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 하이드로젠 7(H7)을 만났다. 익숙한 모습인 것은 이미 몇 차례 봤기 때문이다. 지난번 서울모터쇼에서 만났고, 그 이전에도 각종 자료와 외신을 통해 벌써 익숙해진 자동차다. 하지만 심드렁하게 만날 그저 그런 차가 아니다. H7은 BMW가 만들었다는 수소자동차다. 수소차는 두 종류다. 수소를 이용한 연료전지차가 있고, 수소를 내연기관 연료로 사용하는 수소 엔진차가 있다. 연료전지차는 세계의 많은 메이커에서 연구개발중이고, 수소 엔진차는 현재로선 BMW H7이 유일하다. BMW가 100대를 만들어 독일에서 운영중이다. 실제 도로를 달리는 수소 엔진차니 의미가 작다고 할 수 없다. H7은 겉으로 보기에 기존 BMW 7 시리즈와 다를 게 하나 없다. 하지만 결코 작지않은 의미가 담긴 차다. 인류가 화석연료를 벗어나려는 노력의 첫 결실이랄 수 있는 차다. 실험실, 연구개발센터를 벗어나 일반 차들과 섞여 도로 위를 달리는 차여서 그 의미는 더 크다. 화석연료의 시대를 벗어나는 이정표인 셈이다. 월드투어중인 H7은 호주와 싱가폴을 거쳐 한국에 왔다. 세계를 돌며 수소차를 선보이고, 관심을 촉구하려는 월드투어다. 수소 연료 주입장치를 설치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는 후문이다. 위험시설이어서 서울에 설치할 수 없어 정부의 특례조치로 경기도 이천 BMW 물류센터에 임시시설을 설치할 수 있었다고 했다. H7은 760Li를 기본으로 만들었다. 기존 엔진 블록 위로 수소 공급라인을 추가하다보니 엔진이 높아졌고 보닛 가운데로 주름을 잡아 살짝 높인 게 기존 7시리즈와 다르다. 자세히 보면 조금씩 다른 부분들이 눈에 띈다. H7엔 안개등이 없다. 대신 그 자리를 뚫어 공기를 흡입할 수 있게해 냉각효율은 높였다.

뒷 범퍼 아래로는 두 개의 머플러 말고도 구멍 두 개가 더 있다. 탱크에서 조금씩 샐지 모르는 수소를 공기와 반응시켜 수증기 형태로 내보내는 BMS 장치다. 탱크를 완벽하게 만든다고는 했지만 조금씩 새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설명이다. 하루에 약 500cc 정도는 연료가 사라진다고 한다. 오래 세워놓으면 수소가 모두 사라져 버릴 수도 있다. 탱크에 수소가 절반쯤 남았을 때 약 9일이 지나면 연료잔량이 0이 된다고 한다. 이 상태에서도 약 20km 정도는 수소 모드로 갈 수 있다는 설명이다.

BMS 말고도 기화된 수소를 빼내는 시스템이 하나 더 있다. 지붕 위로 배출구를 뚫어놓아 사고로 연료탱크 계통이 손상되거나 BMS가 어떤 이유로든 막혀 제 기능을 못하면 수소를 지붕 위로 빼낼 수 있게 했다. 수리를 위해 실내 정비소에 입고할 때에는 이 지붕 위의 연료 배출구로 연료를 완전히 빼내고 정비를 시작한다. H7을 주차할 때에는 지붕이 없는 야외에 주차해야 하는 게 원칙이다.

실내에 수소가 유입되면 곳곳에 있는 센서가 이를 감지해 차창을 자동으로 내려 환기 시킨다. 이때 도어 잠금장치의 버튼이 비상등 깜빡이처럼 깜빡거린다. 수소 연료 주입구는 운전석 왼쪽 아래에 있는 버튼을 눌러 연다. 하지만 아무 때나 버튼을 누른다고 열리는 게 아니다. 정지 상태에 변속기가 P에 가 있고 주차 브레이크가 채워져야 주입구가 열린다. 탱크에 수소가 넉넉히 있다면, 이 조건들이 다 채워졌다고 해도 주입구가 열리지 않는다. 이상은 수소차 운전 사전교육 내용이다. 이 차 운전석에 앉기 전에 알아야할 최소한의 내용이다.

수소를 형상화한 디자인으로 새겨넣은 ‘클린 에너지’라는 문구가 이 차의 특별함을 말해줄 뿐 언듯보는 겉모습만으로는 기존 7시리즈와 다른 차라는 것을 알기 힘들다. 가운데가 볼록 솟은 보닛, 뒷부분에 써진 하이드로젠이라는 표기, 두 개의 연료 주입구 등이 이 차의 정체를 암시해주고는 있지만 아무 것도 모르는 이들에겐 그저 평범한 자동차일 뿐이다. 겉은 이전 7시리즈와 같지만 속은 완전히 다른 차다. 수소탱크가 리어시트 뒤, 트렁크 공간에 자리해 뒷 공간이 다소 줄어들었다. 하지만 7시리즈가 워낙 큰 차라 좁다는 생각은 안든다.

놀라운 것은 운전 성능은 기존 차와 전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다.

