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의 어느 나라에서는 장례할 때 종이로 만든 벤츠를 함께 묻는다고 한다. 생전에 타보지 못한 벤츠를 저세상에서라도 타기를 바라는 의미다. 그만큼 벤츠는 부의 상징이고, 꿈이다. 그곳만큼은 아니지만 이 땅에서도 벤츠는 부의 상징이고 뭇사람들의 꿈이다.
세계 어디에서도 그렇다. 많은 프리미엄 브랜드가 있지만, 벤츠만큼 널리 알려진 브랜드는 많지 않다. 동네 꼬마도, 시골 할머니도 ‘벤츠’ 하면 알아준다. 세계 어느 지역에서도 벤츠는 성공한 부자들의 차다. 성공한 것처럼 보이고 싶은 이들의 차이기도 하다. 벤츠의 브랜드 파워다.
S 클래스가 최고의 벤츠라면 E클래스는 75년 동안 벤츠의 존재감을 알려온 중형 세단으로, 가장 벤츠다운 벤츠라 할 수 있다. 8년 연속 수입차 베스트셀러가 E클래스였고, 전 세계에서 E클래스 세단이 가장 많이 팔리는 시장이 바로 한국이다.
24년 연초에 국내 출시된 E클래스 11세대 모델을 만났다. 8년 만에 국내 출시된 풀체인지 모델이다. 시승 모델은 ‘E450 4매틱 익스클루시브’로 판매가격은 1억 2,300만원이다.
E클래스 외관은 세 종류다. 아방가르드, AMG 라인, 그리고 익스클루시브다. 익스클루시브는 라디에이터 그릴에 3개의 수평 트윈 루브르로 단정하고 클래식하게 마무리했다. 벤츠의 삼각별 엠블럼은 보닛 끝에 자리했다. 삼각별은 브레이크 등에도 큼직하게 자리 잡았다. 브레이크를 밟으면 붉게 빛나는 삼각별 마크가 뚜렷해진다.
라디에이터 그릴은 발광한다. 은은한 빛을 라디에이터 그릴에 넣어 분위기 있는 모습을 완성하는 것. 어두워지면 발광하는 그릴이 강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디지털 라이트는 개별 헤드램프당 100만 픽셀 이상의 해상도를 자랑한다. 교통, 도로 상황, 날씨 등의 주변 환경 변화에 맞춰 개별 헤드램프의 밝기를 주행에 최적화되도록 조절한다.
갈고 닦고 다듬어 공기저항계수를 0.23으로 낮췄다. 현존하는 양산차중 가장 낮은 수준의 공기저항계수다. 바람 소리를 줄이고 연비를 개선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겠다. 주행안정감을 높이는데도 긍정 요소로 작용한다.
엔진룸, 캐빈, 트렁크 정확하게 세 부분으로 나뉘는 세단의 정석을 보여주는 모습이다. 옆에서 볼 때 A 필러를 조금 더 뒤로 배치했다. 이른바 ‘캡 백워드’ 디자인이다. 자연스럽게 긴 보닛과 짧은 트렁크 라인이 돋보인다. 캡 포워드 디자인이 공간을 더 확보하는 실리적인 접근이라면, 캡 백워드 디자인은 좀 더 멋있는 모습을 추구하는 접근이다.
그렇다고 실내가 좁은 것도 아니다. 휠베이스는 이전보다 20mm 더 긴 2,960mm를 확보해 여유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실내 공간을 제한하는 것은 뒷좌석에 벽처럼 높게 솟은 센터 터널이 유일했다.
실내에서는 대시보드를 가득 채우는 3개의 모니터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3D 그래픽을 선택할 수 있는 계기판, 14.4인치 넓은 화면에 구현되는 다양한 기능과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넓게 구현된 헤드업 디스플레이, 그리고 조수석 앞에 또 하나의 모니터까지 배치했다. 모니터로 벽을 세운 느낌이다. 선명한 모니터를 통해 유튜브 등의 동영상 서비스는 물론 비발디 브라우저를 통해 인터넷도 접근 가능하다.
