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다이어리

캐스퍼 일렉트릭, 다 있다. 더 있다.

캐스퍼와 캐스퍼 일렉트릭은 완전히 다르다. 전자는 경차 후자는 소형차다. 엔진과 모터, 동력원도 다르다. 크기도 다르다. 세부 디자인도 서로 다르다. 다른 이름을 써도 좋을 정도다.

캐스퍼 일렉트릭은 태풍과 함께 왔다. 종다리가 서울을 뒤덮은 날, 캐스퍼 일렉트릭을 타고 달렸다.

캐스퍼 일렉트릭은 지난 부산모빌리티쇼를 통해 첫 모습을 드러냈다. 합리적인 가격을 앞세운 프리미엄, 1회 충전 주행거리에 초점을 맞춘 인스퍼레이션, 오프로드 스타일의 크로스 등 3개 트림이 있는데, 우선 인스피레이션을 먼저 투입했다. 프리미엄과 크로스는 순차 투입될 예정이다.

차에 처음 앉으면 손을 쭉 뻗어 지붕 틈새를 만져보는 버릇이 있다. 운전석에 들어가 앉으며 무심코 손을 뻗었다가 깜짝 놀랐다. 이 정도 차라면 사실, 살짝 틈새가 벌어지고 손가락이 들락거려도 흠이 될 수 없다. 정반대였다. 치밀하게 그 틈새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허술하게 마무리하는 다른 차들에 꼭 보여주고 싶을 정도다. 야무지게 마무리한 그 틈새에서 이 차를 만드는 이들의 자세를 본다. 대충 만든 차가 아니다.

그러고 보니 인테리어 소재들이 ‘차급에 비해’ 고급지다. 손끝이 그걸 느낀다. 대시보드, 시트, 스티어링 휠 등 손이 닿는 부분에 적용한 소재들이 수준 이상이다. 이 차급에 어울릴 법한 정직한 플라스틱 재질은 도어 패널 정도에나 있다.

캐스퍼보다 크다. 훨씬 크다. 3,825×1,610×1,575mm 크기다. 휠베이스는 2,580mm. 휠베이스는 180mm, 트렁크 길이는 100mm를 늘였다. 그 효과는 뒷좌석에서 확실하게 느낄 수 있다. 슬라이딩 되는 뒤 시트를 뒤로 밀면 성인이 앉아도 충분한 공간을 만들어 낸다. 센터 터널이 없는 바닥도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픽셀 그래픽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현대차의 전기차 특징이다. 브레이크를 밟으면 꽉 차게 드러나는 브레이크 등이 픽셀 그래픽으로 멋지게 드러난다. 기하학적 무늬로 완성한 기존 캐스퍼의 리어 램프도 인상적이지만, 전기차의 DNA를 드러내는 픽셀 그래픽 브레이크 등도 멋지다.

요즘은 배터리가 주인공이다. 너도나도 배터리를 먼저 밝히고 있다. 차를 사는 건지, 배터리를 사는 건지 모를 정도다. 캐스퍼 일렉트릭에는 LG에너지솔루션이 공급하는 배터리가 장착된다. 정확하게는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사에서 만든 배터리”라는 설명이다.

49kWh 용량의 NCM 리튬이온 배터리를 사용했다. 17인치 타이어를 장착한 시승차는 1회 충전으로 295km를 달릴 수 있다고 국내 인증을 받았다. 15인치 타이어는 315km다. 그 거리는 계절에 따라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 한다. 대강 그 정도 달린다는 기준점 정도로 ‘참고’하는 게 마땅하다.

평소 배터리의 80%를 충전한다면 배터리의 70%가량을 사용한다고 봐야 한다. 배터리 잔량 최소 10% 정도에서는 충전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10~80% 구간에서 배터리를 사용하고, 충전도 그 구간에서 이뤄진다. 1회 충전 주행거리도 그만큼 줄어든다고 보면 된다.

겨울이 아니라면, 에코 모드로 경제운전을 하면, 인증 주행거리보다는 좀 더 멀리 갈 수 있다. 시승하는 동안 따로 연비를 측정해보지 않았지만, 계기판을 보니 465km 누적 연비로 5.0km/kWh, 스포츠 모드를 섞어가며 장맛비를 뚫고 38km 달린 연비는 6.2km/kWh로 나타났다. 공인 연비는 5.2km/L.