시동을 걸면 자동으로 수소 모드로 시동이 걸린다. 수소 모드에서는 항상 계기판에 H2라는 표시가 뜬다. 연료 잔량 게이지도 휘발유용, 수소용 두 개다. 스티어링 휠에 붙은 H2 버튼을 누르면 수소에서 가솔린으로, 가솔린에서 수소로 연료가 자동전환 된다. 가솔린을 함께 사용하는 것은 수소시스템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인프라 부족 때문이다. 수소를 언제 어디서고 넣을 수 있다면 굳이 가솔린 엔진 시스템을 함께 쓸 이유가 없다. 시동을 켤 때에는 스타트 모터 돌아가는 소리가 길게 들린다. 연료 공급계통에 남아 있을지도 모르는 불순물을 제거하기 위해 오래 시동을 건다는 설명이다. 수소모드에서 가솔린 모드로 변환할 때에는 아무런 느낌도 없고 변화도 알아채기 힘들다. 수소모드로 바꾸면 ‘틱’ 하는 소리가 뒤에서 들린다. 그것 말고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가속할 때 가속감이 더디기는 하지만 가솔린 모드에서도 마찬가지다. 가솔린과 디젤은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데 가솔린과 수소는 아무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내심 인류 최초의 수소차를 타면서 뭔가 획기적인 변화, 확실한 차이, 특별한 느낌을 기대했지만 그런 기대는 산산조각났다. 똑 같다. 변화가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다. 바로 여기에 H7의 강점이 있다. 한 획을 긋고 다음 시대로 넘어가는 엄청난 변화를 감행했지만 정작 아무런 변화도 느낄 수 없는 것이다. 전율이 흐른다. 그래도 뭔가 다른 점은 있겠지 하며 운전하는 동안 내내 귀를 기울여 찾아낸 것은 가속페달을 깊게 밟으면 수소 모드에서 조금 더 으르렁 거리는 소리가 크게 들린다는 정도다. 수소모드에서건 가솔린모드에서건 차의 반응은 아무런 차이가 없다. 시속 100km 정속주행 상태에서 rpm은 1900을 가르키고, 스포츠 모드로 변환하면 rpm의 500 정도 오르는 것, 가속반응 등등이 완전하게 똑 같다. 중저속에서 가속감과 시속 150km 이상 고속에서의 가속감이 비슷하다. 처음엔 더딘감이지만 그 느낌 그대로 고속에서도 밀어 부친다. 꾸준한 힘이다. V12 엔진은 연료에 상관없이 최고출력 260마력, 0-100km/h 9.5초, 최고속도 230km/h의 성능을 보인다. 연료는 가솔린 74ℓ와 수소 7.8kg를 가득 싣고 가솔린으로 500km, 수소로 200km 도합 700km를 달릴 수 있다. H7은 훌륭한 세단이다. 굳이 수소차니 아니니를 따지지 않더라도 훌륭한 성능을 보였다. 가속감이 배기량에 비해 조금 더딘게 아쉽기는 하지만 일반인들이 평소 타는 중대형 세단보다 나은 가속감이다.

정숙성도 뛰어나 시속 120~150km 구간에서 엔진소리가 실내에서는 그리 크게 들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바람소리가 센 것도 아니다. 모든 소음이 잘 절제되고 조절된다. 서스펜션의 적당한 탄력은 기분 좋은 승차감을 만드는데 부족함이 없다. 현재 시점에서, 적어도 가까운 미래에 H7만큼 현실적인 가능성을 보여주는 친환경차를 만나기는 쉽지 않을 듯 하다. 물론 문제도 있다. 하지만 그 문제의 대부분은 자동차 이외의 부분이다. 업계를 포함해 사회 전체가 함께 풀어야 할 숙제들이다. 이를 테면 수소를 생산하는 문제다. 물과 공기중에 널려 있는 수소지만 이를 연료용으로 생산하기 위해서는 현단계에서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가는 게 사실이다. 만들어진 수소를 일반 운전자들이 쉽게 구해서 주입할 수 있는 시설 보급도 문제다. 가까운 곳에서 쉽게 연료를 넣을 수 있도록 인프라가 구축돼야 한다. 물론 차 값도 싸져야 한다. 수소 연료 탱크도 더 많이 개선돼야 한다. 많은 분야에서 더 많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문제다. 그런 문제를 H7이 던지고 있는 것이다.

H7은 시대를 바꾸는 이정표다. 인류가 드디어 화석연료 시대를 마감하고 다음 시대로 넘어가는 출발선에 있음을 말해주는 존재다. 사회의 구조, 인류의 의식, 미래 사회의 패러다임, 각 산업분야의 발전방향 등 거시적이고 철학적인 문제들을 복합적으로 봐야 하는 존재다. 오늘 시승한 H7이 단순한 한 대의 자동차가 아니라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지구의 연료탱크가 점점 바닥을 드러내고 있고, 이제는 뭔가 확실한 대안을 마련해 나가야 하는 시점이라는 것이다. 석유가 바닥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인류에게 던져진 이 화두에 하이드로젠 7은 훌륭한 대안 중 하나다. 오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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