때마다 가족들, 좋은 사람을 생각한다. 그런 좋은 사람들을 마주한다는 기분으로 카메라를 보면 그나마 편해진다. “무섭지 않아, 편하게 진행하자” 스스로 주문도 걸어본다.



만만치 않은 미모에 똑 부러지는 발음과 진행 솜씨. 팬이 없을 리 없다. 유난히 기억에 남는 팬이 있다. 팬을 자처하며 장문의 연서를 보냈던 사람이다. 그 과정이 재미있다. 방송에는 그녀의 연락처가 안나간다. 왕 팬은 방송을 보고 연락할 방법이 없어 애를 태우다가 배 아나운서의 미니홈피를 발견했고 동생이 MBC 기상캐스터인 것을 알고 동생에게 메일을 보낸다. 언니에게 전해달라며 장문의 편지를 띄운 것. 구구절절 사연을 적은 뒤 만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고. 얘기를 소개하며 그녀는 또 웃었다. 계면쩍었던 것일까. 물론 만나지 않았고 마음만 고맙게 받았다고.



“점점 차가 좋아져요. 신차 발표회를 취재 갈 때엔 무척 설레고 떨려요” 말하는 그녀는 실제로 그런 감정이 드나보다. 떨림이 눈에 담긴다. 어떤 차일까, 실제로 보면 어떤 모습일까, 기대하며 새 차를 맞는다고. 회사 관계자도 아니면서 공개하는 순간에는 감동하고 가슴이 뿌듯해짐을 느낀다. 애정이 생긴 것이다.



‘사랑하면 알게되고 알면 보이고, 그때 보이는 건 예전과 다르다’고 했다. 그녀가 그렇다. 차를 제대로 이해하고 알게 되면서 전에 없던 애정이 생기는 것을 느낀다. 남자들하고도 얘기가 잘 통하는 건 자동차라는 소재가 있어서다.
힘든 게 뭐냐는 질문을 던졌다. 해결해줄 능력이 없는 사람이 이런 질문을하는 건 참 뻔뻔한일이다.


“왕복 90km에 달하는 출퇴근 길이 힘들어요. 하지만운전을 즐기기로 했어요” SM3를 몰고 운전하는 맛에 빠지기로 했다는 것이다. 제법 운전을 즐기게되면서 적당히 속도를 낼 때도 있어 과속 딱지를 받은 적도 있다.

인터뷰를 마친 다음날 그녀는 문자를 보내왔다. “힘들었던 적? 시승기 찍을 때인데 답을 못했네요. 운전하면서 멘트하는 게 쉽지 않거든요” 카메라는 돌아가고, 차들은 양옆으로 함께 달리는데 앞을 보고, 옆도 보며 카메라도 함께 신경쓰면서 차에 대한 정보와 느낌을 입으로 풀어내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말을 놓친게 걸렸나보다. 꼼꼼한, 그리고 확실한 성격. 똑소리나게 일을 하는 바탕에는 이런 근성이 자리한 게 아닐까.


무엇이 되고 싶은지를 마지막 질문으로 던졌다. “전문가가 되고 싶어요” 여성이 차에 약한 것은 사실이지만 조금만 더 열정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하면 자동차 전문가로 우뚝 설 수 있을 것이란 말이 이어졌다.공자 말씀같은의례적인 모범답안이지만 그 안에는 그녀의 당찬 욕심도 담겨 있다.

이십대의 문턱을 막 넘어선 그녀의 나이 이제 30살. 30대의 어느 날, 진짜 전문가로 변신한 그녀를 다시 만나길 기대해 본다.

오종훈 yes@autodiar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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