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드로버 프리랜더를 만났다. 프리랜더 2 TD4 HSE. 디젤 엔진이다.
프리랜더는 랜드로버 라인업의 막내, 그러니까 랜드로버의 엔트리 모델이다. 가장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는 랜드로버인 셈. 어쩌면 평생 랜드로버를 꿈꿔왔던 사람이 설레는 마음으로 처음 사는 랜드로버 모델일 수 있다. 혹은 랜드로버 아니면 차로 안보는 랜드로버 마니아가 세컨드 카로 선택하는 차이던가.
프리랜더는 극적으로 변화를 겪은 모델이다. 이전 세대의 프리랜더는 거칠었다. 오프로드를 거침없이 달리기에 딱인 그런 차였다. 청바지에 운동화를 착용한, 다소 껄렁데는 막내 동생 같다고나 할까. 바람소리도 컸고, 실내에서 잡소리도 만만치 않았다. 이전 모델은 그랬다. 그래서 크게 사랑받지 못했다.
그랬던 프리랜더가 극적인 변화를 거친다. 거친 모습을 거두고 목욕재계하고 말끔하게 변신했다. 더 치밀하게 차를 만들어 완성도도 높였다. 청바지를 벗고 양복을 챙겨 입은 모습이다. 여기에서 한 단계 더 진화한 모델이 바로 오늘 시승할 프리랜더2다.
프리랜더를 보면 한 눈에 랜드로버 디자인임을 알 수 있다. 직선과 면이 단순하다. 곡선이나 곡면을 찾기 힘들다. 정직한 디자인이다.
프리랜더는 작아보이지 않는다. 길이 4500mm. 그 안에 약 2톤의 무게가 숨겨져 있다. 덩치에 비해 무거운 편이다. 사륜구동장치에 여러 편의장치들을 추가하다보니 2톤을 넘보는 무게를 감당하게 됐다.파노라마형 선루프는 파란 하늘을 시원하게 드러낸다. 뒷좌석에서도 선루프의 개방감을 만끽할 수 있다. 물론 선루프의 창은 앞부분만 열린다. 선루프의 가림막이 얇은 천이어서 아쉽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음도 안다. 넓은 선루프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가림막을 얇은 천으로 만들어 말아 넣는 방식이어야 한다. 엔진룸은 여유 공간이 있는 편이다. 주목할 점은 엔진 배치다. 직렬 4기통 엔진이 가로로 배치됐는데 그 높이가 낮다. 보닛을 열면 푹 주저앉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낮게 배치된 엔진이 눈길을 끈다. 무거운 엔진이 낮게 자리잡은 것은 좋은 일이다. 무게 중심이 낮아지고 주행안정성이 높아지는 효과가 생기기 때문이다.
문을 열고 운전석에 앉았다. 단단한 소파에 앉은 느낌이다. 이 같은 기분은 시승하는 동안 내내 따라 다녔다. 잠자는 아이 살살 달래 깨우듯 조심스럽게 시동을 걸었다. 스타트 앤 스톱 버튼은 키가 정해진 자리에 꽂혀 있어야 제대로 작동한다. 몸에 지니고 있으면 알아서 시동이 걸리는 시스템이 아니다. 공회전 소리는 의외로 조용했다. 그렇다고 마치 가솔린 같다고 착갈할 정도의 수준은 아니다. 굵은 바리톤 음색과 낮은 진동이 여지 없이 디젤 엔진임을 말하고 있다.
2,000rpm에서 최대토크 40.8kg.m의 힘이 나온다. 가속페달을 밟으면 바로 최대토크 발생 구간이라고 보면 된다. 그만큼 효율적이다. 디젤의 장점이다. 최고출력은 160마력. 4,000rpm에서 나온다. 2톤의 거구를 끌고 나가기에 160마력은 부족한 감이 없지 않다. 마력당 무게비는 12.3kg으로 무거운 수준. 순간적으로 급가속하는 순발력을 기대해선 안된다. 최고시속 181km. 시속 160km에서부터 바람소리가 크게 두드러진다. 고속에서는 엔진 소리보다 바람소리가 더 크다. 높고 각진 차체가 뚝심있게 공기를 밀고 나가는 느낌이다. 그래서 가속감은 더디다. 대신 꾸준하다. 은근과 끈기가 있다. 뚝심이 느껴진다.
