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트ㆍ페라리 구원투수 5조 적자 허덕이던 기업 1조5천억 흑자로 탈바꿈
기업 살리는 핵심은 기술 당장의 세일즈 집착말라 기술이 결국 브랜드 키워

◆출발! 2008 / 루카 디 몬테제몰로 伊 피아트그룹 회장 아시아 언론 첫 인터뷰◆



1947년생인 몬테제몰로 회장은 공교롭게도 페라리와 나이가 같다. 로마 가톨릭 추기경까지 배출한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부유하게 자란 그는 1971년 로마 라 사피엔차 대학을 졸업하고 20대에 법조인의 길에 들어섰다. 페라리를 개인적으로 소장하던 그는 F1에 흥미를 느꼈고, 73년 페라리의 F1 레이싱팀 매니저로 페라리와 인연을 맺었다. 이후 페라리를 떠나 피아트그룹에서 일하던 그는 91년 몰락하던 페라리에 CEO로 전격 발탁됐다. 특유의 리더십과 카리스마로 페라리를 4년 만에 다시 부활시킨 그는 여세를 몰아 2004년 5월, 한국의 전경련 격인 `Confindustria`의 회장으로 선출됐다. 그리고 3일 후 피아트 창립자의 동생인 움베르토 아그넬리 회장이 사망하자 그는 전격적으로 피아트그룹 회장에 올랐다.



“철저한 장인정신만이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다. 자만하는 기업은 도태한다.”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은 브랜드다. 브랜드를 키우기 위해 투자한 돈은 결국 더 많은 돈으로 돌아온다.”


루카 디 몬테제몰로 피아트그룹 회장(61)이 매일경제 독자에게 들려주는 신년 메시지다.


몬테제몰로 회장은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인물이다. 가족경영 체제를 생명과 같이 생각하는 이탈리아 전통적인 기업 피아트는 2004년 회사를 살려낼 구세주로 그를 선택했다. 피아트는 2002년 77%의 주가 하락과 40억유로(5조3300억원)라는 무시무시한 적자에 시달렸다. 몬테제몰로 회장은 비틀거리는 피아트그룹을 호되게 달궜고 피아트는 다시 살아났다. 피아트는 작년 10억유로(1조4387억원)의 흑자기업으로 돌아서 옛 명성을 되찾았다.


이탈리아 경제인연합회 회장이기도 한 몬테제몰로 회장은 한국에서 `이건희 삼성 회장`만큼이나 이탈리아 경제에서 강력한 파워를 갖고 있다. 토리노 피아트 본사에서 매일경제 기자가 아시아 기자로는 처음 그를 인터뷰하는 행운을 가졌다. 몬테제몰로 회장은 `까다롭고 무시무시하다`는 세간의 평가와는 달리 다정하면서도 꼼꼼한 면모를 보여줬다.


-전통기업 페라리와 피아트가 한때 위기에 몰린 원인은 어디에 있었나.


▶이탈리아의 영원한 자부심과 긍지였던 페라리는 창업주인 엔초 페라리가 세상을 떠나고 난 뒤 급격히 무너졌다. 기업이 해이해지고, 자만하기 시작한 것이다. 잦은 고장과 마니아들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차의 성능은 고객을 실망시켰다. 항상 1등 하는 기업은 없다. 오히려 1등은 2등, 3등으로 밀려나기 쉽다. 하지만 페라리는 이 진리를 외면했고, 그 결과 페라리의 자랑이었던 F1에서도, 슈퍼카 업체들과 경쟁에서도 밀렸다.


피아트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중 브랜드로 이탈리아 최대 자동차그룹이라는 자만에 빠졌다. 노조파업이 이어졌지만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 결국 경쟁업체에 뒤처지게 됐고 신모델 출시도 부진해지면서 적자에 시달렸다. 장인정신과 자기 반성, 혁신 부족이 원인이었다.



-쓰러져 가는 페라리와 피아트를 어떻게 회생시킬 수 있었나.


▶페라리 재건을 위해서 3가지 목표를 세웠다. 우선 제품 기술과 브랜드 이미지 강화였다. 과거 전통을 잃지 않으면서도 미래 비전을 반영하는 차, 누구에게나 드림카가 될 수 있는 차를 만들자고 결의했다. 매너리즘에 빠진 F1 머신이 아니라 과거 전통을 잃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미래 비전을 보여 주는 모델을 개발하기로 한 것이다. 이렇게 탄생한 모델이 1995년 5년의 개발 과정을 거쳐 나온 F50다. 이후에도 599 GTB 피오라노, 612 스카글리에티, 430 스쿠데리아 등 혁신적 모델이 계속 나오고 있다. 두 번째는 젊은 페라리, 젊은 조직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모든 공장과 사무실을 전부 리모델링하고 새로 지었다. 직원들은 분위기에 고무돼 더 열심히 일했고 팀워크가 좋아졌다. 덕분에 페라리 공장은 연속으로 유럽에서 가장 작업환경이 좋은 곳(Prize of the Best Workplace in Europe)으로 뽑혔다.


마지막으로는 경쟁을 두려워하지 말고 이기자는 것이었다. F1은 치열한 전쟁터다. 기술이 얼마나 뛰어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곳이기 때문에 초기에 모든 자동차 업체는 F1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결국 경쟁에서 이기지 못하고 시장에서 대부분 빠져나갔다. 페라리는 지난 9년간 7번 우승했다. F1이라는 전쟁터에서 승리는 브랜드 가치를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높여줬다.