전기차 특유의 가속감은 압권이다. 스포츠카에서나 느낄법한, 시트가 등을 떠미는 느낌을 만난다. 모터 소리가 낮게 깔리며 달려 나가는 반응이 대단했다. 정지상태에서 가속페달을 깊게 밟으면 타이어가 살짝 헛돌기까지 한다. 모터 특유의 회전 질감이 살아 있다.

모터 최고출력은 84.5kW로 마력으로 환산하면 약 115마력 정도다. 1마력이 감당하는 무게 11.8kg가 되니 11초 전후로 시속 100km를 주파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실제 체감 시간은 훨씬 빠르다.

그 가속감이 편안하게 다가오는 건 무게 중심이 낮아서다. 무거운 배터리를 밑에 배치해 무게 중심이 낮고, 그래서 주행안정감이 좋아지는 전기차의 공식이 어김없이 드러난다.

캐스퍼 일렉트릭을 보면서 놀라거나 감탄한다면 이 차를 우습게 봤다는 얘기다. 직접 운전해 보니, “작은 차가 거기서 거기지 뭐” 하는 선입견이 싹 가셨다.

필요한 건 다 있다. 주행 보조 시스템은 정확하게 차간 거리를 유지하며 차로 중앙을 유지했다. 앰비언트 무드램프에 인터랙티브 픽셀 라이트를 적용한 스티어링 휠, 실내는 물론 차 밖에서도 220V를 사용할 수 있는 V2L, 내비게이션 기반의 스마트 크루즈컨트롤 기능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거의 모든 안전 및 편의 장비들이 대거 적용됐다.

거기에 하나 더. 캐스퍼 일렉트릭에 처음 적용된 기능이 하나 더 있다. ‘페달 오조작 안전 보조(PMSA)’ 시스템이다. 1m 이내에 장애물이 있을 때 가속페달을 급하게 밟으면 잘못 조작하는 것으로 판단해 출력을 제한하거나 긴급 제동을 걸어주는 것. 브레이크를 밟아야 하는데 가속페달을 밟은 것으로 판단한다는 것. 또 하나의 안전장치가 더해진 셈이다.

전기차의 즐거움도 있다. i 페달 드라이브다. 가속페달과 브레이크를 하나로 합쳐, 가속페달로만 차를 조작하는 것. 뒤에서 누가 잡아끄는 것 같은 특유의 주행 질감이 재미있다. 또 하나는 패들을 이용한 회생제동 시스템이다. 단계별로 구분되는 회생제동의 강도를 느끼며 달리는 건 또 다른 재미다.

브레이크를 밟아야 할 때 두 개의 선택지가 생겼다고 보면 된다. 브레이크를 밟거나, 아니면 패들을 이용해 속도를 줄이는 것. 여유가 있다면 패들로, 그렇지 않다면 브레이크 페달을 택하는 게 좋겠다. 이 차를 잘 다루려면 패들과 친해지는 게 관건이겠다.

시승차인 캐스퍼 일렉트릭 인스퍼레이션은 세제혜택 후 2,990만 원이다. 서울 기준 전기차 구매 보조금은 640만 원이다.

태풍처럼 시장을 뒤흔들 모델이라고 치켜세워 주고 싶지만, 시장은 한여름의 열기가 무색할 정도로 차갑게 식었다. 듣기도 생소한 캐즘에 이어 벤츠 전기차 화재가 시장을 강타했다.

시장 탓은 의미 없다. 안전성을 인정받으면 성공이고, 그렇지 못하면 퇴출이다. 위기는 기회의 다른 이름. 누군가는 보란 듯 이겨내고, 또 누군가는 뒤처질 것이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고속 충전은 안 된다. 350kW 충전기에 물려도 소용이 없다. 최대 120kW까지 대응한다. 배터리 잔량 10%에서 80%까지 충전하는 데 30분이 걸린다는 게 현대차의 설명이다. 아쉬운 부분이다.
패들이 왼쪽 +, 오른쪽 –다. 왼쪽을 길게 당기면 제동이 강하게 걸린다. 오른쪽을 당기면 풀린다. 패들의 +-표시가 잘못된 게 아닌가. 헷갈린다.

오종훈 yes@autodiar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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