긴 보닛 안 엔진룸에는 직렬 6기통 3.0 가솔린 엔진이 중앙에 세로로 배치됐다. 최고 출력 381마력, 공차중량은 1,955kg으로 1마력이 5.1kg 정도를 감당한다. 메이커가 밝히는 0-100km/h 가속시간은 4.5초다.
48V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적용됐다. 2세대 통합 스타터 제너레이터(ISG, integrated starter-generator)를 통해 내연기관 엔진에 추가적인 전기 공급으로 가속 시 최대 17kW의 힘을 추가 제공한다. 차가 탄력을 받았을 때 가속페달에서 발을 떼면 엔진 회전수는 0으로 떨어질 때가 많다. 엔진이 아예 작동을 멈추는 것. 엔진을 수시로 멈추게 운전하면 자연스럽게 경제운전이 된다. 마일드 하이브리드의 장점이다. E450 4매틱은 저공해차량 2종으로 인증받았다. 혼잡 통행료 및 공영주차장 주차 요금 감면 등의 혜택을 받게 된다.
시속 100km에서 9단 1,300rpm, 3단 4,700rpm을 보인다. 높은 단수에서 낮은 rpm으로 효율을, 낮은 단수에서는 높은 rpm으로 성능을 높일 수 있다. 9단 변속기의 장점이다.
스티어링 휠은 정확하게 2회전 한다. 리어액슬 스티어링이 더해져 조향 성능이 민감하다. 뒷바퀴가 약 4.5도까지 조향에 개입한다. 살짝 틀어지는 정도의 개입만으로도 조향 반응이 빠른 것을 확연히 알게 된다.
사륜구동 시스템은 고속 주행에서 빛을 발한다. 빠르게 달려도 운전자가 느끼는 심리적 불안감이 덜한 것은 차체의 흔들림이 덜하기 때문인데, 그 안정감은 타이어의 접지력, 사륜구동 시스템의 구동력, 우수한 서스펜션 세팅에서 온다. 타이어 사이즈는 앞 245/40R20, 뒤 275/35R20 이다.
E 450 4MATIC 익스클루시브 모델은 에어매틱 서스펜션과 리어 액슬 스티어링을 포함하는 엔지니어링 패키지가 기본 탑재된다. 에어 스프링과 어댑티브 ADS+ 댐퍼(adaptive ADS+ dampers)가 적용된 에어매틱 서스펜션은 운전 조건, 속도 및 하중에 따라 서스펜션을 자동으로 조절한다.
공인복합 연비는 10.5km/L다. 파주-서울간 55km를 경제운전으로 주행한 실주행 연비는 14.2km/L를 기록했다.
E클래스는 프리미엄 세단의 정석이다. 디자인, 기능, 성능, 편의장비 등 모든 면에서 프리미엄 세단은 이래야 한다는 모범을 보이는 차다. S 클래스로 올라가면 직접 운전하기 부담스러울 때가 생긴다. 오너 드라이버에게는 E 클래스가 상한선이겠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수많은 장비를 탑재했다는 건 고장 혹은 에러 위험도 크다는 말이다. 영하 1~영상 3도 전후의 날씨에서 타이어 공기압 경고등이 떴다. 기온이 떨어지면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일이다. 펑크가 아니라면 무시해도 된다. 잠시 달리면 타이어가 열을 받으면서 적정 공기압을 되찾는다.
이어지는 몇 개의 에러 메시지는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액티브 스티어링 어시스트가 안되고 액티브 비상 제동 어시스트가 안되고 등등. 그래서 3개 차로를 모니터하며 차선 변경까지 지원한다는 주행 보조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트렁크 상단의 맨 철판은 여전하다. 속살을 드러내는 셈이다. 프리미엄 세단인데, 속옷은 제대로 입혀서 내보내야 하지 않겠는가.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