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딧세이를 탔다. 혼다가 만드는 8인승 미니밴이다. 여럿이 어울려 움직일 때 참 좋은 차다. 이름도 잘 지었다. 오딧세이는 트로이 전쟁 후 10년간에 걸쳐 고향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그린 서사시다. 많은 영웅이 등장하고, 여러 곳을 움직인다는 점에서 ‘오딧세이’는 미니밴 이름으로 딱 좋다. 많은 사람을 태우고, 그들과 여정을 함께 해야 하는 미니밴의 운명이 그 이름에 잘 담겨 있다.

복근이 드러난 것 같은 각진 옆모습이, 단정한 앞모습과 어울려 차분한 분위기로 완성됐다. D 필러 아랫부분을 블랙 컬러로 살짝 열어놓는 멋을 부렸다. 슬라이딩 도어는 버튼을 눌러 자동으로 열고 닫히는 게 포인트. 자동으로 열린 문 사이로 내릴 때 나도 모르게 어깨가 으쓱 올라간다. 운전석에서 혹은 2열에서 버튼을 눌러 문을 열 수 있다.

공간이 주는 여유로움이 있다. 좌우 폭이 넓고, 3열까지 충분한 공간을 배려했다. 적어도 오딧세이의 3열은 몸을 구겨 앉는 자리가 아니다. 여럿이 탄다면, 2열이 상석, 3열이 말석이 된다.

2열 시트는 어른을 모시는 상석의 역할을 충분히 한다. 천장에 배치된 10.2인치 모니터를 통해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을 제공하고, 무선 리모컨과 헤드폰을 비치했다. 차창에는 햇볕가리개도 있다. 버튼을 눌러 문을 열면 왠지 VIP가 된 듯한 기분도 낼 수 있다. 2열 시트는 앞뒤 슬라이딩은 물론 좌우로도 움직인다. 이를 통해 3열로 이동하는 통로를 쉽게 확보하게 된다.

의외로 매력 있는 자리가 3열 시트다. 말석이지만 그 자리는 충분히 넓어 은근히 아늑한 느낌까지 준다. 모두의 시야에서 자유롭고, 모두를 내 시야에 둘 수 있는 자리가 3열이다. 그곳이 넓으니, 오딧세이에서라면 3열을 마다할 일은 아니겠다.

넓은 공간을 품을 수 있는 건, 차체가 크기 때문이다. 차체 길이가 5,235mm, 휠베이스도 3,000mm다. 공간이 넓어 3열 승객과 운전자가 목소리 톤을 높여야 할 정도지만, 캐빈 토크가 있어 편하게 소통할 수 있다. 캐빈 워치는 모니터를 통해 뒷좌석 상황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계기판은 영어로 표시된다. 한글보다야 불편하지만, 어려울 정도는 아니다.

시동을 걸고 차분하게 골목을 빠져나가는데 경고음이 울린다. 오른쪽으로 돌아나가는데 뒷부분이 전봇대를 아슬아슬하게 비켜 나갔다. 평소 작은 차를 운전하는 이라면, 한 발짝 더 나간 뒤에 방향을 돌리는 게 좋겠다.

2021 Honda Odyssey

오딧세이 같은 미니밴은 여유 있고 편안하게 움직여야 한다. 여럿이 태우고 스포츠카처럼 움직이다가는 쏟아지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차분하게 움직이면 소파에 앉아 움직이는 듯한 편안함을 만난다. 물론 마음먹고 달리면 못 달릴 이유는 없다. 284마력의 힘이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V6 3.5리터 엔진이 만들고 10단 자동변속기가 조율해내는 힘이다.

자연흡기 엔진과 자동변속기의 ‘10단’에 주목한다. 배기량 3.5리터는 요즘 보기 힘든 대배기량이다. 다운사이징이 한참 유행하고 다 지난 옛날얘기처럼 여겨지지만, 혼다는 아직도 대배기량을 고집하고 있다.

6기통 엔진이 어떨 때는 3기통만 작동한다. 정속주행을 하거나, 내리막길을 갈 때, 즉 큰 힘이 필요하지 않을 때는 6개 실린더 중 3개만 작동하고 나머지는 대기상태로 쉰다. 새근거리는 아이 숨소리처럼 잔잔한 엔진 소리를 내며 탄력 주행을 할 때에는 음소거 상태인 듯 실내는 조용해진다.

자연흡기 엔진의 편안함이 있다. 터보를 넣어 쥐어짜는 힘이 아니다. 저속에서부터 편하고 자연스럽게 힘을 쓴다. 그 힘에 얹혀가는 사람들도 편하다. 심장을 뜨겁게 데우는 파워가 아니라, 편안하게 이완시키는 힘의 질감이 전해온다.

항상 편안한 건 아니다. 운전자가 거칠게 다루면 숨겨진 발톱을 드러내며 다이내믹한 반응을 보인다. 누구보다 착한 아이가 성질 긁히면 야수처럼 돌변하듯 거친 모습으로 달리는데, 강하게 돌변하는 모습이 의외로 잘 어울린다.

엔진을 거쳐 나온 힘은 10단 변속기를 거쳐 타이어로 향한다. 인간계의 경계를 흔히 9단으로 본다. 바둑의 최고수는 9단이고, 태권도 역시 9단이 가장 높다. 10단은 이를 넘어서는 수준으로 받아들여진다. 변속기 단이 높아질수록 부드럽게 가감속이 가능하고 힘과 효율을 모두 만족시키는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혼다 센싱으로 불리는 주행보조장치는 도로를 정확하게 읽고 대응했다. 앞뒤로 정해진 차간 거리를, 좌우로는 차로 중앙을 유지하며 달린다. 가감속과 조향에 적절히 개입하며 운전자를 돕는다.

흔히 ‘기술의 혼다’라고 하지만, 눈에 확 띄는 화려한 기술은 보이지 않는다. 대신, 차 곳곳에 실용적인 기술들이 스며들어 차의 전체적인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누구나 일상 속에서 누릴 수 있는 ‘실용적 기술’이 녹아 있는 것. 기술의 혼다가 빛을 발하는 건 그 기술이 실용적이기 때문이 아닐까.

판매가격 6,050만원이지만 살 수 없다. 다 팔렸다. 내년에는 모델 변경을 거친 신형 모델로 교체될 것으로 보인다. 오딧세이의 본질이 변하지 않는 한 여전히 매력 있는 미니밴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리라고 기대해 본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내장된 내비게이션 시스템이 없다. 애플 카플레이나 안드로이드 오토를 이용해야 하는데 선으로 연결해야 한다. 선을 챙겨서 이용할 때마다 연결해야 한다. 번거롭다. 스마트폰을 거치대에 올려 이용하는 이들도 제법 된다. 내비게이션 시스템을 장착하던지, 적어도 무선 연결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