일상 주행 영역에서 자동 6단 커멘드 시프트는 부드럽다. 변속순간의 거친 터치를 느끼기 힘들다. 변속기는 프리랜더의 사륜구동 시스템과 맞물려 다양한 느낌을 전한다. 때로 미끄러지듯 사뿐거리며 움직이는가하면 어떤 땐 독수리 발톱처럼 노면을 단단히 붙들고 놓지를 않는다.
프리랜더에는 전자동 지형반응시스템, 지능형 사륜구동, 모든 지형과 날씨에 대응하는 것은 물론, 급사면 속도제어장치 등이 있다. 오프로드 주행을 염두에둔 장치들이다. 랜드로버가 아니었다면 아마 이런 장치들은 생략됐을 확률이 높다. 사륜구동장치조차 생략하는 게 요즘 SUV다. 하지만 프리랜더는 풀사이즈의 고급 SUV와 견주어도 하나 뒤지지않을 오프로드 주행 보조 장치와 시스템들을 보란듯이 채택하고 있다. 랜드로버의 자부심, 혹은 자존심을 읽는다. 외적인 모습에서는 야성을 잃었을지 모르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작정하고 오프로드에 들어선다면 숨겨졌던 랜드로버의 야성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는 차다. 점퍼를 벗고 양복으로 갈아입었다고해서 근육질 몸이 어디 가는 건 아니다.고속주행에서 약간의 아쉬움은 남지만 스포츠 세단이 아닌 이상 더 욕심 낼 이유는 없다. 대신 코너에서의 안정감으로 아쉬움을 만회할 수 있다. 단단하게 노면을 붙들고 방향을 돌려 나가는 자세가 믿음이 간다. 서스펜션은 단단하고 안정적이다. 랜드로버 집 막내가 물이 오를대로 올랐다. 프리랜더2는 전체적인 완성도가 훨씬 더 높아졌다. 서두에 언급했던 극적인 변화를 겪은 후 좀더 치밀하고 세심하게 차를 다듬었다.
판매가격은 5,250만원. 차 값에 대한 체감 온도는 개개인에 따라 다르다. 엔진이나 가격이 비슷한 차들과 비교해보면 이 차의 상대적인 위치를 가늠해볼 수 있다. 7,000만원이 넘는 X3 디젤보다는 싸다. 닷지 듀랑고(4701cc)가 5,140만원, 그랜드체로키 3.0 디젤이 5,790만원이고 5,470만원인 인피니티 EX35가 경쟁차종으로 꼽을만하다. 유러피언 럭셔리 SUV의 대명사인 랜드로버지만 막내인 프리랜더는 주로 미국, 일본계 SUV 들과 경쟁해야할 처지다. 나쁠 게 없다. 5,000만원대에 랜드로버를 탈 수 있다는 것은 분명 매력있는 제안이다.
오종훈의 單刀直入치밀하고 완성도 높은 인테리어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허술해진다. 윈드실드와 지붕이 마주하는 곳의 마무리다. 상중하로 구분한다면 중정도 된다. 사실 차의 완성도라는 게 큰 차이가 벌어질 수 없다. 사소한 곳에서 완성도에 대한 평가가 갈리게 된다. 제로백이 11초를 넘기는 동력성능에 사람들이 불만일 수 있겠다. 넣을 수 있는 거의 모든 편의 장치를 채택하고 있는데 굳이 그럴 필요 있는지 묻고 싶다. 편의장치를 일부 줄이고 가격을 좀 더 낮춘다면 훨씬 매력있는 차가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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