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형의 하이빔 46] 중국 전기차를 어떻게 봐야하나.
같이 근무했던 후배와 아주 오랜만에 만나 막걸리 한잔할 기회가 있었다. 동남아를 대상으로 무역업을 하니 자동차 업계가 아닌 일반 소비자의 관점에서 궁금한 것들을 물어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동안 자동차 산업에 관한 나의 관심이 소비자들과는 달랐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은 관심도 별로 없는 일에 혼자서 흥분해서 글을 써댄 건 아닌가 말이다.
나는 요즘의 전기차 판매가 줄어든 소위 ‘캐즘’ 이라는 게 단순히 최근 일어났던 전기차의 대형 화재 사건 등 때문만이 아니고 이미 여러 원인이 복합되어 예견되었던 일이었다고 이야기했다.
국제적인 전기차 배터리용 광물질의 부족 및 가격상승, 아직 급진적인 내연기관 축소는 시기상조라는 인식 등, 그래서 결국은 EU가 EORO7의 규제 기준을 기존 EURO6 수준에서 크게 강화하지 않는 것으로 항복하고 미국도 환경규제 계획을 늦추었다는 둥 고급(!) 정보를 일목요연하게 늘어놓으면서 감동할 후배의 얼굴을 바라보았지만, 예상과는 다른 시큰둥한 모습이었다.
나의 연설을 듣던 후배가 한마디 했다. 전기차 못 만들면 다 망할 것 같던 기존 내연기관 팔던 회사들은 이번 기회에 기존 내연기관을 활용해 하이브리드 라인업을 더 강화하면 될 것이고, 테슬라니 BYD니 하는 전기차에 목맨 회사들은 어차피 전기차밖에는 힘쓸 곳이 없으니, 거기에 몰두할 것이니 각자 열심히 살면 되지 뭘 그리 복잡하게 생각하느냐는 것이다.
동남아와 중국을 다니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보니 중국이 미국의 규제와 부동산 건설 과잉 등으로 힘들어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산업 분야에서 거의 한국을 따라잡고 있다는 게 후배의 얘기였다. 요즘 중국에서는 중국의 자동차 기술이 외부로 빠져서 나갈까 봐 단속하느라 정부에서 부품공장도 가능한 한 해외에 세우지 말고 국내에 세우라고 한단다.
우리가 중국의 BYD라는 자동차 회사의 이름을 들어본 게 언제부터였을까. 언젠가 중국 정부가 주도되어 2009년 시행한 ‘10개 도시, 차량 1,000대(十诚千辆)’ 정책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10개의 시범도시에서 매년 신에너지 차(NEV) 1,000대씩을 생산하는 정책으로 신에너지 차(주로 전기차겠지만) 산업을 본격적으로 육성하겠다는 중국 정부의 의지를 보여준 정책이었으며 그 후 후속 정책들을 연이어 수립해 지속해서 추진해 왔다. 한 도시에 연간 1,000대의 목표였으니 전기차를 만들어 보겠다고 너도나도 달려든 회사들이 한둘이 아니었겠지만 그중 전기차를 만들어 본 경험이 있는 회사가 과연 몇 개나 되었겠는가.
당시 BYD도 그 업체 중의 하나로 뛰어들어 전기차를 만들었는데 초기에 만든 차는 한번 충전에 700km를 달리는데 배터리 무게만 1톤이었다고 하지 않는가. BYD 자동차, 즉 BYD Auto는 충전지 제조업체인 비야디 주식회사(1995년 설립)의 자회사로 2003년 설립되었다. 중국 정부의 에너지 절약 및 이산화탄소 배출 절감 등의 정책에 힘입어 BYD의 사업은 거칠 것이 없었을 것이다.
2005년 본격적인 전기차 개발 전담 사업부를 설치하고 이듬해 전기자동차 시제품인 F3E를 개발, 1회 충전 350km 주행에 성공했다. BYD 자동차는 설립 20년 만인 2022년, 친환경 차 판매량 186만 대를 기록하며 세계 전기차 1위 기업으로 부상했다. 전기차 시제품을 만들어 세상에 전기차 만드는 회사임을 알린 지 20년 만에 말이다.
최근 잦은 전기차 화재의 소식을 들으면서 특히 벤츠 전기차에 적용된 배터리가 중국기업 ‘파라시스(Farasis)’에서 생산한 것이라는 소식에 세계 최고 수준의 명품 자동차 벤츠에서 왜 세계 10위권인 중국 배터리 업체의 제품을 썼는지에 대한 의혹이 일고 있다. 심지어 온라인 자동차 동호회 등에서는 1억 원짜리 차에 ‘듣도 보도 못한’ 배터리가 탑재됐다니 실망스럽다고 하기도 했다고 한다.
20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에게 BYD는 ‘듣도 보도 못한’ 이름이었다. 벤츠의 1대, 2대 주주가 모두 중국회사라는 언론 기사를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전기차의 시대는 새로운 자동차 생태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며 그 새로운 생태계에는 앞으로도 ‘듣도 보도 못한’ 이름들이 계속 나올 것이다.
결국 중국은 탄탄한 내수를 바탕으로 한 대규모 자동차 산업 클러스터와 2000년 후반부터 본격화한 수많은 M&A를 통해 축적한 기술력이 소재. 부품부터 제조까지 이어지는 공급망의 기반이 되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기차 진출 선언 후 3년 만에 성공(?)한 샤오미와 10년 만에 포기한 애플의 차이는 무엇인가? 결국 중국이 가진 엄청난 공급망의 차이다.
올해 들어 세계의 자동차 판매량 순위에서 중국업체들이 처음으로 미국을 제치고 3위 자리를 차지했다. 1위는 일본, 2위는 유럽, 3위는 중국, 4위 미국 그리고 한국이 점유율 8.5%로 미국에 이어 5위다. 업계에서는 올해 중국업체들의 판매량이 미국을 앞지른 것은 글로벌 자동차 업계의 판도가 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분석하고 있다.
물론 개별 자동차 회사별 순위에서 현대자동차가 2년 연속 글로벌 완성차 3위의 자리를 지켰다는 소식도 있어 위로되기도 한다. 2024년 상반기 현대차그룹은 도요타그룹을 제치고 글로벌 톱5 중 가장 높은 영업이익률을 달성했다. 비록 간발의 차이였지만 현대차그룹 10.7%, 도요타 10.6%로 말이다. 간발의 차이가 무슨 그렇게 큰 이야깃거리인가 할 수도 있겠다.
1등은 2등이 될 수도 있고 3등이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이제 현대차도 판매 대수만을 가지고 자동차 시장에서의 우열을 논하는 회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야말로 선진국의 차 1대 값에 현대차 2대를 판매하면서, 차를 판매하면 오히려 손해를 봐가면서 시장점유율을 올리려 애쓰던 시절과는 이제 비교할 수 없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이쯤 되니 이제 현대자동차도 벤츠니, BMW니 하는 회사들처럼 브랜드 파워와 제품의 히스토리를 가지고 중국차와 차별화하고 고급차 시장을 공략…. 어쩌고 하는 소리가 나올 때도 되었지만 일단 유럽에 제네시스를 성공시킨 후에 이야기하면 될듯하다.
유재형 <자동차 칼럼니스트>
필자 유재형은 1985년 현대자동차에 입사, 중대형 승용차 상품기획을 맡았으며 현대모비스 전신인 현대정공에서 갤로퍼, 싼타모 등의 개발에 참여했다. 이후 현대자동차로 옮겨 싼타페, 투싼 등 SUV 상품개발과 마케팅을 거쳐 현대자동차 국내 상품팀장을 끝으로 퇴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