물론 모든 위기의 기업들이 하는 것처럼 피아트도 자산 매각과 강력한 구조조정을 통해 비용 삭감에 허리띠를 졸라맸다. 하지만 자동차 회사의 핵심인 신차 개발은 게을리하지 않았다. 아무리 돈이 없어도 기업은 틈날 때마다 기술에 투자해야 한다는 원칙을 끝까지 고수했다.



-기술력과 브랜드파워, 두 가지가 결국 기업의 핵심이라는 의미 같다. 페라리와 피아트는 어떻게 브랜드를 만들어내고 기술력을 키웠는가.
▶모든 기업이 위기에 처하게 되면 자기 자신을 반성하고 문제점을 찾는 데 소홀하게 된다. 나는 철저하게 고객 처지에서 일단 우리 제품의 문제점을 분석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앞으로 비전에 대해 사람들 조언을 들었다. 나 스스로가 자동차 전문가가 됐고, 자동차에 대해서 끊임없이 공부하고 가장 잘 아는 고객 시각에서 내다봤다. CEO는 스스로가 전문가가 돼야 한다.


자동차 업체는 차만 팔아야 한다는 안일한 생각도 바꿨다. 기업을 알리는 게 중요했다. 브랜드였다.


1990년대 초 페라리가 어려울 때 나는 오히려 페라리 관련 제품을 발굴해 아주 특별한 가치를 주는 명품으로 만들어 파는 머천다이징 사업부를 만들었다. 그것이 현재 페라리 스토어의 시초가 됐고, 인터넷으로 전 세계에 팔리고 있다. 아주 작게는 노트 펜부터 가방 지갑 신발 옷, 그리고 노트북PC까지 최고급품을 지향한다. 제휴하는 업체도 토즈(Tod`s), 퓨마(Puma), 에이서(Acer) 등과 같은 명품 업체 위주로 구성했다. 1년에 이 페라리 머천다이징 상품 시장 규모만 10억유로(1조3500억원)에 이른다. 지금 페라리는 앉아서 그 매출 중 25%(2억5000만유로)를 로열티로 받는다.



-F1과 연구개발(R&D)에 유난스러울 정도로 투자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기술 투자가 바로 기업을 살리는 핵심이기 때문이다. 자동차 회사가 F1이나 기술에 투자하는 것은 미래에 투자하는 것이다. 이는 모든 기업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이야기지만 대부분 기업은 그렇게 하지 않고 당장의 세일즈에 집착한다. 페라리는 매년 15% 정도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한다. 그런데 우리가 R&D에 투자하는 비율은 매출의 15%다. 번 만큼 다 R&D에 투자하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런 투자는 다 우리에게 득이 되고, 우리에게 돌아온다. 이런 기술 투자는 우리를 경쟁에서 이기게 만들어 주고, 우리의 브랜드 가치를 높여준다.
-페라리가 앞으로 보여 줄 신사업을 귀띔해 줄 수 있나.


▶현재 중동 아부다비에 `페라리 테마파크` 건설을 진행 중이다. 2009년 완공 예정인데 이곳은 에르만 틸케가 디자인하는 F1 트랙, 페라리 관련 모든 것을 보여줄 수 있는 25만㎡ 공간이 될 것이다. 24개 스폿 포인트를 만들어 관객에게 각기 다른 즐거움을 줄 것인데, 한국에 이런 테마파크를 건설할 수도 있다. 페라리는 끊임없이 혁신과 새로운 사업을 럭셔리 비즈니스의 시각에서 접근할 것이다. 혁신이 페라리의 성공 키워드다.



-한국 시장에 대해선 어떻게 보고 있나.


▶2007년은 우리 피아트그룹의 본격적 한국시장 진출의 원년이었다. 한국시장의 잠재력은 매우 크다. 아직 한 번도 한국에 가본 적은 없지만 한국 고객을 만나보면 차에 대한 열정과 관심이 그 어느 국가보다 높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대표적이다.


이렇게 한국의 잠재력을 그룹 안에서도 높이 평가해 2008년 피아트 브랜드를 한국에 재진출시킬 것이며, 그 중에서도 새로운 `그란데 뉴 푼토(Punto)`를 집중적으로 투입해 공략할 것이다. 2009년에는 한 단계 높은 브랜드인 알파로메오를 한국에 진출시켜 커져 가는 한국 수입차 시장을 적극적으로 개척해 나가겠다.



-한국 현대ㆍ기아차 등이 피아트그룹과 같이 그룹 내 럭셔리 프리미엄 브랜드를 양성하고 싶어한다면.


▶중요한 것은 피아트그룹에 속해 있다고 해도 페라리는 페라리라는 것이다. 조직의 인원은 완벽하게 독립적이고, 피아트에서 일하는 사람과 페라리에서 일하는 사람은 교육받는 방식도, 일하는 방식도 완전히 다르다. 이를 명심해야 한다. 한 그룹 안에서 럭셔리 브랜드를 양성하는 것은 쉽지 않다. 철저하게 분리해 그 분야 전문가들과 함께 시장에 접근해야 한다.



◆ 피아트 그룹 =


매출 규모 518억유로(70조208억원)의 이탈리아 최대 민영 기업이다. 페라리, 마세라티, 피아트, 알파로메오, 란차 등 쟁쟁한 자동차 업체들과 이베코와 같은 세계적인 버스회사를 거느리고 있다. 피아트는 1899년에 출범했다. 100년이 넘는 역사다. 2006년 200만대 이상 자동차를 판매했고, 그간 불황을 딛고 2005년부터 흑자 전환했다.



[토리노 = 박인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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